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런 선택을 하게 되었을까요?

그림책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

by 느닷

도서관에는 책 읽어주는 부모님과, 도서관 도서도우미 부모님 등 40여 명의 봉사자가 드나든다. 매년 바뀌고, 혹은 학기 중에도 바뀌는 통에 봉사자 어머니와 아이의 얼굴이 매칭이 잘 안 되고 성함을 기억하지 못하는 일도 부지기수이다. 그렇다 해도 그들과 매년 돈독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책으로 소통하는 시간들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도서관에서 아이들과 부모님들 사이 어디쯤에 존재하는 사서로서 본의 아니게 양쪽의 날 선 입장차이를 자주 느끼는 편이다. 오늘은 그런 봉사자님들과 한 달에 한 번 함께하는 학부모 독서교육 시간. 속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그림책을 일부러 오늘의 책으로 골라 보았다. 알퐁스 도데의 원작을 에릭바튀의 수려한 그림으로 담아낸 '스갱아저씨의 염소'를 함께 읽었다.


키우던 염소들이 매번 산으로 탈출하는 바람에 벌써 일곱번째로 아기염소 블랑케트를 데려온 스갱아저씨의 마당은 쓸쓸하고 조용해 보인다. 염소를 사랑하는 스갱아저씨는 맛있는 풀을 정성스레 챙겨주고, 목줄을 길게 늘여서 울타리 안에서 염소가 편안하게 지낼 수 있도록 세심하게 배려하는 주인이었다. 하지만 아름다운 블랑케트 역시 조금 자라면서 스갱아저씨의 오두막을 떠나 산으로 가고 싶은 소망이 생긴다. 아무리 아저씨에게 산으로 보내달라고 해도 소용이 없자 블랑케트는 열린 창문을 통해 산으로 도망을 친다. 산속의 자연들은 아름다운 블랑케트를 환영해 준다. 블랑케트는 드넓은 초원을 전속력으로 질주하고, 먹어본 적 없는 맛있는 풀을 먹고, 검은 산양과 사랑을 하며 새로운 행복을 맛본다. 하지만 행복한 낮이 지나고 밤이 되자 늑대의 울음소리가 가까이 다가온다. 스갱아저씨가 언덕너머에서 블랑께트를 찾아다니며 외치는 소리를 뒤로하고 블랑케트는 산에 머무는 것을 선택한다. 어두운 밤. 결국 블랑케트는 날카로운 발톱의 늑대와 마주하게 된다. 블랑케트는 살아남을 수 있을까?


왜 앞선 염소들은 그렇게 주인을 버리고 떠났을까? 감상하던 분들 모두 스갱아저씨가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다고 평가했다. 그렇다면 스갱아저씨의 염소들을 산으로 도망치게 만든것은 무엇이었을까? 무엇이 부족한 것이었을까? 블랑케트가 늑대와 목숨을 건 결투를 할지언정 안락한 집으로 돌아가기를 거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머니들은 한 장 한 장 넘어갈 때마다 한숨이 깊어졌다. 나는 왜 그리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시냐고 물었다. 삶은 그렇게 녹록지 않다는 것을 아는 이 나이에 블랑케트를 보고 있자니, 탈출에 성공하고, 마음껏 뛰놀며 행복에 도취되어 기고만장한 아기염소 블랑케트의 앞날에 곧 고난이 닥칠 것이 뻔해 보이기 때문이라고 대답한다. 늑대 울음소리까지 들어 봤으면 됐으니 블랑케트가 어서 염소 우리로 돌아갔으면 좋겠다고 한다.


내가 경험해 봤으니 다 안다고 예단하는 것은 섣부른 자만일까, 아니면 삶에서 터득한 지혜일까? 왠지 아이와 나의 관계가 생각나기도 하고, 어릴 적 질풍노도의 시기를 건너던 자신의 모습이 떠오르기도 하고, 프랑스혁명이 떠오르기도 한다는 등 생각의 갈래가 멀이 멀리 뻗어나가는 대화가 이어졌다.


물론 지금 블랑케트의 나이라면 나 역시 염소우리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지만, 산전수전공중전을 다 겪고 난 지금은 당연히 돌아갈 것이다. 아니 그렇게 무모하게 뛰쳐나오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부모님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 하지만 죽음을 각오하고 늑대와 처음이자 마지막 결투를 치러내는 블랑케트를 보며 처음엔 무식해서 치기 어린 혈기에 무모한 선택을 한 것이라고 말하던 부모님들이 책의 말미로 갈수록 눈빛이 바뀌었다. 어린 염소의 도전과 용기는 멋있고 그럴만한 값어치가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했다. 어머니들은 '보호'라는 허울아래 답답함을 느끼는 아이들의 마음을 간접경험하면서 각자 자신이 지키고 있는 울타리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그림책이라는 도구를 이용해서 대화를 나누기 시작하면 짧은 이야기 끝에 순식간에 참여자들의 지난 세월을 함께 톺아보게 된다. 어떤 장면에 대한 내 의견을 말하는 데 있어서 그 근거로 대는 에피소드는 보통 자신의 경험이기 때문이다. 경험에서 나오는 내 견해를 말하고 나와 같거나 또는 틀린 타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리는 공감대를 형성한다. 연예인이나 날씨등을 주제로 나누는 일상대화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찐소통이 주는 카타르시스를 경험하고 나면 누구나 그림책수다의 매력에 풍덩 빠지고 만다.


아이들의 입장에서 좀 이해해 주세요. 아이들도 크느라 참 힘들답니다. 어머니들 어렸을 때를 떠올리며 입장 바꿔서 생각해 보세요... 이런 뻔한 말을 구구절절이 할 필요가 없다. 그림책을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자연스럽게 작가의 메시지를 자신의 일상에 끌어와 함께 상상하고 각자 고민하게 해 주는 것이 그림책 함께 읽기의 신기한 맛이다.


최재천 생물학 박사님은 뭐든 잘 알면 사랑하게 된다고 했다. 아이들도, 봉사자어머니들도 나도 서로에게 낯선 것은 서로 잘 모르기 때문이다. 그림책이 던지는 화두 앞에 둘러앉아 자신의 이야기를 주섬주섬 꺼내다 보면 어느새 우리는 서로의 결에 대해 알아차리게 되고, 잘 알게 되고, 이해하게 되고, 이해를 넘어 사랑하게 되곤 한다. 이러니 그림책을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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