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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일 수 없었던 인생

그 인생에 진 빚

by 한솔

인생이 계절이라면, 내내 봄이면 좋겠다고 고백했었다. 무엇보다 우리 부모의 남은 시간이 다 그랬으면 했다. 지금껏 그러지 못한 것 보상 삼아, 남은 시간은 사랑만 그득그득 챙겨 먹었으면 했다.


그런데 그들이 한겨울도 춥지 않았다고 한다면, 내가 뭐라고 감히 그들에게 봄처럼 살자고 할 수 있을까. 꿈도 없이, 취향도 없이 사는 것도 나름 좋았다고. 당신 꿈을 먹고사는 자식들 크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고. 그것이 나의 최선이고 최고였다고, 그리 말한다면 내가 감히 무어라 할까.


모두가 봄처럼 따스히 살자던 내 말은, 결국 봄일 수 없었던 세대에게 빚진 자식이, 제 마음 편하자 한 고백 아닌가 모르겠다.


혹여 사랑이 부족할까 싶어 그걸로 꽉 채워 따듯하자던 내 고백은, 최선을 다해 사랑한 부모를 부정한 건 아닌가 모르겠다. 살아야 하니까 산 게 뭐. 아기새 마냥 엄마엄마 거리던 자식 위해 버틴 삶이, 사랑 아니고 무엇이랴.

그런데 왜 이 모든 게 믿어지지 않는지 모르겠다. 부모의 희생과 자식의 감사가, 나는 왜 그토록 싫은지 모르겠다. 부모를 인정하는 일이 왜 나를 부정하는 것처럼 느껴지는지, 나는 왜 이렇게 싸가지 없는 딸인 건지, 도저히 모르겠다..


2025년 3월 21일, <폭싹 속았수다>를 보고 들킨 마음에 대한 두 번째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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