ㅣ 오늘의 나를 돌보면 내일의 내가 좋아합니다.
부루퉁한 눈을 찬물세수로 힘겹게 치켜뜨는 날의 아침은 출근하는 것부터가 곤욕이다. 북향 끝쪽에 위치한 어두운 도서관 복도를 걸어가면 문 앞에 벌써 서너명의 학생들이 서성이고 있다. 얼어붙은 아이들 손끝에 쫗기듯 불을 켜고, 히터를 틀고, 대출반납용 컴퓨터의 전원을 켠다. 내가 분주히 움직이는 동안 아이들은 어느새 대출할 책을 골라 줄을 서기 시작한다. 긴 줄을 쳐다보며 나도 모르게 깊은 한숨이 푹 쏟아지는 날이다. 이른 아침부터 책 한 권 빌려 읽겠다고 이 구석진 곳을 찾아온 기특한 학생들에게 반가운 인사를 건네지는 못할망정 옅은 미소도 버거운 그런 날이다. 읽지도 않을 책을 자꾸만 검색해 달라는 꼬맹이들의 재잘거리는 소리에 나도 모르게 짜증스러운 얼굴이 되고마는 그런 날이다. 그런 날은 아이들이 책상 위에 뿌려놓은 지우개 똥조차 나를 화나게 만든다.
오늘 왜 이렇게 힘들까?
왜 이렇게 기분이 가라앉았을까?
사실 가만히 속을 들여다보면 사정이 대충 보인다. 사춘기 아들님과 다투고 난 앙금이 아직 마음을 떠다니고 있거나, 늦은 시간까지 과식한 탓에 속이 부글거리고 있거나, 계획에도 없던 넷플릭스에 빠려 허우적거리느라 루틴이 깨졌거나, 업무가 밀려서 몇일 째 야근중이거나, 기껏 준비한 도서관 이벤트가 폭망했거나... 등등
이런 날은 ‘나’를 빨리 알아차리는 게 상책이다. 이유도 모른 채 계속 기운 없고 짜증스러운 것보다는 알아채는 쪽이 기분이 덜 나쁘기 때문이다. 하지만 도통 이유를 알 수 없어 답답할 때도 있다. 그런날은 그저 진한 커피 한잔에 상념을 꾹 눌러 담고 집중력을 발휘하는 수 밖에없다. 씁쓸한 커피로 오늘 저녁 에너지를 미리 당겨다 써 보고 간혹 신통찮을 땐 한잔 더! 이렇게 이성으로 눌러 두었던 버거움은 퇴근길에 스멀스멀 기지개를 켜다가 현관문을 열고 신발장에 한쪽 발을 들여놓는 순간 봉인해제 되며 나를 덮쳐버린다.
온종일 식구들의 귀가만 기다렸을 반려견 '우주'가 흔들어 대는 사랑스러운 헬리콥터 꼬리마저 귀찮다. 족히 10명은 살고 있는듯 수많은 신발이 엉망으로 뒤엉킨 신발장, 싱크대에 쌓여있는 어제자 설거지, 환기 안된 집안 공기에 섞인 음식물 냄새. 아뿔싸. 세제만 넣고 시작 버튼을 안 누른 세탁기 속 빨래까지. 모든게 다 나를 긁는다.
"엄마 배고파~ 오늘 저녁은 뭐야?"
"니는 엄마가 메뉴판으로 보이나? 어째 된 게 인사보다 저녁메뉴가 먼저 나오노?!"
"엄마 어제 빨래통에 넣은 체육복 내일 입어야 하는데 빨았어요?"
"엄마 아직 잠바도 못 벗었다. 좀 기다리면 안 되겠나?!"
사악한 기운이 혓바닥을 타고 쏟아진다. 만만한 아들들이 커피 두 잔의 채무관계에 얽혀들며 드잡이 당한다. 피로가 뇌를 집어삼키는 순간 앙칼진 짜증이 유치 찬란하게 터져 나온다. 물 한잔 마시고 정신을 차릴 때쯤 밀려드는 후회와 부끄러움에 입술을 깨물어 보지만 깨진 바가지를 다시 붙이기가 쉽지 않다. 오늘의 나를 이렇게 만든 어제의 내가 밉다. 이런 날은 입 꾹 다물고 이불속으로 도망가는 수 밖에 없다. 꿈나라에서 에너지 충만한 내일의 내가 일찍 잠든 어제의 나를 칭찬하는 순간이 오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지난봄에 큰 교통사고가 있었다. 물론 내 의지와 상관없는 사건이었지만, 생사를 오가는 시간을 보내고 와서 정신을 차려보니 정성껏 심고 가꾸던 나팔꽃과 산세베리아가 모두 말라죽어 있었다. '우주'는 설사병에 걸렸고, 작은 아들은 비염이 축농증으로 번져 있었다. 큰아들 교복 바지의 오른쪽 단이 언제 터져서 그렇게 너덜너덜한 것인지 알 길이 없었다. 작년부터 공들여 리모델링을 진행했던 도서관의 멋진 리오픈식은 물 건너 가버렸고, 신학기 이용자 교육은 커녕 여름이 다 오도록 신간도서 주문도 하지 못했다.
내가 ‘나’를 놓치니 나에게 소중한 어떤 것도 지켜낼 수가 없었다. 그러니 무력한 나와 마주치지 않으려면 수시로 나를 보살피고, 사랑해야 한다. '나'에게 신선한 물을 제때 주고, 정성과 관심을 주어야 한다. 내 마음이 마르고 있는것은 아닌지, 내 에너지 잔고는 충분한지, 욕심에 눈이 멀어 나를 너무 쥐어짜고 있는것은 아닌지 돌봐주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