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에서는 노동자도 그냥 될 수 없다. 절박한 마음으로 성실하게 준비하여 경쟁력이 있음을 증명한 사람만이 노동자의 자격을 얻을 수 있다. 이 모든 걸 획득한 사람들은 흔히 말해 '정상성'의 범주에 들어가는 사람들이다. 여기에 소속되지 못한 사람들은 노동자 트랙에서 이탈한 것으로 간주, 일할 자격을 얻지 못하게 된다.
<일할 자격>은 여러 이유로 일할 자격을 갖추지 못하게 되어버린 이들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이들 대부분은 절박한 마음으로 성실하게 노동을 하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환경이나 가치관 또는 육아로 인해 직장에 온전히 매여있지 못해 간절함이 없는 사람으로 여겨지거나, 정신질환이나 부족한 몸관리를 탓하며 자기관리 능력이 부족한 사람으로 치부되곤 한다. 또는 나이가 있어서 일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 군대를 가지 않아 사회적으로 결격사유가 있는 건 아닌지 매순간 의심의 눈초리를 받으면서 일을 하고 있다.
1장에서는 성실하지 않은 청년 세대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취업난의 세계에서 직장에 적을 두고 있으면 노력을 해서 잘 버틸 생각을 해야지 왜 자꾸 그곳을 뛰쳐나가려고 하는건지, 정말 이해를 할 수 없다는 물음에 인터뷰이들은 나름의 이유를 설명한다.
좋은 직장이란, 보편적으로 규모있는 직장의 정규직을 의미한다. 적절한 보상이 주어지면서 나의 고용 상태가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는 그런 곳. 작년에 어떠한 계기로 이와 같은 자리를 잡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지금 나의 상황을 보았을 때 쉽게 찾아오지 않을, 안정성이 확보된 그런 자리였다. 그때, 닥쳐오는 상황에 그대로 흘려다니던 나답지 않은 깊고 오랜 고민이 시작되었고 결국은 그 자리에 가지 않았다. 어쩔 때는 후회가 되기도 했지만 그래도 잘한 결정이라고 자기 위로를 해보는 건 1장에서 나온 미리와 비슷한 이유였다.
쓰레기를 무한하게 생산해내는, 제 삶의 가치관과 배치되는 회사생활에 큰 곤혹을 느꼈다던 미리의 이야기. 나의 가치관과 정반대로 달려가던 글에서 괴리감을 느끼던 나날들, 그 안에서 어떻게든 균형을 맞춰보고자 애를 쓰던 노력들과 나를 부정하면서까지 상대에게 동조하던 모습들에서 회의감이 들었던 순간들이 오버랩되었다. 누군가에겐 그냥 참고 무시하면 될 일이지만 어떤 이에겐 목에 박힌 가시처럼 견디면 견딜수록 염증을 일으키는 포인트가 있다. 자리와 자신을 골라야 하는 갈림길에서 나는 견딜 수있는 최대한을 견딘 후에 자리를 떠닜다. 그게 자신을 골랐다는 말과 같은 의미인지는 잘 모르겠다. '돈벌이'니까 인내할 수 있는 건 어디까지일까. 또 어디까지여야만 하는 걸까. "일이니까 견뎌야지" 수준의 마인드컨트롤로는 참아지지 않는 순간들이 있다는 게 나뿐만은 아니라는 것. 그것에 일순간 안도감을 느꼈지만, 동시에 씁쓸함이 전해지기도 했다.
또 모른다. 이렇게 느끼는 건, 진짜로 세상이 말하는 것처럼 아직 내가 덜 간절해서일수도 있다는 것을. 간절하다 생각했지만 '진짜' 간절한 것은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치만 나는 정말 간절한데.. (간절탈트붕괴가 오는 것만 같다.) 이러한 '간절'의 굴레에 갇힌 채 절박함이란 무엇일까 생각해보게 된다. 책을 보면 사회 초년생일때는 절박함을 입증하지 못해서 게으르고 나태한 사람이 되어버리기 일쑤지만, 정작 자리를 잡은 후에는 그 절박함을 빌미로 희롱당하거나 부당한 대우를 받게 된다. 아니면 일부러 절박함을 더 내비쳐서 원하지 않는 사연팔이를 해야 하거나. 절박하지 않(아보이)는 사람에게는 탈락자의 낙인을 찍고, 절박한 사람은 조종하려 들고.(아주 그냥 미친 세상이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이 나의 능력치를 검증하는 도구가 되어버린 사회에서 어떤 건 잘 숨겨야 하지만 어떤 건 잘 가꿔서 예쁘게 내비쳐야 한다. 상반되는 두 성질은 각각 정신질환과 몸을 뜻한다. 정신질환을 다루는 3장, 과체중과 몸관리에 대해 이야기하는 5장을 통해 "현대사회에서 자기관리는 능력의 다른 말이다."라는 말이 우리를 얼마나 족쇄처럼 옭아매왔는지 생각해보게 된다.
정신질환자임을 드러내는 것은 결국 나의 약점을 드러내는 일. 매 순간 능력을 증명해야 하는 한국사회에서 자기관리 미흡으로 인한 능력 부족을 본인이 나서서 까발릴 필요가 있을까. 그래서 숨길 수 있는 정신질환은 굳이 꺼내려 하지 않는다. 내 속이 곪아서 썩어가든 말든 상관하지 않고, 이를 잘 숨겨서 내 자리를 지키는 것이 곧 자기관리 능력임을 잘 알기에. 그게 아니어도 평가 받을 건 널리고 널렸으니까.
정신질환이 숨길 수 있는 약점이라면, 몸은 가장 수월하게 극복할 수 있는 단점이다. 일정 자본이 투입되어야 만들어낼 수 있는 학력, 고스펙 등과는 달리 몸관리는 정말 내 의지 하나면 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몸관리는 과정이 단순하다는 이유로 더 많은 지적을 더 쉽게 받는 능력치이면서 같은 이유로 스스로를 더 강하게 몰아치는 채찍이 되기도 한다. 다들 하는 거니까, 나도 해내야만 하는 거라서.
나에게 3장과 5장은 성차별적인 환경에서 분투하는 여성 노동자의 이야기라는 맥락에서 하나의 이야기처럼 읽히기도 했다. 여성 직장인이 정신질환을 겪는 가장 큰 이유는 성차별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근거 없는 기준으로 차별대우를 받으니 무시당하지 않고 쓸모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몇배는 더 신경쓰고 노력해야 한다. 엄격한 평가를 받은 자존감은 떨어지고 떨어져 스스로를 더 몰아붙이게 되고, 그렇게 과로는 필연적으로 동반하게 된다. 정신적으로 피폐해지고 수척해지는 과정을 지날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여성 직장인들은 병들고 곪아간다. 아주 자연스럽게.
근거 없는 기준 중에서도 가장 근본없는 기준이 바로 외모이다. 주변인들은 외모 관리 또한 자기관리 능력의 연장선이라는 말로 아주 그럴듯하게 포장하여 마치 걱정인듯이 혹은 조언이랍시고 숱한 평가를 퍼붓는다. 둔해 보이지 않기 위해 다이어트를 하거나 밝은 인상을 주기 위해 메이크업에 신경을 쓰는 등 남성 직장인에겐 필수가 아닐 요소에 여성들은 또 다른 시간과 노력을 투자한다. 그 과정에서 따라오는 스트레스는 스스로 감당할 몫이다.
자기관리라는 명목으로 여성은 스스로를 얼마나 더 다그쳐야 하는 건지, 3장과 5장은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없다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치열한 노동의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외모를 비롯한 자기가 가진 모든 능력을 정밀하게 갈고 닦되, 여기서 비롯된 정신적 스트레스는 철저히 숨길 것. 정신질환으로 인해 약점이 발생한다면 더욱 완벽한 능력치를 가질 수 있도록 할 것. 이 과정이 야기하는 스트레스로 자신이 나약해지는 것만 같다면 더더욱 완벽한 능력 향상을 위해 부족한 노력을 채울 것. 이건 뭐 뫼비우스의 띠도 아니고, 외모 강박과 졍병이라는 돌고 도는 쳇바퀴에 진력이 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자꾸만 우울해졌다.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열심히 수행하고 있지만, 그걸로는 부족하다는 듯 매 순간 자격과 능력을 검증하려 드는 사회의 모습들을 보면서 숨이 갑갑해짐과 동시에 두려움이 생겼다. 저렇게 빽빽한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나는 저 사회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인가. 설사 들어간다 하더라도 튕겨나오지 않을 수 있을까. 아니, 내가 버틴다고 해도 내쫒기지 않을수나 있을지. 여기서 버티지 못해서 나태한 사람이라는 낙인을 받고 탈락하거나,버티기 위해 애쓰다가 그렇게 정병에 걸리거나. 선택지가 두 개 뿐인 잔인한 게임.이곳에서 나는 노동자로서 건강하고 온전하게, 한 명의 개인으로서 삶을 챙길 수 있을지. 걱정이 마구 덮쳐왔다. 그래서 이렇게 횡설수설 말이 길어졌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