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에 다 쓰여 있어
| 불혹에 드러나는 정체성
"어? 저기... 논술쌤 아닌가?"
학교 앞 사거리 건널목에서 신호를 기다리는데 자전거에 비스듬히 한 다리씩 걸친 남학생 둘이 나를 보며 수군거렸다. 신호가 유난히 긴 그 건널목 앞에서 나는 괜히 장난기가 발동했다. 굳이 검지손가락 두 개로 엑스를 만들며 "땡!" 오답을 알렸다.
"어? 논술쌤 아니세요? 그럼 누구세요? 어디서 많이 봤는데~ 아..."
슬슬 재미가 오른 나는 한쪽 눈썹을 슬쩍 올리며 빙긋이 웃었고, 궁금증으로 뇌를 헤집는 오른쪽 남학생은 표정이 찌그러졌다.
언젠가부터 학교 밖에서도 모르는 학생들이 나와 눈이 마주치면 꾸벅 인사를 하고 지나갔다. 낯선 동네에 가서도 엘리베이터나 가게 앞에서 마주친 학생들이 내게 굳이 '안녕하세요~' 인사를 하고 지나가는 일이 한 번씩 있었다. 40대가 시작된 즈음부터 그랬던 것 같다. 처음 보는 사람도 나를 쓰윽 보며 혹시 선생님이세요? 하며 넘겨짚는 통에 왠지 나만 먼저 정체가 탄로 난 것 같은 억울함을 경험했던 게.
아니 내가 선생님인 줄 어떻게 아셨어요? 놀라 반문하면 다들 내가 그냥 딱 선생님처럼 생겼다고 한다. 햐... '선생님처럼'은 대체 어떤 얼굴이란 말인가? 국어선생님, 그냥 선생님, 사서 선생님 이시죠? 소리는 많이 들어봤어도 오늘 '논술쌤'은 살짝 신선했다. 여하튼 누가 봐도 '책이나 글'과 관련된 쪽으로 가르치는 일을 하는 사람이라는 느낌이 내 얼굴에서 풍기는 모양이다.
불혹의 나이를 지나면서 늘어나는 주름과 함께 노년의 나를 상상하곤 한다. 도서관에서 그림책을 읽어주는 재미있는 할머니이고 싶다는 꿈을 꾼 지는 오래되었다. 50대를 향해 가고 있는 내 얼굴에 사서인 듯, 국어인 듯, 논술인 듯한 선생님이 떡하니 쓰여있다 하니 아마도 나는 꿈을 향해 잘 늙어가고 있는 모양이다. 고되고, 험악하고, 부끄러운 순간들도 많았건만, 얼굴에는 내가 간절히 바라던 것들만 차곡차곡 흔적으로 남았나 보다. 이런 생각으로 거울을 들여다볼 때면 푸근한 마음에 안도감이 들면서 노년의 '나'가 벌써 사랑스럽고 기대된다.
자전거 탄 남학생이 드디어 기억 저편의 나를 소환해 내는 데 성공했다.
"아~!!! 도서관에 사서쌤이죠? 맞죠!"
나는 큰 웃음과 함께 손가락으로 OK 사인을 날려주었다.
"그래 요 녀석아~ 도서관에 자주 안 오니 기억도 그렇게 가물가물 하지~"
"어? 그런데 저 어떻게 아세요?'
이 시간에 학교 앞 사거리에서 자전거를 타고 학원에 가는 너는 누가 봐도 딱. 이 동네 중1인 것을~ 지난달에 우리 초등학교를 졸업했을 그 녀석에게 나는 시치미를 뚝 뗀다.
"다 알지~"
너희들이 날 보고 선생님인 줄 딱 알듯이 나도 너희들 보면 중학생인 줄 딱 알지~
이야기가 이쯤~되면 나의 생김새가 무척 궁금할 테니 조심스레 공개해 보도록 하겠다. 학생들의 그림 제보에 따르면 나는 이렇게 생겼다고 한다.
아이들이 그려주는 나의 얼굴은 제법 디테일이 닮았다!
특히 작년의 '사서샘 그림'보다 올해의 '사서샘 그림'은 눈이 훨씬 예뻐졌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매년 조금씩 업그레이드되고 있는 듯도 하다.
작년의 '사서 그림'
나의 미모를 이런 식으로 자랑하게 돼서 머쓱하지만, 솔직히 이 그림들은 정말 나를 아주 사실적으로 잘 표현한 그림들이다~! 내 옆에 연필을 들고 앉아 얼마나 진진하게 나를 뚫어져라 보면서 그린 그림들인지 모른다. 나는 오늘도 아이들의 그림으로 내 정체성을 확인하며 잘 늙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