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기가 되어 올해 근무지를 옮겼다. 이 학교의 도서관은 방과 후에 특히 인적이 드물다. 거짓말처럼 사람이 사사삭 사라진다. 월요일 오후. 그 적막을 깨고 창밖에 흩날리는 벚꽃잎처럼 가녀린 목소리가 집요하게 들렸다.
"토리야 어디 갔니? 이리나와~ 집에 가야지~ 토리야~ 빨리나와~"
1학년 라임이가 등에 자기 키만 한 가방을 메고 울먹이며 도서관을 서성였다.
"라임아 뭐 찾아요?"
"토리요~"
"어? 인형? 장난감이야?"
"네... 할아버지가 주신 장난감이에요..."
"어떻게 생겼는데?"
"도토리처럼 생겼어요."
"뭘로 만들어졌는데? 천? 플라스틱?"
"아니요~ 도토리로 만들어졌어요."
어허... 도토리로 만들어진 토리장난감이라...
"혹시 도토리 그림이나 카드 같은 거니?"
"아니요~ 토리는 안아줄 수 있어요..."
"크기가 어느 정도 되는데?"
"도토리만~ 해요. 아까 여기서 수업할 때 가지고 있었는데 교실에 가서 보니 없어요..."
아.... 금방이라도 펑펑 울 것만 같은 라임이를 외면할 수 없었다. 당최 상상도 잘 되지 않는 라임이의 도토리만한 장난감을 찾느라 도서관 바닥을 10분 동안 기다시피 했다.
"토리야~ 어디 있니 토리야~ 어서 나와.... 오늘 같이 밥 먹기로 했잖아... 토리야~"
라임이의 애타는 부탁과 달리 토리는 나타나지 않았고 라임이는 방과 후 미술수업 시작 시간이 한 참 지나서 빈손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다음날.
"어? 이게 뭐지?"
수업시간에 산만한 엉덩이를 들썩이던 한 녀석이 수업하다 말고 바닥에서 뭔가 주워 들었다.
나는 한눈에 그것을 알아보았다. 라임이의 장난감!
콩알만 한 갈색 도. 토. 리! 레알 도토리!
도토리처럼 생겼고, 도토리만 한 크기에, 도토리로 만들어졌으며, 안아줄 수 있는 라임이의 도토리 장난감!
토리가 정말 도토리일 줄이야!
라임이는 그날 방과 후에 심각한 얼굴로 다시 토리를 찾으러 왔고 나는 라임이의 손에 그 소중한 토리를 꼭 쥐여주었다. 나 왜 토리가 도토리라는 걸 못 알아 들었던 걸까?? 다른 선생님들은 전근을 가면 동료들과 서먹하고 적응하기 힘들다 하던데... 난 학생들이 바뀌니 사서 번역기가 먹통이 된 것같이 혼란스럽다. 아무래도 사서 번역기에 업그레이드가 필요한 것 같다. 업그레이드는 어찌하는 걸까... 고민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