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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훅! 이거... 정말 비밀인데요...

by 느닷

비밀이란 무엇일까? 내가 알고 있는 것은 그냥 내가 아는 사실이지 비밀은 아니다. 비밀이란 것은 나만 알고 있어야 할 것 같은 무언가를 누군가가 알게 될까 봐 두렵지만 반대로 누군가와 공유하고 싶은 간절함이 내포되어 있는 은밀한 사실이 비밀이다. 진정한 비밀의 묘미는 특정한 누군가와 함께 알고 있을 때 발휘된다고 볼 수 있다. 불특정 다수와 공유하는 사실이 아니라 우리끼리만 아는 사실. 그 전제를 지켜내야 비밀은 비밀스럽다.




"사서쌤~ 저 Y랑 K 중에 한 명이랑 연애하게 될 것 같아요...."

도서관에서 온종일 수다만 떨다가던 까불이 수연이가 갑자기 궁서체 같은 얼굴로 내 귀에 대고 비밀을 속삭였다.

"사실 K는 학원에서도 자주 만나니까 제가 고백 안 해도 늘 곁에 있을 수 있거든요. 그래서 일단 Y에게 마음을 먼저 물어볼까 어쩔까... 너무 고민돼요... Y는 내년에 졸업하면 못 만날 수도 있으니까요. Y의 친구에게 Y가 날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보려고요... 괜찮을까요??"

수연이의 내적 갈등이 찰랑찰랑 넘쳐서 제일 입 무거울 것 같은 사람 앞에서 졸졸졸 새어 나오고 있는 참이다. 그 얼굴이 얼마나 진지한지 나는 웃음을 참느라 아주 혼쭐이 났다.

"어허~ 사랑에 대한 고민! 훌륭하다! 그럼 일단 연애 시작하기 전에 이 책 한번 읽고 마음에 준비를 좀 한 다음에 등판하면 어떨까? 지지난번, 지난번 연애는 잘 안 됐었잖아.... 5학년의 연애는 좀 달라야 안되긋나~! 사랑에 대한 너의 고민과 상상이 여기 다 담겨있지~! 아! 혹시 심각하고 골치 아픈 연애사도 궁금하다면 이런 책도 있다~"


"으악 뭐예요~ 부끄럽게... 저 다 빌려갈게요"

수연이는 벌게진 얼굴로 두 권을 다 안고 달려 나갔다. 생전 독서와 담쌓고 살던 수연이는 꼬박 일주일 동안 그 어느 때 보다 열심히 연애를 책으로 배웠다. 그리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책과 현실은 구분지어야 한다나 뭐라나... 아직 시작도 않은 연애이지만 자신의 이번 연애는 성공적일 것이라는 확신을 했다.


"선생님! Y의 친구에게 물어봤더니 Y가 사귀는 사람이 없대요. 나에 대해서 좋게 생각한다고 대답했대요!! 저 고백해 보려고요~"

자신감 때문인지... 비밀이라더니 목소리가 너무 컸다. 옆에 있던 수연이의 단짝은 이미 정해진 수순을 밟듯 힘차게 외쳤다.

"야~ 그럼 내가 Y 데려올게~!"

수연이와 내가 말릴 새도 없이 수연이의 단짝은 Y를 부르러 도서관을 뛰쳐나갔다. 가만 보니 남의 연애사에 신난 사람이 나뿐만이 아닌 것 같았다.


"선생님 왜 부르셨어요?"

수연이의 단짝이 Y의 뒤에서 내게 앙큼한 윙크를 보낸다. 음... Y는 이렇게 생긴 아이였군~

"어... 아... Y 네가 요즘 도서관에 도통 안 오길래~ 좀 자주 와서 책 좀 읽으라고 불렀지..."

(와~ 그 와중에 난 내 순발력에 감탄했다!)

"에~??? 저 책 안 좋아하는데요...?"

분명 이 상황에서 황당한 얼굴이어야 하는데 수연이 쪽으로 곁눈질하는 Y의 표정에 싫은 내색이 없다. 아~ 이런 재미난 비밀이라니~!

"그러니까~ 자주 와서 책이랑 좀 친해져야지!! 여기 도서관 자주 오는 친구들 하고도 좀 친해지고. 그래. 온 김에 여기 수연이한테 책 좀 추천받고 가~ 수연아 Y에게 책 좀 추천해 주자~"

수연이는 얼굴색 하나 안 변하고 자연스럽게 아주 귀찮지만 특별히 선생님의 심부름을 해 주겠다며 Y를 서가 한쪽으로 데려간다. 그리고 올해 유일하게 읽은 책 '사랑이 훅!'을 건넸다. 수연이가 저렇게 용감한 아이였었나... 사랑은 다 되는구나~! 책도 읽게 하고, 용기도 내게 하고~ 사랑이면 다 되는구나~!


"선생님 저 드디어 성공했어요!! 저 그 친구랑 비밀연애 하기로 했어요. 이거 비밀이에요!!!"

"오~~ 그런데 둘만의 비밀을 이렇게 말하고 다녀도 돼?"

옆에서 듣고 있던 수연이의 단짝이 삐죽이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그러게 말이에요~ 수연이가 비밀이라면서 자꾸 말하고 다녀요~"

"아, 아니에요! 아직 7명밖에 몰라요~"

아... 7명이나 아는 비밀이라니! 방금 내가 들은 말이 비밀의 범주에 속하는 것이 맞는지 다시 한번 비밀의 정의를 떠올려 본다. '우리끼리만 알고 있는 은밀한 사실....' 이라고 하기엔 '우리'가 너무 많은데~ 하지만 뭐 어떠랴! 5월의 햇살은 찬란하고, 녀석들의 연애는 새싹 같거늘, 어른과 함께 고민할 수 있는 연애는 풋풋하고 건강하다. 많이 많이 사랑해라 요 녀석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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