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근육

ㅣ 생각없음의 유죄

by 느닷

“어! 야! 너 어제 학원에서 수학 20점 받았지~? 맞지? ”

쉬는 시간에 열명 남짓한 2학년 학생들이 줄을 서서 도서대출을 기다리고 있었다. 쉬는 시간이 끝날 때쯤 도서관 문턱을 넘어 헐레벌레 들어서는 한 남학생. 줄 서기가 지루하던 참에 그 녀석을 발견한 한 여학생이 뭔가 재미난 일이 떠올랐다는 듯이 갑자기 그 남학생에게 손가락질하며 큰 소리로 소리친 것이다. 일순간 도서관에는 정적이 흘렀고 모두의 시선이 그 남학생에게 향했다.

당황한 남학생의 얼굴이 붉어지는 속도와 소리친 여학생의 웃음소리가 정비례 상승을 하면서 함께 줄 서있던 주변 아이들의 어색한 웃음소리가 까르르르 퍼져나갔다.

"푸하하하하...!"

주변의 웃음소리에 힘입어 여학생이 한번 더 소리쳤다.

“아! 30점이었나? 20점 맞지? 그지! 응?”

같이 웃지 않으면 자신도 수학 20점짜리 사람이 되기라도 할세라, 함께 줄 서있던 학생들은 자동반사적으로 그 남학생을 바라보며 까르르 대열에 합류했다.

어두우면 불 켜듯이, 고민의 흔적 없이! 일말의 주저함 없이! 가해자와 함께 방관자의 줄에 서는 아이들을 마주하는 순간 이름 모를 저 남학생만큼이나 마음이 아프고 괴로웠다.

그 남학생은 도서관에 마저 들어오지도, 그렇다고 나가지도 못한 채 얼어붙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아이들은 왜 자신이 마주한 상황에 대해 입장 바꿔 생각해 보지 않는 것일까?

나는 날뛰는 감정을 누르며 정색한 얼굴로 까르르 팀을 스캔했다. 나름의 정리 수순을 밟았지만 처음 마주한 광경에 어찌할 바를 몰라 엉망이었다.


“학생아~ 너는 수학을 잘하는가 보구나? 그럼 수학 못하는 친구를 좀 도와주는 건 어떨까? 그럼 네가 훨씬 멋있어질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러면 네 마음도 기쁘고, 친구도 고마워하지 않을까?, 그리고 방금 같이 따라 웃은 친구들! 지금 어느 부분이 웃겨서 웃었던 건지 말해줄 수 있는 사람 있어? 아무도 없어? 뭔지도 모르고 그냥 따라 웃은 거야? 같이 웃지 못한 친구는 어떤 기분일지 혹시 생각해 봤니?"





내가 이따위 소리를 지껄이는 동안 그 이름 모를 남학생은 소리 없이 도서관 밖으로 도망쳐 버렸고 그 뒤로 다시는 도서관에서 만나보지 못했다. 누군가를 비하하며 내 존재 가치가 더 의미 있다고 공표하는 이 잔인한 방식의 화법에 자동반사적으로 동조하는 생각 없는 아이들의 모습에 나는 충격을 받았다.



학교에 간다는 것은 생각할 능력을 길러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게 되는 것이라고 하는데 ('최고의 질문을 하는 사람, 북퍼실리테이션'/황정혜/박이정/2022출판) 생각할 힘을 길러 준답시고 독서를 시켜왔건만 나는 내공이 터무니없이 부족했다. 부끄럽고 미안했다.





사실 '생각 없음'은 어른에게 배운 바가 클 것이다. 지난주에 비보잉 공연을 관람하던 중이었다. 웅장한 음악과 함께 공연이 시작되자 앞 좌석에서 한 남학생의 혼잣말 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옆 좌석에 어머니인듯한 여성은 이 남학생의 입을 가리고, 옆구리를 찌르며 제지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아마 자폐 성향을 가진 가진 학생인 듯했다. 소란스러운 말소리가 공연 틈틈이 떠다니자 뒷자리에 앉은 어린아이가 옆 자리에 앉은 어머니에게 질문했다. "엄마, 저 사람 왜 자꾸 큰소리로 말해요?". 그러자 어머니는 단호히 대답했다. "응. 저 앞에 이상한 사람이 있어. 에잇 참!" 이상한 사람... 그 대답은 나를 지나 내 앞에 앉은 자폐학생과 그 보호자의 귀에 들어갈 만큼 충분히 큰 소리였다.


18년 전 심한 아토피로 피고름이 범벅인 첫째 아이를 업고 동네를 걷던 내가 흔히 들었던 말이다. 이상한 아기. 이상한 엄마. 이상한 사람. 신나는 댄스음악이 귓가를 맴도는 동안 목구멍 가득 아픈 기억이 차올랐다. 어쩌면 저 앞에 앉은 자폐아의 보호자는 그런 말에 이골이 나서 무심히 흘려 들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그녀의 어깨를 한뼘 움츠러 들게 만들기에는 충분한 말이다.


사람들은 자신과 다른 사람을 '이상한 사람'이라고 고민 없이 쉽게 단정 짓는다. 참 잔인한 처사다. 어떤 이유와 목적으로 공연에 자폐가 있는 자녀를 데리고 온 건지 알 수 없으며, 사실 그녀가 어머니 인지도 확실치 않았다. 자폐아는 공연이 끝날 때까지 혼잣말을 왕왕했고, 뒷좌석의 어린아이는 공연 내내 이상한 사람을 향해 싫은 내색을 하며 앞 좌석의 등받이를 신나게 발로 찼다. 어린아이의 어머니는 아이를 제지하지 않았다.


나는 공연 내내 불편한 마음이 목을 조르는 듯해서 공연을 제대로 감상하지 못했다. 자폐아를 대중 공연에 데려온 어머니가 이상한 사람일까, 자녀에게 관람예절은 가르치지 않고 자폐인은 이상한 사람이라고 가르치는 어머니가 이상한 사람일까? 나는 삼자대면을 하고 서서 진지하게 대화하는 모습을 상상해봤지만, 공연이 끝나기 직전 자폐아와 보호자는 쫗기듯 공연장을 빠져나갔고 세 번째 이상한 사람이 될 기회는 내게 오지 않았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존재 의미를 고민하고, 더 나은 삶을 욕망하며 생을 이어간다. 그런데 그 속에 나의 생각이 없다는 것은 칼의 날을 손에 쥐고 사는 것과 같다. 우리는 흔히 말한다. 글쎄... 모르겠네~, 생각해 본 적이 없는걸, 아무 생각 없었어, 고민하기 귀찮아... 내 생각이 없다는 것은 '내 삶'에게 명백한 유죄다.


생각은 없지만 비교우위에 서고 싶고, 고민은 귀찮지만 존재 가치가 빛나기를 원하는 오만한 사람들이 보통 사회를 병들게 하는 사건의 선봉에 자신도 모르게 서기 마련이다. 좋은 삶을 살고 싶다면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알아차릴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이것이 쉽다는 말은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생각하는 근육을 기르고 사고의 짜임을 단단히 만드는 도구로 독서를 이용하는 것이다. 이것이 독서의 이유다. 더 나은 성적, 더 나은 진학, 더 나은 직장, 더 나은 비교급의 성취를 위한 것이 아니라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한 법을 배우기 위함이다. 부디 읽고 생각하고 함께 이야기 나누자.





무지는 용서받을 수 있다.
그러나 무사유는 죄악이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 한나 아렌트 / 김선욱 역 / 한길사 / 2022년 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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