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4학년 급식시간. 급식판에 부딪히는 수저소리와 아이들의 수다는 높은 급식소 천장에서 김치찌개 냄새와 버무려져 점심시간을 가득 채운다. 250여 명의 초등학생이 동시에 말하는 소리의 크기는 그야말로 귀가 따가울 정도로 시끄럽다. 아이들은 건너 테이블에 앉은 사람의 목소리는커녕 옆자리에 앉은 친구 이야기도 잘 들리지 않아 고개를 친구 쪽으로 기울이고 대화삼매경이다.
오늘은 학교에서 일 년 중 가장 큰 '참살이'라는 2박 3일간의 행사가 시작되는 날이다. 그 옛날의 학예발표회와 비슷한데 학생 주도 버전으로 업그레이드된 것이라 상상하면 된다. 다들 청소하고 정리하고 꾸미느라 정신없는 와중에 3학년 부장선생님이 밥 먹는 학생들 오른쪽 옆에 서서 목청을 높이셨다.
"지금 우산꽂이에 가 보면 우산을 안 가져간 친구들이 두고 간 우산이 너무 많이 쌓여 있어요. 비도 안 오는데 엄청 지저분하거든요~ 가져가라고 말했었는데 자꾸 까먹는 것 같아요~ 내일 행사 시작하기 전에 오늘 우산을 꼭 다 가져갔으면 좋겠어요. 지금 못 들은 친구들도 많으니까 옆으로 전달 좀 해 주세요~. 밥 먹고 나가서 만나는 친구들에게도 좀 전달 꼭 해주세요~ 까먹지 말고~ "
행사날 학교가 깔끔하길 바라는 부장선생님의 간곡하고 다급한 마음은 상세한 설명으로 이어졌다. 아이들은 잠시 수다를 멈춘 채 숟가락을 들고 끈기 있게 선생님의 기습공지를 경청해 주었다. 그리고 선생님의 말이 끝나자마자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약속이나 한 듯 일제히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우산 챙겨~!!!!!!!!!!!!!!!!!!!!!!!,
(왼쪽 옆으로 한번 더) 우산 챙겨~!!!!!!!!!!!!!!!!!!!!!!!,
(왼쪽 옆으로 끝까지 들리게) 우산 챙겨~!!!!!!!!!!!!!!!!!!!!!!!" 전달 끝.
엄청난 능력이다!
집중과 경청, 내용요약, 핵심문구 발췌, 순간적인 일심동체, 도미노식 즉시전달!
우리 3학년 국어 단체점수는~ 100점입니다~!
녀석들... 수다스럽기만 한게 아니라 요약 정리도 잘 하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