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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책을 읽는 진짜 이유

김영하 작가 북콘서트

by 느닷

김영하 작가님의 북콘서트에 다녀왔다. 지방 소도시에 사는 소시민에게 흔치 않은 기회이다. 선착순 광클에 성공한 500여 명의 진주시민들이 토요일 오후 강당에 모여 앉았다. 역시 김영하~! 드넓은 무대 위에 대본 한 장 없이, 홀로 마이크 하나 잡고 한 시간 반 내내 청중의 주목을 끌어당겼다. 감탄하며 기록한 김영하 작가님의 강연내용을 요약해 봤다. 물론 강연 틈틈이 양념처럼 뿌려졌던 수많은 에피소드와 재미있는 예시들은 다 담지 못해 아쉽지만 큰 줄기만 훑어도 강연 주제를 이해하는 데는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강연의 주제는 '책은 왜 존재하고 우리는 왜 책을 읽는 것일까?' 이것은 사실 많은 사서들이 안고 사는 화두이기도 하다. 그리고 내가 출간한 책에서 내렸던 대답과 비슷한 결론을 내린 작가님의 강연을 들으며 무척 흡족했다! 잠시도 지루할 틈 없이 옛이야기와 드라마, 소설과 동화를 오가며 재미와 유머를 잃지 않는 강연을 펼치는 솜씨에 그는 진정한 이야기 꾼이라는 생각을 했다!



사실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최근에 독서인구가 줄고 있다는 통계가 뉴스에 나왔다. 전체 인구의 60%는 1년에 한 권도 읽지 않는다고 한다. 정말일까? 이러한 통계는 자세히 들여다봐야 한다. 사실 최근 몇 년 사이에 책 매출은 늘고 있다. 책을 읽는 나머지 40%의 독서량은 늘고 있다는 말이다. 독서에도 양극화가 일어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당신은 어느 쪽인가?


책은 다른 물건과 좀 성질이 다르다. 소장하는 것으로 벌써 의미가 생기고 사는 즉시즉시 소비해야 하는 물건이 아니다. 책이라는 것을 꼭 다 읽어야 하는 건가? 생각해 보자. 사실 독서를 좋아하는 사람은 책은 읽는 속도보다 사는 속도가 훨씬 빠르다는 것을 대부분 인정한다.


일본에는 도서관에 사람보다 책이 많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인물이 있다. 수많은 장서량 앞에서 겸허해지는 경험을 제공할 수 있어야 진정한 도서관이라는 것이다. 일본에는 오타쿠스런 독서가도 많다. 어떤 이는 아이들의 공부방을 없애야 한다, 어른의 서재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소중한 독서공간에서 독서하는 특권을 누리는 어른으로 자라고 싶은 욕망을 아이의 마음에 심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고3은 중요한 때이니까, 소설을 읽으면 안 된다는 어른들의 사회적 통념이 있다. 그럼 소설을 읽기에 적절한 때는 언제일까? 대학생? 대학만 들어가면 뭐든 마음껏 하라고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걸 모두가 안다. 대학생이 되어서 아이가 소설만 읽고 있으면 부모는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소설을 읽기에 좋은 때라는 것은 없다. 영화, 드라마, 소설 등 이야기라는 것이 주는 느낌은 이렇다. 유흥. 즐길거리. 휴식. 그러니 중요한때에 이런 것들을 보고 있으면 스스로가 한심하거나 찔린다는 기분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이야기의 세계는 신비로운 점이 있다. 첫 번째.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어서 나만 아는 세상으로 들어갈 수 있다. 어릴 때 엄마라는 존재는 뭐든 다 아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책을 읽고 있는 내가 지금 책의 이야기 속에 몰입해서 모험하고 있다는 것을 엄마는 전혀 몰랐다는 사실에 놀란 적이 있다. 두 번째. 이야기는 꿈과 비슷하다. 꿈은 돌아갈 수 없지만 이야기는 언제든 그 세계로 돌아갈 수 있다. 언제고 몇 번이고 드나들 수 있다. 나만의 다른 세계를 얼마든지 가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한 번 밖에 살 수 없는 삶에서 이야기를 경험하는 것은 현실과 달리 새로운 삶을 살아보는 기회를 가지는 것이다. 내가 모르는 세상을 열고 들어가서 수많은 삶을 대신 경험 해 볼 수 있다. 특히 휴대폰과 달리 열고 닫음이 있다. 시작과 끝이 있다. 물리적으로 존재하는 책은 눈에 보이기에 그 경계가 명확하다. 휴대폰 앱 속에 파일이나 영상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온종일 옆에서 떠드는 수다쟁이 같기도 하고, 시작과 끝이 없기도 하며, 내가 열지 않으면 영원히 사라지기도 하는 세상이라는 점에서 책과 구별된다.


이야기의 세계는 허무맹랑한 것일 수 있지만 나름의 기능이 있다. 아이들은 고아들 이야기를 좋아한다. 고아 이야기를 보면서 자신이 고아가 될지도 모른다는 자기 두려움을 이겨내는 것이다. 모든 인간은 죽는다. 부모도 죽을 수 있다는 것을 어린 나이에 깨닫게 된다. 하지만 대부분의 부모는 걱정하지 말라는 반응을 보인다. 그런다고 걱정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아이들의 무의식에는 부모의 죽음, 고아가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늘 도사리고 있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야기를 통해 고아의 어려움을 알아보려 한다. 주인공이 어려움을 극복해 내는 그 이야기 보면서 자신의 두려움을 극복하게 된다. 아이뿐만이 아니다. 인간은 생애 주기에 맞는 자신의 문제, 고민과 맞닫아 있는 이야기를 펼쳐내는 주인공에게 끌리게 되어있다.


누구나 내 지금 나이나 상황에 가지고 있는 내면의 불안, 관심사, 두려움 등과 관련된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이야기는 나 대신 시뮬레이터 해준다. 내가 미처 예상치 못했던 고난이나 문제에 대해 대신 경험해 보고 미리 고민해 보고 허무맹랑하다고 생각했던 이야기에 대해 경험하게 해 준다. 그래서 그 여자는 어떻게 했나? 그 사람은 어찌 되었나? 살펴보며 내 불안을 해소하고, 혹시 모를 문제에 대처할 수 있도록 마음을 단련한다.


이야기를 좋아하는 것은 인류의 보편적 특성이다. 진화적 관점에서 이야기를 듣고 상상하고 미리 대비하고 연습했던 종족만이 우세종이 되어 살아남았다. 지금도 전 세계가 넷플릭스, 책, 드라마 등등 많은 방식으로 이야기를 소비하고 있다. 이야기는 예로부터 정보와 교훈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데 사용되었다. 정보만 제공하면 대부분 받아들이지 않거나 금세 잊어버리게 된다. 그래서 이야기에 교훈을 상징적으로 담아 전달하는 것이다. 이야기로 만들면 훨씬 효과적으로 빠르게 널리 전달되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감정에 따라오는 정보과 교훈은 쉽게 잊히지 않는다. 그러나 트러블이 없는 이야기는 재미가 없다. 모든 이야기에는 트러블이 꼭 있다. 우리는 타인이 겪은 트러블을 통해서 배움을 얻기 때문에 늘 타인의 트러블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실제로 사람과 늑대는 대화할 수 없지만 동화 속에서 사람과 늑대의 대화 장면을 읽을 때면 '불신의 자발적 정지'를 하는 능력을 인간은 가지고 있다. '그렇다 치고'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가야 끝까지 읽어낼 수 있는 것이다. 어렸을 때는 불신의 자발적 정지가 매우 자연스럽게 잘 된다. 어찌 보면 어른이 된다는 것은 남 말을 불신하게 된다는 것이다. 남 말을 필터링하는 법을 알게 되는 것이 어른이다. 불신의 자발적 정지가 잘 안 되고 취향이 점점 까다로워지면서 홀로 남게 되는 수가 허다하다.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타인이 되어보면서 다른 사람의 처지를 경험해 보게 된다. 실제로 살면서 우리는 타자에 대해서는 상상만 하게 된다. 그런데 재미있는 이야기를 통해 주인공이 되어서 다양한 경험을 하다 보면 타인을 이해하게 해 준다. 따라서 이야기는 이 사회를 유지시켜 주는 기능을 오랜 세월 해 왔다. 모든 인간은 다 다르기 때문에 서로 이해하기 쉽지 않다. 심지어 부모 자식 간에도 잘 이해하지 못해서 싸우곤 한다. 우리가 타인의 마음을 다양하게 상상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이야기인 것이다.


이야기를 읽는 과정에서 공감 능력이 생기는 것이다. 하지만 공감능력에는 한도가 있다. 가까이 있는 소중한 사람에게도 쓸 수 있도록 평소에 잘 배분해서 아껴 쓰셨으면 좋겠다. 공감능력은 타인과 자신에게 활용된다. 어찌 보면 나 자신도 타인이다. 나도 나를 이해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소설은 그 속에서 주인공이 어떤 잘못을 저지르고, 어떤 일을 겪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 주인공을 통해 지난 시간 속의 나를 떠올리게 해 준다. 내 마음을 들여가다 보는데 효율적인 방법인 것이다. 독서를 통해 길러지는 공감능력은 나를 이해하는 데에도 도움이 되는 것이다.


자기 개발서를 아무리 많이 읽어도 실천하지 않으면 소용없다. 동기부여만 자꾸 하지 말고 오늘 밤에는 실천해 보자. 수다쟁이 휴대폰을 거실 충전기에 꼽아두시고, 침실에는 책만 한 권 들고 들어가 읽다가 잠드는 밤. 오늘밤은 그런 밤 되시기를. 내일 밤도 한번 더 그런 밤. 또 그런 밤... 그렇게 책 읽은 사람이 되시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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