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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 사람이 논리로 설득이 돼?

by 느닷

"지금 엄마가 하는 말이 얼마나 억지스러운지 알아요?"

머리 좀 굵었다고 이누무 아들은 틈만 나면 무방비 상태의 엄마에게 선제공격을 가한다. 내 인스타그램 피드와 릴스가 지나치게 촌스럽다는 것이다. 요즘 스타일은 이게 아니란다. 화질도 이렇게 구리면 못쓴단다.

"아니... 이 사진이 비율이 다르니까 확대해서 쓰다 보니 어쩔 수 없이.... 그래도 찍어둔 게 이것밖에 없는 걸 어쩌냐..."

아뿔싸. 아들의 1차 공격을 정신 차리고 방어하지 못하면 2절 3절 반복되는 잔소리 폭탄을 피할 수 없다.

"엄마~~ 저번에도 가르쳐 줬잖아요~ 아무 사진이나 쓰지 말고, 찍을 때부터 릴스용으로 촬영을 하라고~ 맨날 알았다고만 대답하지 말고 좀 배워서 하라니까요. 이게 뭐가 문제냐면................."

아들은 오늘도 돌림노래 같은 설명을 무한 반복한 끝에 결국 다음번엔 잘하겠다는 엄마의 억지스러운 답변을 받아내고야 말았다. 데자뷔가 느껴지는 듯한 이거 이거 익숙한 패턴인데...


나는 얼마 전부터 매주 목요일 밤마다 인스타그램에서 라이브 방송을 하고 있다. 애정하는 그림책을 소개하고 읽어주며 수다를 나누는 시간이다. 좋은 뜻에서 하는 엄마의 인스타그램이 잘 되길 바라는 아들의 조언이라는 것을 잘 안다. 하지만 아~무래도 초등학생 때 무한반복 버전으로 들었던 엄마 잔소리에 대한 복수가 아닐까 하는 치졸한 의심이 자꾸 든다. 찌질한 감정은 증명할 길 없이 그저 찜찜하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가까운 사이일수록 유난히 비논리적이고 비이성적인 대화를 무시로 하게 되는 것 같다. 말하는 사람 딴에는 나름 상식적이고 논리적으로 말하는 것인데 듣는 나는 감정적으로 들리기 일쑤다. 왜일까? 그런데 나만 그런 건 아닌가 보다. 무심히 펼쳐든 sns에서 우연히 가수 박진영의 짤을 보며 위안을 받았다.

1700703028389.jpg "형, 사람이 논리로 설득돼?"


그래. 사람은 본래 논리적으로 판단하고 설득하는 것을 잘 못하는 동물이다. 그럼 무엇으로 설득되고 선택하고 결정하는 것일까? 감정이다. 감정은 생각보다 많은 부분에 영향을 미친다. 피곤할 때 마트에 가면 쇼핑카트에 평소에 잘 사지 않던 음식까지 산더미처럼 쌓인다. 기분이 좋을 땐 빨래통에 뒤집어진 양말도 콧노래와 함께 순순히 뒤집는다. 시간에 쫓기거나 압박감에 시달릴 땐 윗집 아이의 발걸음 소리가 유난히 시끄럽게 들린다. 한 실험에서 화창한 날 데이트신청 성공 확률이 비 오는 날의 성공 확률보다 월등히 높다는 결과를 본 적이 있다. 인간의 감정이라는 것은 심지어 날씨나 온도에 따라서도 오락가락할 수 있는 것이다. 감정상태에 따라 같은 상황에서도 대답이 달라지고 선택이 달라지는 비논리적인 감정이 기본값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 보면 그 덕분에 삶의 매 순간 '사랑'이라는 감상 앞에서 무장해제 될 수 있고, 어처구니없는 '낭만' 앞에서 용감해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잘 따져보면 논리적이라고 늘어놓는 그런 말들 역시 지극히 주관적이거나 오류 투성이인 경우가 많다. 어차피 생각이란 것은 주관적인 사고의 결과물이기 때문에 피할 수 없는 결과일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누군가를 도와주고 설득하고 이해시키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감정을 보여줘야 한다. 지금 상황에서 내가 무엇을 공감하고 있는지 얼마나 걱정스러운지, 어떤 기분을 설명하고 싶은 것인지 내 감정을 보여주고, 네 감정을 어루만져 주며 서로의 감정을 이해해야 한다. 참견과 조언은 그다음이다. 쉽지 않다. 그러니 내가 제아무리 잘 아는 분야라 할지라도 구하지 않는 이에게 조언은 삼가는 게 맞다. 차라리 잘 되길 바라를 응원의 마음만큼 눈을 크게 뜨고 긍정적인 부분을 짚어주는 것이 현명하다.


요즘 조언을 너무 많이 들었더니 구차한 변명이 자꾸 길어진다. 그렇다. 당신들의 논리적인 조언은 결국 나를 설득하지 못했음을 선언하고 있는 중이다. 누가 뭐래도 나는 낭만파로 살란다. '억지스럽다'를 '낭만스럽다'로 자기 합리화 중인 것으로 보인다면 부정하지 않겠다. 인스타그램이 어렵고, 사진도 구리고, 편집 실력도 형편없지만 뭐 어떤가! 하고 싶은 걸 하고 싶을 때 하다 보면 언젠가 잘하는 때도 오겠거니 따위의 감상적이고 이상적인 결정을 내리련다. 한없이 재고 따지고 파고들어 준비하다 포기해 버리거나, 지치고 냉소적인 전문가가 되기보다 치기 어린 초보일지라도 부끄러운 줄 모르고 기꺼이 다음 발걸음을 내딛는 용감한 꿈나무로 늙으련다. 스타일이 좀 구릴 수 있지만... 우리 라방에서 만나 당신의 사랑과 낭만에 대해 이야기 나눠 봅시다~!


김규미/느닷도서관/'사서쌤!저는100권이나읽었어요' 저자 / 현직사서(@dodo38317) • Instagram 사진 및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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