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알고있는게 진실이라는 확신의 오류

by 느닷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상실, 사랑 그리고 숨어 있는 삶의 질서에 관한 이야기) / 룰루 밀러 / 곰출판 / 2021년 출판.


사실 이 책을 채 다 읽기 전에 정말 재미가 없다며... 성급한 비난의 서평을 일갈한 글이 즐겨 들리는 카페 어딘가에 남아있다... 책을 다 읽은 지금에서야 냉큼 가서 수정하고 싶지만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라 그저 후회의 글을 또 끄적여 본다.


책의 2/3는 룰루밀러라는 과학전문기자가 존경해 마지않던 미국의 생물학자인 데이비드 스타 조던을 덕질 한 이야기로 가득하다. 데이비스 스타 조던에 대해 전혀 궁금하지도 않은 나는 도대체 저자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지 가늠하기 어려웠고, 책을 끝까지 읽기를 거의 포기할 뻔했다. 그런 나를 붙든 것은 뒤표지의 문구였다.

이 책은 당신의 가슴을 사로잡고, 당신의 상상력을 장악하고, 당신의 예상을 박살 내고, 당신의 세계를 뒤흔들 것이다.

나는 책의 절반을 다 읽도록 가슴이 사로잡히지 않았고, 세계가 전혀 뒤흔들리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내가 무엇을 놓친 것인지 궁금해서 결국 끝까지 읽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야기가 결말에 도달할수록 정말 나의 세계가 뒤흔들리는 느낌을 받았다. 룰루밀러가 서두에 데이비드 스타 조던에 대해 장황하고 상세히 기술한 것은 내가 진실이라고 믿고 있는 신념과 세계관을 충분히 완벽하게 뒤흔들기 위한 밑작업이었던 것이다.


그녀가 신념적으로 의지하고자 했던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숱한 혼돈과 시련에 굴하지 않고 목표를 향해 꾿꾿이 나아가는 사람이었다. 룰루밀러는 그 힘의 근원을 파헤쳐보고자 했지만 다다른 결론은 엉뚱했다. 사실 데이비드는 자신의 목적을 위해 살인을 저지른 열광적인 우생학 학자였다. '부적합'해 보이는 사람들의 생식기를 그냥 잘라내야 한다며, 백치들은 모두 자기 핏줄의 마지막 세대가 되어야 한다고 단언했고, 불임화의 합법화를 앞장서서 주장했던 장본인이다. 덕분에 수많은 미국인들은 강제로 불임수술을 당했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고집스러운 사고방식과 세계관을 유추하기 위해 저자가 제시한 수많은 근거자료와 일화들은 교묘하게 사적인 영역과 정치적 영역을 넘나들며 논리적 치밀성을 띤다.


마지막에 물고기, 즉 어류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학설을 설파하기까지 저자는 설득과 설득을 거듭하며 독자가 알고 있다고 믿는 것들을 하나하나 부순다. 그 과정 속에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직시하고 받아들이며 자신과 화해하는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로 유연하게 넘어간다. '넌 이 세상에서 중요하지 않아!'이 넓은 우주에서 작은 먼지에 불과한 개인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는 가르침을 아버지로 부터 들으며 자라온 룰루밀러는 자신의 혼돈을 정리할 단서를 집요하게 찾아간다. 혼돈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편견과 확신을 경계해야 함을 경고하면서 독자의 사고 전반을 뒤흔들며 끝을 맺는다.


우리는 왜 이런 책을 읽어야 하는 것일까? 자기 확신의 오류가 범할 수 있는 최대치를 간접경험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고정관념이란 것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그것은 더 생각할 필요가 없는 직관적인 것, 편리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있다 보면 그동안 내 안에 자리 잡고 있던 수많은 확신과 구분, 주장과 정의들이 하나하나 의심스러워지기 시작한다. 혹시 자기기만은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유연한 사고를 위한 기름칠이 된다.

30년 넘게 학생들에게 실제 자연 세계가 우리가 설정한 범주대로 분류되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시키려 노력해 왔다. 그리고 그 관념이 학계 밖으로는 도저히 퍼져나가지 않는 것을 보면서 크게 실망했다. 그는 자기가 대적하기에 너무 센 적수를 상대하고 있는 것 같다고 걱정스러워했다. 그 센 적수는 바로 직관이다. 그는 사람들이 결코 편안함을 진실과 맞바꾸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누군가 나의 철학과 신념을 두고 틀릴 수도 있다고 지적한다면 우선 기분이 나쁠 수도 있다. 어쩌면 반박을 위한 반박을 하며 목에 핏대를 세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인지하고 있는 모든 사실은 입장에 따라서, 과학의 발전에 따라서, 시간이 변함에 따라서 바뀔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고 나면 불확실성 가득한 우주만물에 대해 진지하게 다시 고민하게 될 것이다. 이제 함부로 내가 아는 것을 안다고 말하기 어려울 것 같다.


마지막 에필로그에서 룰루밀러는 아래와 같이 다짐한다. 이렇게 긴 글을 쓴 자신조차 자신의 편견 때문에 놓칠지 모르는 어떤 것을 경계하며 호기심과 의심이라는 도구를 손에서 놓지 않겠노라 못 박으며 글을 마친다.

내가 눈을 가늘게 뜨고 황량함을 노려보게 해 주고, 그것을 더 명료히 보게 해 준 요령을 절대 놓치지 않을 가장 좋은 방법은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전혀 모른다는 사실을, 매 순간, 인정하는 것이다. 산사태처럼 닥쳐오는 혼돈 속에서 모든 대상을 호기심과 의심으로 검토하는 것이다.



그리고 처음으로 돌아가서 발견한 이 문구의 의미를 뒤늦게 이해하며 책을 덮었다.

나도 생각나는 사람이 한명 있다!

인간을 비롯해 모든 생명체는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방식으로 이 지구에, 사회에, 서로에게 중요해요. 아버지, 우리는 모두 중요해요!







다음은 책 속에서 인상 깊었던 문구의 기록. 언젠가 만약 장밋빛 자기기만이라는 특징이 나를 휘감는 날이 온다면 이 페이지를 다시 열어보리라




20세기 임상심리학자들은 이상한 일들을 목격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볼 때 더 건강한 환자들, 인생을 더 쉽게 살아가는 사람들, 좌절을 겪은 뒤에도 재빨리 회복하는 사람들, 직업과 친구, 연인을 얻고 인생이라는 회전목마에서 황금기를 달리고 있는 사람들은 장밋빛 자기기만이라는 특징을 지니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하여 1970년대부터 연구자들은 그것이 사실인지 확인해 보기 위해 실험을 시작했다. 실제로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들은 자신을 실제보다 더 매력적이고, 남들을 더 잘 도우며, 더 지적이고, 우연한 사건들을 가능한 정도보다 훨씬 더 잘 통제하는 사람으로 평가한다는 것이 꾸준히 확인됐다. 그 사람들은 과거를 돌아볼 때도 자기가 실패한 것보다 성공한 것들을 훨씬 더 쉽게 기억해 냈다. 미래를 내다볼 때는 친구들이나 급우들보다 자신이 성공할 가능성을 훨씬 더 크게 잡았다. 반면 그토록 칭송받던 정확한 인식이라는 미덕을 지닌 사람들은 어떨까? 짐작했겠지만 그들은 병적인 수준의 우울증에 걸렸다. 그들은 살아가는 일을 힘들어했고, 좌절을 겪은 뒤에는 회복이 더 어려웠으며, 일과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종종 더 많은 문제를 일으켰다.



긍정적 착각지수가 높게 나올 법한 이들 중 많은 수가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특이한 기벽 하나를 공유한다는 점이다. 그것은 바로 자기 손으로 혼돈을 통제할 수 있다는 믿음이다. 피델 카스트로는 언젠가 쿠바를 허리케인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쿠바 주위로 방어벽을 짓자고 제안했다. 유리 루시코프 전 모스크바 시장은 구름 위에 시멘트 가루를 뿌려서 눈이 내리지 못하게 만들고 싶어 했다.


바우마이스터와 부시먼은 이렇게 썼다. "쉽게 말해서 가장위험한 사람은 자신이 우월한 존재라고 보는 사람들이라기보다 자신을 우월한 존재로 보고 싶다는 욕망이 강한 사람들이다. ... 거창한 자기상을 확인받는 일에 집착하는 사람들은 비판당하는 것을 몹시 괴로워하며 자기를 비판한 사람을 사납게 공격하는 것으로 보인다.


조던의 재능 중 특히 양날을 지닌 재능은 자기가 옳은 일을 하고 있다고 자신을 설득하고, 그런 다음 무한해 보이는 에너지로 목표를 추구하는 능력이다. 그는 자신의 관용과 관대함을 자랑스러워했다. 하지만 조던은 파리 한 마리를 잡는 데 대포알을 쓰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죽는 날까지 열광적인 우생학자로 남았다. 마지막 순간의 깨달음이나 회한을 보여주는 증거는 전혀 없었다. 자기 노력의 결과로 칼질을 당하고 흉터와 수치만 남은 수천 명에 대해서도, 자기 권력을 놓지 않으려 투쟁하는 와중에 짓밟힌 사람들 -제인 스탠퍼드, 그에게 명예가 훼손된 의사들, 그가 해고한 스파이, 그에게 성도착자 소리를 들은 사서 -에 대해서도. 오싹했다. 그 잔인성과 무자비함이. 그 추락의 무지막지한 깊이와 그 파괴적 광란의 크기가. 토할 것 같았다. 내가 모델로 삼으려 했던 자는 결국 이런 악당이었던 것이다. 자기 자신과 자신의 생각에 대한 확신이 너무나 강한 나머지, 이성도 무시하고 도덕도 무시하고, 자기 방식이 지닌 오류를 직시하라고 호소하는 수천 명의 아우성 - 나도 당신과 마찬가지로 인간이요- 도 무시해 버린 남자.



그는 분기학자들이 처음 등장했을 때 그들의 말을 믿고 싶지 않았단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자기의 일, 생명의 진정한 상호 연관을 밝혀내는 일을 정말로 할 마음이 있다면, 그들이 하는 말을 부인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류"라는 것은 그것을 제대로 직시한다면 사실 틀린 범주라는 것을 말이다. 명료하지 않고 날림으로 만든 이 범주 -분류학자들의 용어로는 측계통군-에는 그 구성원들의 일부가 빠져 있다.


분기학자들은 사람들이 일단 이 사실 - 물속에서 헤엄치는 물고기처럼 생긴 생물들 중 다수가 자기들끼리 보다는 포유류와 더 가까운 관계라는 사실 - 을 받아들이고 나면 이상한 진실이 눈앞에 펼쳐지는 게 보이기 시작할 거라고 했다. '어류'가 견고한 진화적 범주라는 말은 실제로 완전히 헛고리라는 진실 말이다. 윤의 설명을 빌리면, 그것은 마치 "빨간 점이 있는 모든 동물"이 한 범주에 속한다는 말이거나 "시끄러운 모든 포유동물은 한 범주"라고 말하는 것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 수많은 미묘한 차이들을 "어류"라는 하나의 단어 아래 몰아넣은 것이다. 실상 물속 세상을 들여다보면, 비늘로 된 의상 밑에 산꼭대기산어류들만큼이나 서로 다른 온갖 종류의 생물들이 숨어 있다. .... "어류"라는 범주가 이 모든 차이를 가리고 있다. 많은 미묘한 차이들을 덮어버리고, 지능을 깎아내린다. 그 범주는 가까운 사촌들을 우리에게서 멀리 떼어놓음으로써 잘못된 거리 감각을 만들어 내는데, 이는 상상 속 사다리에서 인간이 차지하는 제일 윗자리를 유지하기 위해서다.


"내겐 그리 충격적이지 않네요." 내가 어류의 범주가 해체된 일에 관해 숨 가쁘게 설명하고 나자 그가 한 말이다. 그것은 정확히 그가 자기 학생들에게 이해시키려고 노력하는 것이기도 했다. 우리는 우리를 둘러싼 세계를, 우리 발밑의 가장 단순한 것들조차 거의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 말이다. 우리는 전에도 틀렸고, 앞으로도 틀리리라는 것. 진보로 나아가는 진정한 길은 확실성이 아니라 회의로, '수정 가능성이 열려 있는 " 회의로 닦인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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