안치홍은 나에게 조금은 특별한 의미의 선수였다. 아니, 어쩌면 많이 각별했을지도.
사실 타이거즈 팬들에게 안치홍은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존재였다. 곧 죽어도 투수가 우선인, 투수에 미친 구단이 2차 1번으로 뽑을 만큼 출중한 능력을 가진 내야수였으니 말이다. 그 능력을 바탕으로 곧장 2루 자리를 꿰차더니 금세 내야의 중심으로 성장해주니 고마울 수밖에. 게다가 서울에서 나고 자란 소년이 낯설 법도 한 광주를 마치 고향처럼 잘 적응해주는데 어느 팬이 안 예뻐할 수가 있을까.
안치홍이 나에게 조금 더 특별한 의미를 가진 선수였던 것은 그의 데뷔 년도가 2009년이기 때문이다. 맞다. 이용규의 헬멧이 깨지던 바로 그 2009년. 내가 처음 야구를 본 바로 그 2009년.
2009년에 프로생활을 시작한 안치홍은 데뷔하자마자 정말 빠르게 멋진 야구선수로 성장했다. 별처럼 빛나는 전반기를 보낸 그는 당시 역대 최초로 팬 투표로 올스타에 뽑힌 고졸 신인이 되었다. 그 뿐일까. 기라성같은 선배들이 즐비한 올스타전에서 기죽지 않는 것만 해도 대단한데, 그는 무려 투런 아치를 그리며 역대 올스타전 최연소 홈런의 주인공이 되었다. 그와 동시에 역대 최연소 미스터 올스타로 선정되어 차까지 뽑는 최고의 날을 보냈다.
여름을 지나 가을을 맞이한 안치홍은 한국시리즈에서 또 하나의 커다란 임팩트를 남겼다. 앞선 6차전까지 치열한 혈투를 펼치며 맞은 시리즈의 마지막인 7차전, 그는 5-3으로 밀리고 있는 7회 말 상황에서 솔로 홈런을 쏘아 올리면서 추격을 선포했다. 패색이 짙어가던 팀은 1루를 밟으며 주먹을 불끈 쥐어 올린 스무 살의 패기에 다시금 살아났고, 결국 9회 말 나지완의 끝내기 홈런으로 우승을 차지할 수 있었다. 게임의 마침표를 찍은 최종적인 히어로는 아닐지라도, 꺼져버린 추격의 불씨를 다시 살렸다는 점에서 그 역시 핵심적인 히어로 중 한 명이었다.
처음. 유일할 수밖에 없는 처음. 그래서 더욱 소중한 처음. 이처럼 화려한 안치홍의 데뷔 시즌을 처음부터 함께할 수 있어서 정말 행복했다. 나의 처음이 그의 처음과 다르지 않다는 것에 묘한 동질감을 느끼기도 했다. 그의 첫 올스타전이 나의 첫 올스타전이었고, 그의 첫 우승이 나의 첫 우승이었으니까. 그가 타이거즈에서 처음 경험하는 것을 나도 함께 처음으로 경험하게 되었으니까.
반짝이는 루키 시즌을 보낸 안치홍은 연차가 쌓일수록 더 깊고 커다란 빛을 뿜어내는 선수로 성장했다. 무등야구장과 챔피언스필드의 1-2간을 탄탄하게 틀어막으면서, 김선빈이 놓친 뜬공을 잡아주면서, 준수한 타격과 꽤나 빠른 발로 안타치고 도루하면서 타이거즈의 핵심으로 자리매김했다. 타이거즈 내야의 중심으로서 그는 총 세 번의 골든글러브를 수상했고, 17시즌에는 한 번 더 우승반지를 끼었다.
안치홍이 뿜어내는 빛은 단순히 야구 실력에서만 기인하는 것이 아니었다. 기아에 입단하면서 그는 타이거즈의 20년을 책임지겠다는 말을 남겼다. 아마 처음엔 신인이라면 누구나 하는 인사치레로 말한 것이었을 테지만, 그는 그 약속에 부응하는 모습을 보였다. 큰 구설에 휘말리는 일 없이 언제나 성실했던 그는 그만큼 팀에 모범이 되는 선수였기에 후배들도 많이 따랐다. 야구를 잘하면서 이만큼 모범이 되는 선수는 흔치 않기 때문에 그의 중요성을 구단에서도 잘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주 당연하게.
팀의 간판으로 자리 잡은 그를 보면서 타이거즈 팬들은 어쩌면 그 약속이 끝까지 지켜질 수도 있겠다고, 신인의 당돌한 포부가 영원한 낭만이 될지도 모르겠다고 기대했다. 나 역시 그렇게 믿었다. 그래서 나는 나의 첫 유니폼에 안치홍의 이름을 새겼다. 그 약속이 반드시 지켜질 거란 믿음을 가지고. 타이거즈의 선수로 영원히 남아있을 거란 염원을 그리며. 그와의 이별은 절대로 없을 거란 바람을 담아서. 아주 오래오래 유니폼에 빵꾸가 날 때까지 입고 다니겠다는 작정으로 8번 안치홍을 박은 첫 유니폼을 장만했다.
‘반드시’, ‘절대로’, ‘영원히’와 같은 확률 100퍼센트 또는 0퍼센트를 뜻하는 부사들은 야구의 세계에서 통하지 않는다는 걸 잘 알면서도 안치홍에게만큼은 그 단어를 서슴없이 붙였다. 그 결과, 나는 2020년의 시작을 그 누구보다도 춥고 괴롭게 보내야만 했다.
내 눈을 의심했다. 오보인 줄 알았다. 절규했던 거 같다. 짐승처럼 울부짖었을 수도 있다. 다들 그랬을 것이다. 안치홍이 타 팀으로 이적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제정신으로 버텼던 타이거즈 팬들은 없었을 거라고 감히 단언해본다. 애초에 등을 돌리고 떠났으면 나도 쉽게 마음을 접었을 텐데. 평소에 정이라도 안 붙였으면 맘 편히 작별인사를 했을 텐데. 차라리 나쁜 놈이었으면 욕이라도 실컷 할 텐데. 그게 아니란 걸 알아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안치홍이 자필로 남긴 마지막 메시지를 보면서 많이 울었던 기억이 난다. 지렁이같이 구불거리는 글씨 속에서도 그의 곧은 진심이 고스란히 느껴져서 더 슬펐다. 20년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다는 것이 가장 가슴이 아팠다는 그의 문장이 심장을 찌르는 것 같았다. 깨어진 약속에서 슬픔이 밀려왔고, 사랑으로 가득한 속이 타들어가는 걸 진정시킬 수도 없었다. sns는 해본적도 없으면서 마지막 인사를 남겨야겠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인스타그램 계정을 개설한 그는 이 게시물 이후 지금까지 어떤 것도 업로드 하지 않았다.
떠나는 순간에도 팬들에게 예의를 지키고자 했던 안치홍의 다정함은 지금도 종종 떠오르곤 한다. 그 다정함에, 나는 아직도 안치홍을 열렬히 응원한다. 많은 유니폼을 샀어도 여전히 내가 제일 아끼는 유니폼은 8번 안치홍의 유니폼이고, 야구장을 찾으면 언제나 그 유니폼을 챙겨 입는다. 올스타전 투표를 할 때면 드림팀의 2루수는 무조건 안치홍이고, 자이언츠와의 경기가 있을 때면 온 힘을 다해 안치홍의 응원가를 부른다. (물론 타이거즈가 이기길 바라는 마음을 져버린 건 아니다...) 타이거즈와는 이룰 수 없던 20년의 약속이지만, 그래도 20년 동안 쭉 프로 생활을 이어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애정을 담아 안치홍을 응원한다.
그리고 가끔은... 아주 가끔은... 20년의 약속, 그 마지막은 우리와 함께 해주길 바라는 낭만 어린 상상을 품어보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