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행복학교는 처음이라...
도서관은 행사를 자주 한다. 독서의 달 기념, 한글날 기념, 독도의 날 기념, 세계 책의 날 등등. 크고 작은 행사 핑계로 꼬마 손님들의 눈길을 한 번이라도 더 끌어보기 위한 몸부림이다. 아이들이 오지 않는 도서관은 죽은 도서관이기 때문이다. 행사는 도서관을 살아 숨 쉬게 하는 핵심 요소 중 하나다. 사서가 된 그 달에 바로 다음 달 행사에 대한 교감 선생님의 문의가 있었고 나는 궁리 끝에 야심 차게 첫 번째 행사를 펼쳤다.
자유롭게 책을 읽고 나서 자신의 감상이나 질문, 책 소개 등 하고 싶은 말을 짧은 글로 적어내는 '책똥 누기'라는 것인데, 책똥누기 용지에 글을 적어서 내면 작은 선물도 주고, 글을 전시해서 다른 친구들이 읽어볼 수 있도록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정말 유익한 행사라는 생각에 자신감이 마구 솟구쳤다. 처음부터 이렇게 좋은 행사를 기획하다니~! 음~ 스스로가 좀 대견했다.
학생들을 위한 홍보 포스터를 곳곳에 붙이고, 각 반 담임선생님들에게도 꼼꼼히 홍보 메시지를 날렸다. 드디어 행사가 시작되었고 아이들이 책똥누기를 적어서 내면 나는 도서관의 초대형 게시판에 학년별로, 반별로 쭉 줄을 세워 전시를 했다. 어느 학생이 많이 참여했는지, 어느 학년이 더 많이 참여했는지 어느 반의 참여가 저조한 지 한눈에 훤히 보였다. 삐뚤빼뚤한 아이들의 예쁜 글들을 보니 뿌듯했다.
2학년 9반 아이들이 게시판을 보더니 갑자기 자기들 반이 일등을 해야 한다며 엄청나게 많은 참여를 했고, 5학년 중에서 유독 두 반은 거의 참여하지 않았다. 나는 선물도 많이 준비했으니 2학년처럼 적극적으로 참여해 보시라고 5학년 담임선생님들에게 적극적인 홍보의 메시지를 또 띄웠다. 2학년도 9반만 월등히 앞서가고 있으니 다른 반 들도 분발해 보시라고 메시지를 또 띄웠다. 하... 지금 다시 생각해도 식은땀이 쭉 날 정도로 아찔하지만, 그때까지 나는 내가 무슨 실수를 저지르고 있는지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
전체 쪽지를 메신저로 날리고 그다음 쉬는 시간이 되자마자 5학년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반별, 학년별 비교와 경쟁을 강요하는 행사가 불편하다는 전화가 두통이나 오고, 아직 얼굴도 본 적 없는 2학년 담임선생님들로부터 이벤트 참여는 학생 자율에 맡기는 게 옳은 것 같다는 항의의 메신저가 빗발쳤다. 도서관 행사의 운영방식이 행복학교의 철학에 맞지 않다며 교감선생님께 찾아가 화를 낸 담임선생님도 있었다. 교감선생님은 놀란 토끼눈을 하고 허둥지둥 도서관으로 쫓아오셨다.
아니... 나는 경쟁을 강요한게 아니라 그저 한눈에 훤히 잘 보이게 정리를 한 것뿐인데... 굳이 비교를 하려 했던 게 아니라 이렇게 잘하는 반도 있으니 좋은 행사에 같이 참여해 보시라고 권한 것뿐인데 이게 뭐 그리 대단하게 경쟁을 강요한 것인가 싶었다. 행사의 내용이 이렇게 좋은데 대체 내가 뭘 모른다는 것인지 뭔가 막 억울하고 서러웠다. 난생처음 들어보는 그 행복학교의 철학이 도대체 뭐길래 이렇게 학교가 발칵 뒤집힐 정도로 난리인지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툭툭 떨어지는 눈물에 마음이 불에 덴 듯 쓰렸다.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지만 초대형 게시판에 눈치 없이 펄럭이며 줄지어 붙어있는 아이들의 글이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행복학교는 경남형 혁신학교를 말하는데 각 학교의 구성원들이 추구하는 핵심 철학을 바탕으로 교육목표를 공유하고 운영한다. 이 학교의 교육철학에는 민주적이고 자발적인 문화, 꿈 키움, 나눔 등이 있지만 특히 경쟁을 지양한다. 아이들의 자유의지와 선택권을 존중하고, 민주적 절차를 중요하게 생각하며, 불필요한 경쟁으로부터 아이들의 행복을 지켜내기 위해 많은 선생님들이 노력하는 곳이다.
나는 감히... 행복학교의 철학과 교육과정에 대한 고민 따위 전혀 없이 나만의 상식대로 도서관운영을 계획한 간 큰 사서였던 것이다. 게다가 내가 하는 행동이 경쟁을 부추긴다고 인지하지 못했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였다. 그저 많이 참여하라고 잘 안내한 것이라 생각했다. 나는 뼛속까지 줄 세우기 식 서열문화에 익숙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어쩌면 당연했다. 내가 받은 모든 교육과정 속에서는 무한경쟁이 기본값이었다. 비교우위를 점하는 자가 우월한 자였으며, 낙오자들 안에서 마저 평가의 평가를 거듭하며 성취의 값어치를 매겼고, 노력의 크기는 숫자로 재단하여 존재의 경중을 노골적으로 알렸다. 더 훌륭한 인재가 되지 않으면 더 쓸모없는 인간이 될지도 모른다는 수많은 경고와 협박을 받으며 졸업장을 겨우 겨우 받아 냈었기에. 하여간에 이런 구차한 변명을 할 기회는 따로 없었고 나는 그저 초짜 냄새 폴폴 나는 발자국을 제대로 남겼다. 그 뒤로도 두어 번 더 학교 구성원들의 충고와 조언을 들어가며 도서관의 운영 방향을 수정하는 시행착오의 시간이 뒤따랐다.
교무실에서는 학기마다 행복학교에 관한 책을 구매해서 전 교직원의 손에 쥐어 주었다. 살짝 안도가 되었다. 나만 잘 모르는 건 아닌 모양이었다. 나는 담임도 아니고 수업도 하지 않지만, 특히 이런 책들은 내 취향과 정말 맞지 않지만 나는 읽고 고민해야 했다. 책을 읽고 다른 선생님들과 회의 시간에 책의 내용에 대해 다 같이 대화를 나누니 확실히 도움이 되었다. 부끄럽지만 사실은 아직도 행복학교의 철학이란 것을 완벽하게 다 안다고 확신하지는 못하겠다. 다만 도석관 운영에 대한 나만의 철학은 조금씩 다듬어졌다.
남과 평생을 경쟁하고 비교하며 평가받는 것은 불안하고 고통스럽기 짝이 없는 일이다. 그래서 나를 갉아먹지 않는 경쟁은 단 하나. 나와의 경쟁뿐이다. 어제의 나와 비교해서 오늘 더 나은 내가 되면 성취를 이룬 것이다. 나는 내 자유 의지로 내가 원하는 바를 이뤄낼 수 있는 사람이라는 자기 확신. 그 확신이 아이들을 행복하게 해 준다. 이런 긍정의 마음은 다음 성취를 기대하게 한다. 다음에도 해 낼 수 있을 거라는 자기 확신을 가진 행복한 아이들. 행복한 학생으로 가득한 도서관을 만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