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제 일입니다만...
"담당자님~ 제목에 저자명이 입력되어 있어요!"
"아…. 사서선생님~ 사람이 하는 일이다 보니 그럴 수도 있지요."
"복권 표시도 안되어 있고, 책 제목과 다른 표지가 저장되어 있거나, 학생 책인데 어른 책으로 별치기호를 잘못 부여했거나, 그림책인데 별치기호를 빼먹는 등 잘못 입력된 건이 너무 많은걸요. 이러면 아이들이 책을 제대로 검색해서 찾을 수가 없습니다."
"사서선생님~ 솔직히 모든 학교가 다 비슷한 시기에 전산작업을 의뢰합니다. 기한안에 납품을 완료해야 하는데 어떻게 한 권 한 권 꼼꼼히 다 보겠어요~? 너무 무리한 요구를 하시네요. 납품기한 못 지키면 책임지실 겁니까?"
"네??? 정확한 서지정보 입력이 무리한 요구라고요? 작업을 의뢰한 도서의 권당 금액을 다 지불합니다만…. 제가 뭘 더 책임져야 하나요?"
신간도서 전산작업을 엉망으로 해서 납품한 업체 담당자는 적반하장으로 꼼꼼히 검수하는 나를 나무랐다. 심지어 다음 학기에는 아직 사서가 바뀌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 한 뒤, 우리 학교의 전산작업 의뢰를 거부하겠다고 선언하기까지 했다. 이 작은 도시에서 나는 별난 사서로 소문이 나버렸고, 그해 2학기부터 다른 지역의 전문업체를 섭외해서 전산작업을 의뢰해야 했다. 사서가 없는 학교의 도서납품은 쉽다. 전문가가 없으므로 제목이 틀리든, 표지가 틀리든 꼼꼼히 들여다 보고 수정을 요구할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사서가 되고 처음으로 교육청에서 공식적으로 업무관련 교육을 받던 날이었다. 초보 사서와 사서는 아니지만 도서관을 담당하게 된 초보 도서관 담당자들을 위한 교육이었다. 사서는 신입 채용이 드물기 때문에 사실 일반 교사나 행정원 등이 사서보다 훨씬 더 많이 참석했다. 나는 그곳에서 놀라운 교육을 들었다.
“자~ 우리 선생님들 아이디 발급받는 방법, 대출반납 해주는 방법. 여기까지 배우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이제 도서구입 교육을 받을 차례인데요… 교과업무도 바쁘신데 도서관 업무 교육까지 받느라 정말 힘드시지요? 그러니 무슨 책 사야할지까지 고민하시면 너무 힘드니까 이건 그냥 도서납품 업체에 다 맡기세요. 알아서 적절한 책으로 라벨작업까지 해서 갔다 줍니다. 예산만 맞으면 되지 책 잘못들어 왔다고, 전산등록 잘 안됐다고 뭐라고 할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제말 믿으시고 도서구입 업무는 편하게 하세요. 편하게~. 자 다음 교육은….”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자신이 도서관 관리 업무를 담담하게 되었다는 현실 자체가 부담스러운 일반 교사들을 위로하기 위해서 한 말이었던것 같다. 당장 제일 급한 대출반납 업무 말고는 부담을 좀 내려놓으셔도 된다는 취지에서 선택과 집중의 요령을 코칭한 것이리라. 하지만 뭐든 많이 배워서 현장에 하루빨리 적응하려고 눈에 불을켜고 교육을 듣던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나는 저 담당자를 고발해야겠다고 생각하며 교육자료에 담당자 이름 석자를 크게 적었지만 다른 선생님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다음 페이지를 넘겼다. 아 참… 교육에 너무 과몰입해서 여기가 직장이란걸 깜빡했다. 나는 고발이고 나발이고 튀어나온 입을 밀어넣었다.
납품업자는 교육자가 아니라 이문을 남겨야 하는 장사치이다. 그들이 알아서 선정하고 전산등록한 전집과 철지난 책들이 수많은 학교 도서관에 뽀얀 먼지와 함께 쌓여있다 한들 대체 누구를 탓할 수 있겠는가. 납품업자는 학생들이 책을 잘 이용하든 말든 납품 이후의 문제에 책임이 없고, 전산등록 업체는 내용이 맞든 틀리든 전산에 등록 되어 있기만 하면 임무완료다. 책이 대출이 되든 안되든 담당 교사는 예산을 기간내에 100% 집행하기만 하면 업무완료다. 도서관 운영이 잘되든 안되든 전산에 등록된 도서의 권수가 그 해 많이 증가하면 교장선생님의 인사고과는 긍정적이다. 사서가 없는 대부분의 학교가 이렇게 편하게 도서납품을 받는다. 그냥 전체 권수가 정확하고, 청구기호 라벨이란것이 너덜거리지 않게 잘 붙어 있으면 된다. 그러니 몇백 권의 책을 한 권, 한 권 검수작업 하는 사서의 존재는 납품업자에게도, 전산업체에게도 불청객인것이다.
학교도서관은 학교 운영비의 3% (경남은 4%)에 해당하는 예산을 매년 도서구입비로 집행한다. 적지 않은 돈이 제 몫을 하게 하려면 구매 대상 도서를 선정하는 과정에서부터 전산등록까지 세심하게 고민해야 한다. 나는 올해도 업체 전산작업 담당자와 세부사항을 꼼꼼히 사전논의 한다.
"네~ 볼륨넘버 꼭 표기해 주시고요, 표지 중앙 하단에 중요한 그림이나 정보가 있을 경우에는 등록번호 라벨을 다른 곳에 붙여 주세요."
아무래도 까탈스러운 사서라는 오명은 계속 안고 가는 수밖에 없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