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매기의 꿈

by 느닷

삐죽빼죽 못난 글씨지만 종이게 꼭꼭 눌러가며 글을 쓰는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던 젊은 시절이 있었다. 중년이 다된 이제야 문득 눈에 띈 수많은 일기장과 젊은 날 오고 간 수백 통의 편지. 그곳에 적힌 글은 혈기 가득한 꿈이었다. 그 자체로 반짝였다. 반면에 30대에 쓴 일기장과 다이어리에는 온통 독기 가득한 글이 곰팡내를 풍기며 들어차 있어서 감히 다시 들춰볼 수 없는 지경이다. 옹졸하고 거북스레 살아내야 했던 시간들이 고스란히 담겼있어 다시는 읽고 싶지 않은 글. 나는 그것들을 긴 세월에 깊숙이 묻었다. 그리고 어느 날.


갈매기의 꿈을 읽었다. 가슴이 벅차오르는 듯한 뻐근함을 느꼈지만 실체가 잡힐 듯 말듯한 기분이라 거듭 몇 번을 읽었다. 읽을 때마다 새로운 질문이 떠올랐고 급기야 질문의 대답은 내앞에 '나'를 정면으로 마주세웠다.

나의 한계를 정하는 가장 큰 기준 또는 걸림돌은 무엇일까?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무엇인가?
포기하고 싶거나 나태해지는 순간들을 극복하는 강한 의지는 어디서 오는가?
아무리 훌륭한 삶이라도 '혼자' 사는 것이 과연 좋을까?
나에게 치욕이란? 나에게 명예란 무엇인가?
다른 갈매기들은 어째서 조나단의 새로운 비행기술에 대해 알려하지 않았을까?
내 자녀가 조나단과 같은 고난의 선택한다면?
감내하기 힘든 고통의 시간을 거치면서까지 높은 성취를 이뤄야 하는 것일까?
남들처럼, 평범하게, 보통 수준으로. 사람들은 왜 '중간'을 원하는가?
'본질'을 가리는 형식과 허상을 쫗고 있지는 않나?
나는 어떤 성취를 이뤄 봤는가?
요즘 내가 몰두하고 있는 과업은 무엇인가?
나는 아는 것을 실천하는 삶을 사는가?
내 삶의 소명은 무엇일까?
나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
행복한 삶이란 어떤 것인가?


질문이 꼬리를 물고 더 큰 질문을 데려온다. 아무도 내게 물어봐 주지 않았던 질문들. 답을 하다 보니 그 속에 내가 있다. 다시 글을 쓰고 싶어 하는 나를 발견했다. 대답하고 싶은 말들이 쌓여 응축된 에너지를 느꼈다. 조나단이 파도에 내던져지고 비행을 포기하겠다고 생각하던 순간조차 비행을 생각하다가 새 비행법을 깨닫듯이 글쓰기는 내가 결코 놓을 수 없는 화두임을 알아챘다. 둑이 터지듯 쏟아지는 이야기를 모아 나는 다시 글을 쓴다.


'갈매기의 꿈 / 리처드 바크 / 나무옆의자 / 2018'은 그런 책이다. 갈매기 한 마리의 이야기인데 삶과 죽음. 생의 과정을 고민하게 만드는 그런 책이다. 얼핏 성경의 구성을 패러디 한 종교서적 같은 냄새도 살짝 풍기지만 달리 보면 또 꼭 그렇지만도 않다. 자신의 소명을 치열하게 쫗던 갈매기 조나단리빙스턴의 실패와 좌절, 성공과 나눔에 대한 이야기일 뿐이다. 다만 뼈 때리는 문장에 마음 한켠이 얼얼해질 수는 있다.









기억하고 싶은 문장 수집


.... 부모님은 몹시 낙심했다. 어머니가 물었다.

"왜 그러니, 존? 왜 그래? 여느 새들처럼 사는 게 왜 그리 어려운 게냐. 존?"


한계속도! 갈매기가 시속 344킬로미터로 비행하다니! 이것은 새로운 발전이자, 갈매기 역사상 가장 위대한 순간이었고, 그 순간 갈매기 조나단에게는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


이제 살아갈 이유가 얼마나 더 많은가! 단조롭게 낚싯배를 왔다 갔다 하는 것 이상의 사는 이유가 생겼지! 우린 무지에서 벗어날 수 있어. 우수하고 지적인. 기술이 뛰어난 우리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고. 우린 자유로울 수 있어!


(부족장은 새로운 비행법을 익히는 조나단의 행동을 치욕스럽다고 정의하고 추방을 선언한다)

"삶은 알지 못하며 알 수도 없는 것이지. 다만 우리가 이 세상에 나온 것은 할 수 있는 데 까지 먹고 살아남기 위해서라는 것만 알 수 있을 뿐."

(조나단은 수긍하지 못한다)

“.... 천년 간 우리는 물고기 머리나 쫗아다녔지만, 이제는 살아야 할 이유가 생겼습니다. 배우고, 발견하고, 자유로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제게 한 번만 기회를 주십시오. 제가 알아낸 것을 여러분께 보여드릴... “

갈매기들은 귀를 닫고 조난단에게 등을 돌렸다.


한때 조나단이 갈매기 모두를 위해 바랐던 것들을 이제 그 혼자 얻었다. 하늘을 나는 법을 배웠고, 그 대가로 치른 희생은 아쉽지 않았다. 갈매기들이 그렇게 단명하는 것이 따분함과 두려움과 분노 때문임을 그는 알았다. 머릿속에 그런 것들이 없는 조나단은 훌륭한 삶을 오래 살았다.


"모두 어디 있습니까, 설리번? 왜 여기 갈매기들이 더 없습니까?"

설리번은 고개를 흔들었다.

"내가 알 수 있는 단 한 가지 대답은 네가 백만 중의 하나인 아주 뛰어난 새라는 것이란다. 조나단. 대부분의 새들은 아주 더디게 나아왔지. 대부분 한 세상에서 거의 똑같은 다른 세상으로 오면서 이전 세상은 까맣게 잊었고, 우리가 어디로 향하는지 개의치 않고 순간을 위해 살고 있지. 먹거나 싸우거나 무리 안에서 힘을 발휘하는 것 이상의 무언가가 있다는 생각을 처음 떠올리기까지 몇 생이나 살아야 하는지 알아? 존, 천 번의 생, 만 번의 생이란다! 그런 다음 백 번을 더 살아야 우리는 완벽함이라는 게 있다는 것을 알기 시작하고, 다시 백 번을 더 살아야 사는 목적이 그 완벽함을 찾고 그것을 보이기 위해서임을 터득하기 시작하지. 물론 이제 우리는 똑같은 규칙을 적용받지. 우리는 이번 생에서 배운 것을 통해 다음 생을 선택한단다.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면 다음 생은 이번 생과 똑같아. 한계도 똑같고 감당해야 할 무거운 짐도 똑같지."


이제 조나단은 성스럽게 받들어졌고 그를 만졌던 이를 만져보려는 갈매기들이 플레처에게 몰려들었다. 플레처는 조나단이 어느 갈매기나 배울 수 있는 것을 터득한 똑같은 갈매기였을 뿐이라고 주장했지만 소용없었다. 그들은 계속 플레처를 쫓아다니면서 조나단이 정확히 무슨 말을 하고 어떤 몸짓을 했는지 듣고 조나단에 대해 낮낮이 알아내려 했다.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누구도 비행하지 않았고, 필요한 경우에는 비행하면서 점점 이상한 관습을 행했다. 위상 같은 것의 상징으로, 더 유복한 새들은 부리에 나뭇가지를 물고 다니기 시작했다. 나뭇가지가 크고 묵직할수록 갈매기들이 더 큰 관심을 보였다. 나뭇가지가 클수록 더 앞선 비행가로 여겨졌다.


갈매기 앤서니는 조나단의 이름을 덮은 의례와 의식을 거부한 채 자신의 길을 갔고, 그렇게 행동하는 젊은 새들이 점점 많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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