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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닷 Jun 05. 2024

당신이 오늘 사진작가가 되어야 하는 이유



휴일에 모처럼 야외로 나갔다. 봄이 언제 지나갔는지 눈치채기도 전에 여름을 맞이해 버릴 만큼 정신없던 와중의 외출이었다. 실려가는 차 안에서도 일을 하느라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그렇게 바삐 도착한 곳에서는 전주국제그림책도서전이 한창이었다. 공원 주변의 모든 건물과 전시물들이 아름다운 곳이었다. 햇살도, 공간도 아름다운 장소 덕분이었는지 마음에 드는 사진을 한 장 건졌다. 일행들은 다들 본래의 방문 목적에 따라 그림책을 구경하고, 열심히 그림책 사진을 찍느라 바빴지만 그날 유독 내 시선을 끄는 것은 인공분수대 옆에서 물장난 치며 노느라 흠뻑 젓은 아이들이었다.


맨발로 뛰노는 아이들의 찰방거리는 소리가 비좁은 내 가슴을 후드려쳤다. 뜨거운 햇살아래 아이들 옆으로 흩뿌려지는 물방울들이 찬란했다. 맨발이어도, 다 젓어버려도 마냥 즐겁기만 한 아이들의 천진한 웃음소리에서 눈을뗄 수 없었다. 한 자리에 앉아 수십 장의 셔터를 누르며 녀석들을 물끄러미 바라볼수록 이상하리만치 충전되는 나를 느꼈다. 그리고 수십 장의 사진 중에 한 장의 사진에 내 감상을 오롯이 담아내는 데 성공했다. 그늘진 곳을 뚫고 빛나는 햇살과, 물방울과, 슬그머니 비치는 파랑새와 그 한가운데를 누리는 아이. 내가 그날 그 순간을 어떻게 보았는지 나만의 감상을 설명할 수 있는 작품이 탄생했다.


사진은 내가 좋아하는 그림책처럼 시각 언어를 표현하는 매체이다. 좋은 사진에는 이야기가 담겨있기 마련인데 그런 면에서 사진은 문학에 가깝다. 그러니 내가 사진을 즐기는 것은 필연적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때로 눈앞에 있는 세상을 사진으로 남기고 싶어 한다. 신기한 것은 여러 사람이 동시에 같은 곳에서 사진을 찍었어도 사진이 다 다르다는 것이다. 만약 모두가 다 아는 그것을 모두가 같은 모습으로 찍었다면 그것을 작품이라 부르지는 않는다. 찍는 사람만의 시선이나 이야기가 담겨있지 않은 사진은 그냥 현실을 베낀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떤 사진을 작품으로 느낄까? 늘 보아오던 세상이 사진 속에서 문득 낯설게 보일 때다. 작가만의 프레임으로 세상을 다르게 담아냈을 때, 작가가 보여주고 싶어 하는것 사진속에 선명히 보일 때 예술작품을 본다고 느낀다. 좋은 사진은 덧붙여 설명할 필요 없이 보는 순간 작가의 생각이 읽힌다. 그래서 사진 찍는 사람을 사진작가라고 부른다.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것들을 마주하는 찰나에, 마음을 일렁이게 하는 장면을 마주하는 순간에 우리는 문득문득 사진작가를 소망하곤 한다. 순간 당신이 느낀 심상을 사진에 담고 싶은 강한 열망을 흘려보내지 않고 카메라를 꺼낸 든다면 당신은 사진작가가 될 수 있다. 나만의 시선이 담긴, 나만이 찍을 있는 장면은 작품이 될 수 있다. 사진은 구구절절이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찰나의 시간을 장의 사진에 함축적으로 담아낼 있다는 점에서 백의 미가 있는 시와도 닮았다.  


트렌드 코리아 2024(미래의 창)에서 저자는 시간의 효율성을 극도로 높이기 위해 모두가 분초를 다투며 살게 되었다는 뜻에서 올해의 키워드로 '분초사회'를 명명했다. 어느 순간부터 대한민국은 '빨리빨리'를 넘어서 빼곡하게 '바쁘다 바빠'천국이 되었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 뒤처질세라 모두가 발바닥에 땀나도록 뛰고 있지만 소소하게 얻는 것 뒤로 잃는 것은 없는가도 돌아볼 일이다. 특히 삶의 여백을 잃어가고 있지는 않은지. 허투루 보내는 시간, 아무 생각 없이 멍한 순간, 무엇이든 끼어들고, 스며들 공간이 있는 느슨한 사고... 모두 돈벌이에 도움 될 것 같지 않은 허술함으로 취급받기 일쑤다. 그러나 자기 성찰과 성장, 창의적 아이디어와 발견은 사실 그런 순간에 발현된다. 그러니 가끔 햇살아래 서는 날이 있거든 의도적으로 여백을 찾아보자. 휴대폰 카메라를 켜고 시인의 눈으로 사진작가가 되어보자. 여백의 미를 찍다 보면 그 안에서 날 선 나도 발견하고, 지친 나도 위로받고, 소중한 나도 사랑할 수 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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