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의 노동은 B급일까?

ㅣ 취업시장의 흙수저

by 느닷

27세에 최연소 하버드대 교수가 되었고 현재까지 하버드 학생들 사이에서 최고의 정치철학 명강의로 손꼽히는 마이클 샌델교수는 그의 저서 '공정하다는 착각'에서 '능력주의는 모두에게 같은 기회를 제공하는가'질문하고 있다. 샌델이 말하는 능력주의의 결점과 오류를 바라보면서 내가 겪은 세상의 잣대들을 조금씩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지금에서야 내 직업은 ‘사서’라고 힘주어 말하며 살고 있지만 사실은 19살 수능을 끝낸 직후부터 지금까지 정말 수많은 조직을 전전하며 경제활동을 해 왔다. 예식장 뷔페, 국숫집, 분식집, 교내 매점, PC방, 노래방, 엑스포 행사장 도우미... 등등. 그곳에서 내 직급은 아르바이트생이었다. 나는 아르바이트를 오래 이어가고 싶었고, 시급도 더 많이 받고 싶었기에 사업장의 매출향상을 위해 열일을 했었다. 열심히 일을 하면 인정을 받고 인정을 받으면 경제적 보상도 따라온다는 것이 학교에서 배운 나의 상식이었다. 그것은 인정받지 못한다는 것은 보상받을 자격도 없다는 말과 같았다.


문헌정보학과를 졸업하고 사회인이 되어서는 컴퓨터 자격증 취득을 돕는 중학교 방과 후 강사, 한국전력 웹디자이너, 문화센터와 관공서를 드나들며 동화구연을 가르치는 강사, 아동극 배우, 시청에 소비자 식품위생 감시원, 고용노동부 직업상담사... 등등의 도통 접점 없는 직종을 넘나들며 비정규직, 또는 계약직이라는 직급의 삶을 살았다. 그곳에서도 계약기간을 더 늘리고, 좋은 근무평가로 더 나은 급여를 받기 위해 열일을 했었다. 일은 고단했고, 근무조건은 열악했지만 그런 만큼 꾸준한 자기 계발과 성실은 늘 기본값이었다.


정보처리기사, 각종 워드, 컴퓨터 활용능력 자격증, 동화구연지도자 자격증, 어린이독서심리 상담사, 독서지도사, 사회복지사... 등등 수많은 교육과정을 이수하며 자격증을 취득하고, 관련도서를 읽으며 지금하고 있는 일의 능률을 높일 방법을 강구하곤 했다. 그럼에도 일관된 직종에 종사하지 못했다. 독박육아를 하느라 꾸준히 일할 수 없었지만 경제활동을 안 할 수는 없었기에 그저 기회가 주어지는 대로 일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일 중요한 이직의 요인은 급여가 늘 터무니없었다는 점이다. 시간제니까, 임시직이니까, 계약직이니까 당연한 처사라고 생각했다.




사실 제일 하고 싶었던 일은 사서였지만 하루하루 살아내기 급급했던 내게 일 년에 1, 2명 뽑을까 말까 하는 정규직 사서채용의 좁아터진 문턱(심지어 ‘0명’ 채용인 해도 왕왕 있었다!)은 너무 높았다. 게다가 나는 자주 병마와 싸워야 했고 운도 없었다. 덕분에 2,30대의 나는 소박한 월급으로 연명하며 맥락 없는 경제활동의 역사를 이어나갔다. 왜 그런지 손에 잡히는 모든 기회는 계약직이었다. 그래서인지 정규직과의 차별이 뼛속깊이 익숙했다. 아르바이트를 할 때는 어려서 잘 몰랐는데 비정규직으로 일을 해 보니 정규직과의 처우에 차이가 있는 것은 차치하고도 급여의 사이즈가 'S'와 'XXL'정도로 벌어져 있었다. 잠을 줄여가며 공부하고 같은 근무시간만큼 혹은 더 오래 일해도 급여는 늘 최저임금에서 턱걸이를 했다. 내 노동의 값어치는 늘 하찮았다.


맡은 일이 잘 되도록 최선을 다 했지만 그런다고 경제적 보상이 따라오는 건 아니라는 세상의 상식을 온몸으로 배웠다. 그렇다고 돈 받는 만큼만 일하겠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나는 업무 몰입도가 높은 편이다. 컴퓨터 자격증을 가르칠 때는 수강생의 95% 합격률을 자랑했고, 동화구연을 가르칠 때는 나름 인기강사 타이틀을 달았다. 내가 연기했던 아동극은 늘 호응이 좋았고, 직업상담을 할 땐 퇴근해서도 민원인의 일자리를 검색했었다.

평생 한 직장을 다니다 명예로운 퇴직을 하며 정규직의 삶을 산 아버지는 이런 나의 경제활동을 이해하지 못하셨다. 남들 못지않게 가르쳐서 4년제 대학까지 뒷바라지 한 장녀의 취업 성적표는 아버지 앞에서 매번 초라했다.


왜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내 급여는 스몰사이즈일까? 나의 노동은 왜 항상 당연히 B급인 것일까? 2022년 8월 기준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비정규직 비율이 전체 37.5%로 남성은 30.6%, 여성은 46%에 육박한다. ‘국민 삶의 질 2022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기준으로 정규직 근로자의 월평균 임금은 379만 원, 비정규직 근로자의 월평균 임금은 168만 원, 복지와 상여금은 2배 이상의 차이가 난다. 월평균 211만원에 달하는 임금격차가 존재하며, 남성은 3명 중에 한 명, 여성은 2명 중에 한 명꼴로 비정규직인 상황이다.


남성에 비해 여성은 상대적으로 정규직 자리를 구하는 게 더 어려우며, 대강 여성 두 명 중에 한 명은 비정규직이라는 사실이 내 초라한 취업 성적표에 작은 변명이 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어쩌면 이 사회는 내 노동이 제대로 평가받을 기회를 구조적으로 박탈한 채 내 열정과 노력을 B급으로 후려쳐 써먹고 있는 것은 아닐까?


‘능력주의적 경쟁에서 비롯된 불평등은 정당화될 수 있는가?’ 능력주의옹호론자들은 그렇다고 말한다. 모두가 공평한 조건에서 경쟁한다면 그 결과는 정당하다는 것이다.
공정한 경쟁에서도 승자와 패자는 나온다. 문제는 모두가 같은 지점에서 경주를 시작하느냐 그리고 훈련, 교육, 영양 등등에 똑같이 접할 수 있느냐다. 그렇다면 경쟁의 승자는 보상받을 만하다.

- 공정하다는 착각 / 마이클 샌덜 지음 / 함규진 옮김 / 와이즈베리 / 2020년 출판 -






감사하게도 나는 41살에 오랜 세월 갈망하던 ‘사서’가 되었다. 누구는 그 나이에 기적이라 했고, 누구는 필시 비리 가득한 낙하산일 거라고 수군거렸다. 여하튼 나는 직업상담사의 경험을 백분 활용해서 정사서 2급 자격증과 기타 관련 자격을 기술한 이력서로 교육청 면접에 당당히 합격했다. 그런데 사서가 되고 보니 교육부도 인건비 절감을 위해 비정규직을 살뜰히 활용하고 있었다! 하긴 노동법을 감시하고 규정하는 고용노동부에서 조차 비정규직 기간제로 근무하지 않았던가~. 다만 교사도 정교사와 기간제 교사가 있고, 사서도 사서교사(정규직)와 전담사서(무기계약직)로 나뉘며, 스포츠강사, 영어전담강사, 돌봄 교실 선생님, 상담사 등등 수많은 직군이 ‘공무직’이라는 이름의 비정규직으로 세분화되어 있으며 그중 일부는 무기계약이고 일부는 기간제 계약등으로 다양하게 나뉘어 있다는 사실에는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지금까지 경험한 그 어떤 조직보다 독보적으로 많은 비정규직 직군에 놀랐고, 모든 직군의 처우가 모두 다르다는 세심한 차별에 두 번 놀랐다.


무엇보다 안타까웠던 건 같은 사서 직군에도 사서교사와 전담사서를 구분해서 채용해 놓고 근무조건과 자격을 다르게 주어서 편을 갈라놓았다는 것이다. 학교도서관진흥법에서 말하는 사서는 도서관 및 문헌정보에 관한 학력 및 경력을 갖추고 사서의 자격증을 취득한 사람을 일컫는다. 사서교사는 임용시험을 통해 사서교사 자격증을 지닌 사람을 말한다.


만약 학교도서관에는 반드시 사서교사가 필요한 것이라고 판단한다면 교육청은 임용을 통해 사서교사만을 채용해야 한다. 그런데 교육청은 공무직이라는 이름으로, 기간제라는 이름으로, 봉사자라는 이름으로 저임금 사서 직군을 채용해서 유용하게 활용하고 있다. 공무직사서의 숫자는 전국 4,658명으로 사서교사 2,924명보다 월등히 많다.


사서교사와 전담사서의 노동은 ‘수업권’이 있고, 없고의 차이 외에 모두 동일하다. 당연한 일이다. 사서업무의 본질은 도서관을 관리하는 것이니까. 그런데 도서관이 학교에 있으니 자연스레 아이들의 독서교육업무를 피할 수 없다. 그러니 사실상 전담사서도 수업권 없는 수업을 하고 있는 셈이다. 덕분에 사서교사와 전담사서는 업무와 관련해서 함께 연구도, 협의도 나누기 어려운 서로 견제하는 사이로 공존하고 있다. 자 그럼 학교도서관에 필요한 전문가는 사서교사일까? 전담사서일까?

학교도서관에 필요한 전문인력은 ‘사서’이다.


공부를 열심히 해야 성공한다고, 책을 많이 읽어야 훌륭한 사람이 된다고 하니 아이들은 학원을 뺑뺑이 돌고, 독서에도 정성이다. 끝없는 경쟁 속에서 패자는 패자라서 아프고, 승자는 다음 경쟁의 패자가 될지도 모르는 두려움에 끝없는 레이스 위에서 챗바퀴를 돈다. 한명 한명이 다 안쓰럽고 기특하고 소중하다. 이중에 성인이 되면 노동자가 되지 않을 아이가 몇 명이나 있겠는가? 이중 절반의 여학생이 정규직 취업에 어려움을 더 많이 겪을 것이다. 이 중에 극히 일부 몇 명만이 전문직이나 정규직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숨 쉴 수 있을 것이다. 어떻게든 내 아이만은 잘 키워서 그 테두리 안에 집어넣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가? 그럼 내 아이의 친구는? 아니 내 아이가 사소한 실수로 그 안에 들지 못하면 어쩔 텐가? 내 아이의 노력이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성과로만 발현된다면?


꾹꾹 참고 노력하면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보상이 따를 것이라는 가르침을 믿고 있는 천진한 이 아이들이 마주할 고용시장의 뻔뻔한 민낯을 생각하면 마음이 불편하다. 젊은 날 비정규직을 전전하며 내 노력의 부족함을 자책했던 시간이 학교 도서관에서 아이들 얼굴 위에 오버랩될 때마다 교육자로서 미안하다. 자기도 커서 꼭 선생님 같은 사서가 되겠다고 말한다. 사서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질문하는 아이들. 아이들이 다 보고 있다. 그러니 나는 굳이 목소리를 내야 한다. 하지만 우리 사서들이 어설프게 교육청 앞 길바닥에 서서 처우개선을 위한 투쟁을 하노라면 뉴스기사 댓글에 악플이 수두룩히 달린다. 그들은 공평과 공정을 혼동하는 나와 같은 노동자들이다.


오랜 경제활동의 시간들 속에서 매번 마주했던 이런 구조적 불평등을 생계를 이유로 침묵했고, 혹은 그냥 관뒀고, 그렇게 B급 노동력을 채용시장에 꾸준히 제공해왔다. 그덕에 지금 내가 처한 노동시장의 모습은 이렇게 기울어져있다.


만약 내가 악플러들의 요청대로 군말 없이 계속 B급 노동력을 사회에 제공한다면... 과연 당신의 딸과 조카를 기다리고 있을 채용시장은 지금과 다를 것이라 생각하는가? 제법 겪은 사람으로서 나는 도서관의 저 예쁜 쪼무래기들을 위해 노동이 존중받으며 더불어 사는 사회를 꿈꾸는 쪽을 선택하겠다. 혹시 모른다... 우리 모두가 같은 꿈으로 연대할 수만 있다면!


능력주의 인재 선별은 우리 성공은 오로지 우리가 이룬 것이라고 가르쳤고, 그만큼 우리는 서로에게 빚지고 있다는 느낌을 잃게 되었다.
이제 우리는 그런 유대관계의 상실로 빚어진 분노의 회오리 속에 있다. 일의 존엄성을 회복함으로써 우리는 능력의 시대가 풀어버린 사회적 연대의 끈을 다시 매도록 해야 한다.

...

겸손함은 우리를 갈라놓고 있는 가혹한 성공 윤리에서 돌아설 수 있게 해 준다. 그것은 능력주의의 폭정을 넘어, 보다 덜 악의적이고 보다 더 관대한 공적 삶으로 우리를 이끌어 간다.

- 공정하다는 착각 / 마이클 샌덜 지음 / 함규진 옮김 / 와이즈베리 / 2020년 출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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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기준’ 노동자 月 평균임금 319만 원

출처 : 세계일보 | 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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