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는 늘 호황과 불황을 오가며 뉴스를 만든다. 불경기인 요즘은 고금리로 가계경기가 위축되고 기업들은 투자를 망설인다. 정부는 예산삭감의 칼을 빼들었다. 하지만 불경기라고 모두 같은 선택을 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 대표 기업 삼성의 성공 공식은 유명하다. 업황이 좋지 않을 때 더 과감하게 연구비를 늘리고 설비투자를 확대하기. 그렇게 준비해서 경기가 살아나는 시점에 치킨게임으로 경쟁자들을 몰아내고 폭풍성장을 이뤄내며 타 기업과 큰 격차를 벌리고 성장해 왔다. 김범수 대표가 카카오톡을 본격적으로 개발하기 시작한 시점도 금융위기의 여파가 채 가시지 않았던 2009년이었다. 내비게이션 앱 ’ 김기사(현 카카오 내비)‘를 만든 박종환 대표 역시 2008년 금융위기 당시에 창업을 준비했다. 불경기 다음에는 필연적으로 호경기가 온다. 모두가 알다시피 이후 삼성과 카카오와 카카오맵은 불경기를 잘 견딘 만큼 호황을 맞이했다. 불경기를 현명하게 보낸 이가 호경기의 열매를 먹을 수 있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
그럼 도서관계는 어떨까? 2023년 현재 거꾸로 가고 있는 도서관 정책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데 서두가 길었다. 우선 독서교육이란 것이 경기에 따라 정책을 갈아 끼워 가며 유동성 있게 운영하는 게 맞는가 하는 근본적인 의문을 품은 지는 오래되었다. 2022년 12월 서울시가 관내 공립, 사립, 작은 도서관 예산을 전액 삭감하며 작은 도서관 지원사업을 전면 폐기함을 발표했다. 사실 경기가 어려울 때마다 도서관 예산이나 인건비가 제일 먼저 삭감되는 일이야 어제오늘의 일이 아닌지라 크게 놀랍지도 않았다. 하지만 K컬처니 뭐니 떠들썩한 이 시점에 한국의 문화 수준은 독서문화를 향유할 정도는 된다고 자부했었는데 이런 정책에 도통 무감각한 대중의 반응은 실망스러웠다. 정책은 정부가 만들지만 정부를 만드는 것은 국민이다. 그러니 국민의 정서와 수준에 반하는 정책은 반발을 사기 마련이다. 초등학교 무상급식을 반대했던 오세훈 서울시장은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잘려나갔다. 그런데 뿌리문화의 거점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작은 도서관을 없앤다는 소식은 소문도 없이 다음날 뉴스에 묻혔다.
출판계는 독서인구가 줄어들고 있다며 곡소리를 한다. 교육계는 아이들의 문해력이 떨어지고 있다며 해법을 찾고 있다. 창의적 사고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미래사회를 대비해 독서/토론이 날로 강조되고 있다. 그러면서 시대에 역행하는 도서관정책에는 다들 무관심하다. 정책은 돈의 움직임을 결정하면서 시대의 흐름을 주도하고, 시대의 흐름은 현상을 낳는다. 지금의 현상은 지난 정책의 결과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지금은 정확히 독서교육의 불경기이다. 과연 독서교육의 베이스캠프라 할 수 있는 도서관의 예산을 삭감하고 인력을 감축하면서 불경기를 보내도 괜찮을지 모두에게 묻고 싶다. 불황을 견뎌낸 다음의 호황을 함께해야 할 우리 아이들이 가장 가까이에서 매일 만나는 학교도서관의 상황은 더 참혹하다.
2022년 KESS 교육통계서비스 자료에 따르면 전국 학교도서관 전담인력 배치 현황은 48%(자격 미보유자 배치 17%포함)에 불과하다. 대한민국 52%의 아이들이 사서가 없는 학교도서관을 이용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의 자녀나 조카가 다니고 있는 학교가 이에 해당될 확률이 52%이다. 심각한 독서교육 불평등의 현주소이다. 2018년에 개정된 학교도서관진흥법에서는 1 학교 1 사서 배치 의무를 명시하고 있지만 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교육청은 예산상의 문제로 사서교사 채용에 소극적이다.
그나마 2019년 제3차 학교도서관진흥계획이 발표되며 2030년까지 50% 충원계획에 따라 시나브로 충원이 이뤄져 왔지만, 2023년 불경기를 틈타 사서교사 정원이 동결되어 버렸다. 매년 부지런히 채용을 해도 2030년까지 50%를 채울까 말까 한데 올해 사서교사 채용인원이 ‘0’ 명이라는 뜻이다! 보건교사나 영양교사는 규모가 작든 예산이 적든 1 학교 1 교원 배치가 상식인데 사서교사는 예산이 없으면 채용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현재 통용되는 상식이다!
사서가 없으면 뭐 어떠냐 할 수 있겠지만 도서관이라는 공간의 담당자가 일을 잘하고 말고의 역량 문제를 떠나 예산만 놓고 봐도 문제는 심각하다. 매년 모든 학교도서관에 책정되는 예산은 학교기본 운영비의 3%에 해당하는 도서구입비와 1%에 해당하는 운영비로 일괄 배정되는데 이는 적지 않은 돈이다. 우리 학교도 매년 3천만 원 안팎의 예산이 배정되고 있다. 그런데 담당자가 없는 도서관에 배정되는 예산은 과연 누가 집행하겠는가? 국어선생님이나 파워게임에서 밀린 선생님 중 누군가가 겸임을 하게 된다. 사서도 알차게 쓰기 벅찬 큰 예산을 겸임한 누군가가 제대로 집행할 수 있겠는가? 전집을 들이거나, 복권을 학생 수만큼 사다 쟁여놓거나 문화상품권 따위로 소진하기 일쑤다. 아니 그렇게라도 예산을 집행하며 도서관 문이 열려 있으면 다행이다. 뽀얀 먼지와 함께 굳게 닫힌 수많은 학교도서관에도 모두 동일하게 3% 도서비와 1% 운영비가 눈먼 돈의 꼴을 하고 집행되고 있다!
경남교육청은 한술 더해서 학교기본운영비의 4%라는 엄청난 도서구입비와 1.5%의 도서관 운영비를 책정하면서 교육의 중심에 도서관과 독서교육이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그 예산을 집행하고 공간을 관리할 사서의 배치는 전국평균에도 훨씬 못 미치는 31%(자격미보유자 배치 22% 포함)에 머물고 있다. 무려 69%의 학교도서관에 전문가가 없거나 다른 선생님들이 겸임하고 있다는 뜻이다. 결국 과중한 업무를 견디다 못한 교사들이 1인시위를 하기에 이르렀다. 학교도서관에 인력을 배치해 달라고. 사실 전담사서들은 오랜 기간 이 문제를 두고 교육청과 투쟁을 이어왔었다.
사서를 충원해야 한다. 법정 기준 1학교 1사서를 지켜달라. 그래야 학교도서관이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다.
하지만 늘 예산을 이유로 거부되었다. 책을 살 돈은 많지만 책을 관리할 사람에게 투자할 여력은 없다는 지금의 정책이 이상하지 않은가? 사람을 가르치는 곳에서 사람에게 투자하는 것을 주저하고 있다.
학교도서관은 보통 교실 한두 칸으로 만들어진 한정된 공간으로 이뤄져 있다. 매년 엄청난 예산으로 구입을 이어온 책은 더 이상 쌓아둘 곳이 없어 폐기와 구입을 동시에 하지 않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런데 학교도서관에는 소중한 자산을 공들여 폐기할 전문가가 거의 없다. 도서관 구성의 기본은 인력, 시설, 자료이다. 요란스레 공간혁신을 하며 카페형 도서관으로 리모델링을 하고 책을 가득 채워놓고 있지만 정작 이 시설과 자료가 제대로 활용되도록 할 ‘전문가’는 없는 불균형 속에서 학교도서관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교사들의 1인시위에 교육청이 움직였다. 이상한 쪽으로... 경남도교육청 창의인재과에서는 2023년에 4억 원의 예산을 확보하여 학교도서관 자원봉사자 지원사업을 하기로 결정했다. 사서가 없는 100개 학교를 지정하여 각 400만원의 예산을 봉사자 인건비로 제공하는 사업이다. 인천 중구 역시 28개교를 대상으로 학교도서관 자원봉사자 활동비를 지원하는 사업을 실시한다고 발표했다. 사서가 아니라 봉사자!
학교도서관에 사서가 본격적으로 배치되기 전에 학부모 봉사자가 적극적으로 활용되던 때가 있었다. 상시개방이 어렵고, 봉사자만으로 운영하는데 한계가 명확했기에 시나브로 사서가 배치되어 온 것이다. 그런데 이제 와서 예산을 문제 삼으며 시대를 역행하는 발상이 뻔뻔하게 대안이랍시고 나타났다. 언발에 오줌누기식의 어처구니없는 정책으로 권력이 학부모와 교사들의 눈을 가리려 하고 있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아이들의 몫이다. 불평등한 독서교육 혜택. 우리는 이번에도 외면하고 넘어갈 것인가? 지금의 정책이 낳을 뻔히 보이는 결과에 나는 동의할 수 없다. 부디 더 많은 학부모와 교사, 사서들이 우리 아이들을 위해 옳은 도서관 정책을 향해 함께 목소리 높이는 대한민국이 되기를 염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