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게 말하기
왜 듣고 말하기는 배우지 않을까?
"어~~ 의자에 사람이 앉아 있는 줄도 몰랐네~?! 큭큭큭..."
도서관에서 커다란 어른용 회전의자에 파묻히듯 앉아있는 키 작은 수영이를 놀리는 성태의 농담이다. 둘은 2년째 같은 반으로 잘 지내는 친구 사이다. 어이없는건 사실 성태도 작년까지 작은 키로 고민이 많았던 친구라는 점이다. 키가 작은 친구에게 어떤 말이 상처가 되는지 누구보다 잘 알만한 사람이 되려 그 말을 농담인 듯 무기인 듯 휘두르는 장면에 놀랐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수영이의 반응도 놀라웠다.
"끄응... 이렇게 세우면 좀 잘 보여... 하하하..."
어정쩡하게 서서 상체를 곧추세우며 키가 커 보이려고 했다. 심지어 머쓱한 표정으로 웃는다. 웃는 얼굴이 씁쓸했지만 성태의 말이 잘못되었다고 반박하지 않는다. 키가 아주 작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작은 키가 놀림을 받아도 된다는 뜻은 아니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는 수영이. 나는 낄낄거리는 성태를 즉시 불러 세웠다.
"성태야 키가 작은 사람에게는 함부로 무례한 말을 해도 되는 거야?"
"아... 아니요... 그냥 장난으로 한 말인데요... 수영이도 웃었어요..."
나는 수영이를 똑바로 쳐다보며 물었다.
"수영아 성태의 말이 장난으로 느껴졌어?"
"아니요... 좀... 기분 나빴어요..."
"그런데 왜 함부로 말하지 말라고, 기분 나쁘다고 말하지 않고 같이 웃었어?"
"그냥... 맨날 그렇게 놀리는 말을 하니까..."
"네가 싫다고 말하지 않으면 성태는 언제까지고 같은 장난을 칠 텐데... 괜찮겠어?"
그제야 수영이는 성태를 곁눈질하며 기분 나쁘니까 키 문제로 놀리지 말라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한다.
"그래 몰랐어... 미안... 이제 그런 장난 안 할게..."
성태도 마지못해 사과의 말을 한다. 매번 사건 현장을 찾아가 대신 지켜줄 수 없기에 수영이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한번 더 다짐을 받았다.
"네가 너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지키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이 너를 함부로 대하는 걸 막을 수 없어. 네 의사를 정확하게 표현해야 해."
아이들은 깊은 고민 없이 머리에 떠오르는 대로 내뱉는다. 어떨 땐 시인의 아름다운 언어가 쏟아져 나와 감탄스럽지만 어떨 땐 더없이 이기적인 말에 화들짝 놀란다. 말하는 법도, 듣는 법도, 무자비한 말 앞에서 자신을 지켜내는 법도 배운 적 없는 아이들.
나쁜 말을 하는 아이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특별히 악의적인 의도를 가지고 계획적으로 하는 경우는 드물다. 상대방의 입장을 미처 생각해 보지 못했거나, 자신의 말이 어떤 칼날이 되어 날아가는지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상처되는 말을 들었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 어물쩡 웃거나, 주먹이 날아가거나, 못 들은 체 하는 등으로 엉뚱하게 대응한다. 안타깝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은 이렇게 마음대로 듣고 말하고 엉뚱하게 반응하다가 어른이 된다.
초등 고학년이나 중학생 수준에서 '말'에 대해 함께 고민해 보기에 적당한 책으로 '취미는 악플, 특기는 막말 / 김이환 외 / 생각학교 / 2020년 출판'을 선정해서 독서동아리 학생들과 읽었다.
함부로 내뱉는 말, 자신의 입장에서만 하는 말, 학교폭력으로 이어지는 말, 말이 불러올 수 있는 오해와 재앙들에 대한 5개의 단편을 모아놓은 책이다. 아이들이 생활 속에서 흔히 겪을 만한 소재들로 구성된 이야기를 통해 다양한 시각에서 자신들의 대화를 관찰하고 스스로 되돌아볼 수 있게 해 준다.
"말을 할 때 중요한 건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듣는 사람의 마음이란다. 아무리 옳은 말이라고 해도 상대방의 마음에 상처를 줄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해."
"그렇다고 틀린 얘기를 할 수는 없잖아요."
"그 기준이 누구에게 있는 거지? 말하는 사람일까, 아니면 듣는 사람일까?"
....
"하지만 저는 틀린 말을 한 건 아니에요."
"세상에 틀린 말은 없단다. 잘못된 말이 있을 뿐이지."
"뭐가 잘못된 말인데요?"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말이 곧 잘못된 말이지. 사실인지 아닌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야."
....
"너한테 놀림을 당한 아이는 죽을 생각을 하고 교실에서 뛰어내렸어. 설사 네가 틀린 말을 한 게 아니라고 해도 그것으로 인해 누군가가 상처를 받았다면 잘못된 말이라고 해야지."
"나쁜 뜻으로 한 건 아니었어요. 그냥 장난이었는데."
'취미는 악플, 특기는 막말 / 김이환 외 / 생각학교'
자신의 놀림 때문에 자살을 시도한 친구를 보고도 끝내 장난이었다며, 틀린 말은 아니었다며 반성하지 않는 주인공을 두고 책토론을 하던 독서동아리 학생들은 분노했다.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자신들은 절대 그런 상처 주는 말을 한 적이 없고 하지 않을 것이라고 호언장담을 한다.
"어? 첫 번째 이야기 속의 여주인공 오희선이 학교폭력을 저지르고 한 말과 지금 너희들 말이 똑같네?? 그런데 남자주인공 해환은 어땠어? 초등학교때 희선이가 준 상처로 중고등학교 시절까지 다 망가졌지? 자. 다시 입장 바꿔서 객관적으로 생각해 보자. 혹시 내가 미처 알지 못한 채로 누군가에게 상처 주는 말을 한 적은 없었는지..."
도서관이 일순간 조용해졌다. 아이들은 머뭇거리며 생각을 더듬었다.
'어쩌면... 그때... 그 친구 입장에서는 기분이 나빴을 수도 있었을 것 같아요... 그런 장면을 자주 목격했었지만 말리지 못했던 것 같아 후회스러워요... '
강원국은 '결국은 말입니다(당신의 말은 안녕하십니까?) / 강원국 / 더클 / 2022년 출판 '에서 세상은 말로 시작되었고 말을 바꾸면 삶이 바뀐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듣는 방법과 말하는 방법에 대해 단계별로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우리는 잘 듣는 방법과 잘 말하는 방법을 한번쯤 배울 필요가 있다. 잘 듣고 잘 말하게 되면 말로 주고받는 상처와 오해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인류는 말을 죄악의 근원이라고 보았다. 내뱉은 말은 주워 담을 수 없고, 칼은 몸을 베지만 말은 마음을 벤다. 호랑이는 가죽 때문에 죽지만 사람은 혀 때문에 죽기도 한다. 말은 오해를 낳고 오해는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아 친구와 동료, 이웃을 위협하고 더 심하면 패를 갈라 싸우다가 급기야 이웃나라까지 침공한다.
... 중략 ...
가이아 여신이 말을 없앤 이유는 그 말이 폭주했기 때문이다. 말이 서로 사랑하는 데 사용되지 않고 서로 미워하는 데 쓰였기 때문이다.
'취미는 악플, 특기는 막말 / 김이환 외 / 생각학교'
책을 읽고 난 후 아이들은 자신의 생각과 말을 다듬는 연습이 평소에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했다. 얼마나 실천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이지만 언어습관을 한 번쯤 되돌아보는 계기가 된 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시간이었으리라 믿는다. 세상 사람들이 '말'을 서로 사랑하고 아끼는 방법으로 사용한다면 세상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문제는 다 해결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