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는 사투리 안쓰제?

맞제? 맞다!

by 느닷

여러 관공서의 이전으로 조성된 경남의 혁신도시에 위치한 초등학교에서 근무하다 보니 다른 지역에서 전학 오는 학생이 정말 많다. 서울이 제일 많고 가끔 전라도나 충청도, 외국에서 전학 오는 학생도 종종 있다. 학생들은 서울말과 경상도 말을 적절히 섞어 쓰며 지역 대통합을 일궈낸다. 얼마 전 강원도 사투리를 쓰는 학생이 전학을 왔다. 별말 안 해도 그 말투가 어찌나 신기하고 귀엽던지 자꾸만 말을 걸곤 했다.

"그 뭐나~ 마카 다 가져가나?"

북한말 같은 녀석의 억양을 가만 듣고 있던 경상도 여학생들이 지들끼리 조용히 쑥덕거린다.

"그래도 우리는 사투리 하나도 안쓰제? 맞제?"

ㅋㅋㅋ 진지한 녀석들을 훔쳐보며 몰래 배꼽을 잡았다.





나는 경상남도에서 나고 자랐지만 어쩌다 보니 대전, 부산, 서울, 울산, 진주를 돌아다니며 조금씩 살았다. 덕분에 사투리와 억양이 마구 뒤섞였다. 대전 친구를 만나면 대전억양으로 말하고, 부산 친구를 만나면 부산억양으로 말하고, 많은 사람 앞에서는 표준어 비스므리한 말을 구사한다. 울산에서 동화구연을 하던 때였다. 그해 울산 북구 보건소 구강건강 동화구연 프로그램을 기획해서 관계자들과 동료 등 수십 명을 모아놓은 자리에서 대표로 시연을 하게 되었다.


팀원들과 함께 동화를 창작, 각색하고, 교구를 제작하는 등 한 달이 넘게 준비한 프로젝트를 보여주고 보건소 관계자들의 평가를 받는 중요한 자리였다. 나는 연습장면을 녹화해서 모니터링했다. 목소리의 톤과, 속도, 교구와 손의 위치까지 수정해 가며 연습하고 또 연습했다. 당일에는 새벽같이 일어나 외모를 깔끔하게 치장하고 일찌감치 집을 나섰다. 군더더기 없는 시연을 위해 미리 현장을 살피며 동선과 시선처리를 체크했다. 모두들 상대팀 눈치 보랴, 보건소 관계자 분위기 살피랴, 날 선 눈으로 마른 손을 비비며 의자 끝에 앉아있었다.


우리 팀 차례는 두 번째. 동화구연 시연은 준비한 대로 매끄럽게 잘 진행되었다. 표준말과 울산억양의 어디쯤 되는 말투로 줄타기하는 내 동화를 들으며 청중은 이야기 속으로 빨려 들었고 준비한 동화를 거의 마무리해 갈 때 즈음...


"어린이 여러분~ 그래서 이를 깨끗이 닦지 않으면 이빨 사이사이에 이렇게 찌끄래기가 끼이는 거예요~"


순간 사방에서 키득키득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긴장했던 나는 관객들이 왜 술렁이는지 몰랐다.


"푸하하하 아 찌끄래기래 찌끄래기~ㅋㅋㅋㅋ"


뭐라고? 방금 내가 찌.끄.래.기. 라고 말했던가? 그럴 리가 없다! 그런데 사실이었다!! 아... 정말 완벽하게 해내고 싶었는데... 나는 당황한 나머지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찌꺼기' 부분부터 동화를 다시 이어갔다. 연습한 대로 마무리는 했지만 다들 심각한 충치벌레 그림 앞에서 키득키득 웃고 있었다.


내 실수로 집중이 흩어졌었는지, 분위기가 부드러워졌었는지 모르겠지만 다행히 프로젝트는 좋은 평가를 받아 승인이 떨어졌고 울산 북구 전 지역의 어린이집을 돌아다니며 구강교육을 잘 마무리했다. 그 해 동화 내용이 정말 좋았었는데 모두의 기억 속에는 '찌끄래기' 사건만이 오래도록 남았다. 덕분에 구강동화계의 찌끄래기 강사로 명성을 남길 수 있었던 자랑(?)스러운 추억이 되었다.


아! 진지하게 말하는데 나는 사투리를 밸로 안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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