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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의 함정

객관적 숫자도 인간의 해석이라는 프리즘을 통과하면 주관적 의견으로 바뀐다

by 와루


<퍼센트>는 무려 40개의 사회적 문제를 다루고 있다. 책의 목차만 보면 우리 사회의 문제가 이렇게나 많았었나, 사회가 제대로 작동은 되는걸까 의심이 들 지경이다. 저자는 이러한 사회의 면면을 살펴보는 것으로, 현재 우리 사회가 어떤 부분에 빈틈이 있는지,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하는지 이야기한다.


글을 구성함에 있어, 통계 오름차순으로 목차를 짠 건 신박했다. 주제별로 묶지 않아서 무엇을 강조하고 싶었는지 느껴지지 않아 아쉬었다는 의견이 있었지만, 나에게는 숫자로 나열되니 통계 수치가 더욱 강조되는 느낌이이어서 좋았다.


나는 오히려 목차에서 보이는 주제별 제목 선정이 더욱 아쉬웠다. 예를 들어, '6.2% 안전운임제'라고 하면 안전운임제의 효과가 6.2%라는 건지 안전운임제 적용을 받는 사람이 6.2%라는 건지 알 수가 없다. 또 '31% Z세대의 영상소비'라고 하면 어떤 영상을 31% 비율로 소비한다는 건지, 어떤 플랫폼을 31%의 비중으로 사용한다는 건지 잘 모르겠다. 또 '42.2% 음주운전'이라고 하면 음주운전이 42% 증가했다는 건지 형사범죄 중에서 음주운전이 42%를 차지한다는 건지 직관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66% 고독사'라고 하면 어떤 항목에 대애 고독사가 66%의 비중을 차지한다는 건지 명확하게 전달되지 않는다. 통계를 활용하여 한국사회를 읽으려는 책이기 때문에 통계자료와 통계의 제목만으로도 사회 문제를 바로 읽을 수 있게 해주었다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다양한 주제를 깊지 않게 다루고 있어서 쉽게 읽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그 깊이로 인해 저자의 의견과 해결책이 피상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는 단점이 있다. 나에게는 그 단점이 더 크게 다가왔던 책이었다. 독서모임을 통해 이야기를 나누면서 어쩌면 타깃 독자가 잘못 설정되었기 때문에 생긴 문제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숫자가 담지 못하는, 사회적으로 귀기울여 듣지 않는 이들의 이야기를 전달하고자 한다고 하였다. 이는 한국 사회의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꾸준히 팔로잉하였던 사람들이 구미를 느낄 포인트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너무 많은 이야기를 간단하게 담아내는 것에 집중하다보니, 이 책을 선택할만한 사람들에게는 충족되지 못할 아쉬운 수준의 정보값이 담겨있으며 그 해결방법마저 너무나도 피상적으로 느껴진다. 또한 통계를 해석하면서 이야기를 전개하는 것이 아닌, 어떠한 주장을 하기 위해 통계를 이용한다는 생각이 드는 부분도 있었다.


내가 이 문제점을 크게 느꼈던 건 두 가지 주제이다. 하나는 <장애인의 외출>이다. 이 파트에서는 피상적인 해결방법에 문제점을 느꼈다. 장애인의 이동권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현재 한국사회는 장애인이 대중교통을 이용하기에 매우 불편하며 장애인 택시 또한 원할하게 이용할 수 없는 환경이라는 점을 지적하였다. 여러 장애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들이 왜 밖을 나가길 꺼려하는지, 외부 활동 자체를 자꾸 포기하려하는지를 담았다. 그러면서도 마무리 문단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에 부딪혀보라고 말한다.


이러한 문장이 이동권을 침해받는 장애인들에게 어떠한 위로를 전해줄 수 있을까? 아니면 장애인 이동권을 보장하기 위한 해결방안이 될 수 있을까? 나에게 이 마지막 문단은 "그지같은 세상이더라도 우리만 힘을 내면 이겨낼 수 있어요!"하는 낙관주의, 오히려 당사자가 더 '노력'을 해야 극복할 수 있는 문제로 논점을 전환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 다음으로는 <주택가격과 출산율>이다. 이 파트에서는 통계의 해석에 문제점을 느꼈다. 여기서는 주택가격이 올라가면 출산율이 떨어진다는 통계를 근거로 출산율 해결을 위해서는 국가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린다. 그리고 이러한 국가적 지원이 출산율 해결에 도움이 됐다고 주장하고자 유럽의 여러 국가가 시행했던 제도들을 예시로 언급하였다. 그러면서 '인구가 국력'이라는 메시지가 전달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나는 이와 같은 의견에 동의가 잘 되지 않았다. 한국의 여성들이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이 정말 재정적인 이유 때문일까. 재정적인 지원만 된다면 출산율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부족했을지라도 국가 차원에서의 재정 지원은 꾸준히 있어왔다. 그럼에도 현재 이러한 결과가 나왔고, 이는 재정 지원은 출산율 문제 해결에 도움이 안 된다는 뜻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인구가 국력이면 뭐 어쩌라고. 이 책에서도 언급되고 있는 경력 단절 여성과, 직장 내에서 공공연한 임금 차별 및 채용 차별, 더 나아가 국가적 재난 사태와 다름없어진 여성을 대상으로 한 강력범죄와 국가가 방조하고 있는 것만 같은 해당 범죄에 대한 형벌까지. 이런 사회에서 여성이 국가를 위해 이 한 몸 희생해서 출산을 해야 하는 걸까. 이러한 사회에서 인구가 국력이니 출산율 문제 해결이 시급하다고 말하는 게 과연 여성에게 설득력을 가질 수 있을까. 저자는 사회적 불평등이 심화될수록 출산율 문제는 해결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점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러나 출산율 문제의 원인을 사회적 문제로 연결지어 말하고 싶었으면 성차별을 먼저 언급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지금 한국 사회에서는 말이다. 성차별적 사회 맥락을 제외하고 경제적 관점에서만 출산율 문제를 이야기하는 것은 현재 한국사회를 바라보는 여성의 시선을 거세하는 폭력이라고 생각한다.


독서모임을 하면서 또 하나 큰 문제라고 느꼈던 파트는 바로 <'계층 이동이 함들 것'이라고 답한 MZ세대>였다. 여기서는 계층 이동에 관한 MZ세대의 가치관을 명품 소비랑 연결지어 해석하였다. 즉, 아무리 돈을 열심히 벌고 모아도 계층 이동은 어려울 것이기 때문에 현재를 즐기고자 명품 소비에 열광한다는 것이다.

이는 너무 과한 해석으로 보인다. 이러한 주장을 하려면 적어도 명품을 소비한 20대의 수입이 어느정도인지를 분석하는 통계도 함께 따라왔어야 한다. 그러니까 수입이 적은데도 불구하고 명품 소비가 많은 것인지, 아니면 태생적으로 금수저여서 명품을 많이 소비하는 것인지에 대한 자료 정도는 첨부가 되었어야 한다. 20-30대 수입에 관한 추가 자료없이 해석된 정보를 읽는다면, 독자들은 "아, MZ세대들은 미래는 대비하지 않고 펑펑 소비하는 사람들이구나."하는 편견이 생길수도 있지 않을까.



독서모임을 통해 함께 이야기를 나누면서 통계의 함정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되었다. 통계는 숫자일 뿐, 그걸 해석해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은 사람이다. 하여 똑같은 숫자가 주어지더라도 정반대의 이야기가 만들어질 수 있다. 나는 저자가 통계를 해석한 시선이 틀렸다고 생각하지만, 누군가는 근거가 명확한 해석이라고 생각할수도 있다. 이러한 점이 통계의 무서운 지점을 되새기게 해주었다. '통계'라는 객관적인 근거를 통해 신빙성이 높아진 저자의 주장은 쉽게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게 또 다른 편견을 만들어내는 빌미가 된다면, 그 편견 또한 쉽게 깨지지 않아 사회에 혼란을 줄 수도 있다.


통계는 잘 쓰면 주장의 신뢰를 높여주는 주춧돌이 되겠지만, 잘못 쓴다면 주장에 자꾸 발이 걸리게 되는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 이를 잘 판단하기 위해서는, 즉 잘 쓴 통계인지 아닌지를 알기 위해서는 더 많은 뉴스를 보고 책을 읽으면서 사회를 읽는 눈을 기르고 나의 생각과 가치관을 착실히 쌓는 방법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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