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모 / 미하엘 엔더 / 비룡소
모모는 경청과 공감의 달인이었다. 잘 들어주는 것만으로 대부분의 분쟁과 고민을 해결해 주는 모습은 부럽고 비현실적이다. 누군가 모모처럼 내 말을 들어준다면 정말 행복할 것 같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나조차 모모처럼 경청할 자신이 없다. 경청은 왜 이렇게 어려운 것일까? 모모는 부와 명예도 권위도 어떤 욕심도 없는 평화주의자다. 그에 반해 현생의 우리는 너무 많은 욕망이 그득그득 들어차있다. 너의 문제를 해결해 주고 싶은, 내 경험에 비춰 답을 제시하고 싶은, 너의 실수와 네가 모르고 있는 것 같은 것을 짚어주고 싶은, 문득 떠오른 비슷한 경험이나 감정을 나도 말하고 싶은, 혹은 너무 바쁜 나머지 이제 그만 다른 것을 하고 싶은, 끊이지 않고 머리를 불쑥불쑥 들이미는 내 안의 욕망들이 경청을 불가능하게 한다. 경청의 효용이 이토록 높다면 경청하는 척이라도 해봐야 할 텐데, 우선 머리를 비우고 마음도 비워야 될 것 같다.
화려하고 신기한 인형 장난감을 트렁크 가득 선물해 주지만 주인공 모모는 녹음된 말만 반복하는 지루하고 따분한 장난감일 뿐이라며 싫어하는 장면이 인상 깊었다. 언뜻 보면 현실의 아이들과 다른 반응이라 공감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잘 생각해 보면 우리 아이들이 가장 즐겁게 오래도록 놀았던 시간을 돌이켜 보면 이해가 된다.
비싼 로봇 세트나 무선조종 미니카 같은 장난감은 가격에 비해 그 효용 기한이 턱없이 짧았다. 돈 아까운 마음에 자꾸 더 가지고 놀아보라고 종용했었지만 이내 부서지거나 배터리 이슈 등으로 수많은 장난감 바구니 한편으로 밀려나곤 했었다. 오히려 보자기 하나 뒤집어쓰고, 줄넘기 이리저리 칭칭 감아서 우주 놀이하고 해적 놀이하던 때가 더 오래 놀고, 신나게 놀고, 여러 방법으로 놀았던 것 같다.
어쩌면 지치고 힘든 육아를 정형화된 장난감(다른 말로는 돈)으로 해결하는 게 가장 쉽고 간단했던 것은 아닐까? 여기서 지난번에 읽었던 '불안 세대'가 또 겹쳐 떠오른다. 아이들 스스로 놀이 방법과 규칙을 만들고 다툼과 분쟁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창의력과 사회성을 기르는 경험이 성장과정에 꼭 필요하다는 저자의 지적 말이다.
신기한 장난감들로 아이와 놀아줘야 하는 힘든 시간을 비켜간 것 같지만 사실 아이가 부모와 건강하게 성장하는 시간을 방해한 것일 수도 있다. 모모가 호라 박사의 집으로 가기 위해서 지나가야 하는 길 중에는 거꾸로 천천히 걸어야 빠르게 갈 수 있는 길이 있다. 말이 안 되는 것처럼 들리지만 현실에서 그 예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쉬운 길, 지름길이 빨라 보이지만 결과적으로 빙빙 돌아가는 길이었음을 나이가 한참 지난 후에야 깨닫게 되었다는 게 아쉬울 따름이다. 이제 성인이 된 아들은 밥 사준다 영화 보여준다 아무리 읍소해 봐도 늙은 엄마랑 놀아주지 않는다. 아들이 내 주머니에 돈을 찔러 넣어주며 엄마도 혼자 잘 놀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할 날이 머지않은 것 같다.
지름길도 잘못 든 길도 되돌아갈 수 없다는 게 엄혹한 시간의 룰이다. 유한한 삶을 사는 인간은 그래서 더더욱 시간 절약에 강박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모모를 읽으며 다시금 정강이뼈 때리는 통증을 느낀 때는 그 귀한 시간을 시간의 주인으로서 진짜 삶을 살고 있는가 하는 물음에 직면했을 때이다. 한순간 찰나와 같을지도 모를 소중한 사람들과의 시간을 한없이 계속될 듯이 허투루 쓰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남들의 기대에 부응하느라, 소중하지 않은 무엇을 위해, 중요한 순간들을 미루고 있지는 않은가?
기계와 인터넷은 우리를 편하고 빠른 세상에 살게 해 주는 것 같지만 사실일까? 여성의 가사노동은 식기세척기, 세탁기, 밥솥, 전자레인지, 청소기 등으로 자동화되었지만 더 다양한 노동과 고퀄리티의 노동을 강요당하고 있다. 그것들을 관리하고 운영하는데 또 시간과 에너지가 들어간다. 결과적으로 빠르지만 빠르지 않다. 코로나 이후 온라인 화상 모임 (ZOOM) 덕분에 퇴근이 없어졌다. 그렇잖아도 스마트폰 덕분에 차 안에서도 이메일을 수정하고, 출장 중에도 PPT를 제작하는 무한 노동시간이 열렸는데, 이제 밤도 낮도, 해외에서도 만나서 회의와 미팅과 교육을 한다. 밤 9시부터는 그래도 지극히 개인적인 시간이었는데 이제 그것도 옛말이 되었다. 빠르고 편한데 편하지 않다.
인간은 사회적 질서와 안녕을 위해 시간과 시계를 개발했지만 결국 중요한 시간, 결정적 순간, 평화롭고 사적인 공간을 모두 파헤쳐놓았다. 밥을 먹으며 SNS에 답을 하고, 지하철을 타며 교육 영상을 시청하고, 근무 중에 화상으로 아이에게 안부를 전한다. 모든 것이 동시에 이뤄지는 세상에서 우리는 모두가 바쁘고 하나같이 정신없는 삶을 산다. 시간에 대한 강박에 시달리는 것은 현대사회를 사는 사람이라면 피할 수 없는 공통된 정신병증이다.
모모와 호라 박사, 거북이 카시오페이아, 회색 신사들은 소설 속에서 끊임없이 경고하고 있다. 내면의 평화를 잃지 말라고 말이다. 사람이 사람을 마주하며 교감하는 인간적인 시간의 진정한 가치를 잃지 말라고 말이다. 말이 쉽다. 돈 앞에서 우리는 물에 녹는 설탕처럼 좌절하는것이 현실이다. 노년이 오기전에 몇 억을 모아야 한다는 둥, 자녀 한 명을 성인으로 키우기 위해서는 몇 억이 든다는 둥, 결혼자금으로는 얼마가 필요하고, 주거안정을 위해서는 또 얼마가 필요하며, 아직 아프지 않지만 아프게 될 나와 가족을 위해서 또 얼마나 많이 필요할지 계산할 수 없을만큼 많은 돈이 필요하다는 뉴스를 매일매일 듣고 산다. 내가 고통속에서 월급을 버는동안 죽은 시간은 이런데 필요한 돈으로 등가교환된다.
그런데 돈이 얼마나 필요한지는 누가 정하는 것일까? 언제까지 얼마가 필요한 것일까? 지금 떠올리는 금액은 정말 내 의지와 욕구가 정한 금액이 맞는가? 자본주의 현대 사회가 개인 노동자에게 강요하는 무한의 굴레를 유지하기 위한 숫자는 아닐까?
기억하자. 누구나 시간의 주인이 될 수 있다. 사연 없고 사정없는 개인사가 없을 테니 수많은 변명과 이유가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분명, 스스로 선택한 시간을 적절히 밸런싱 하는 삶을 선택할 수 있다. 절대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그대여, 부디 넘치는 내면의 욕망을 알아차리고 회색 신사를 조심하기 바란다.
질문으로 읽는 독서토론
『모모』를 읽으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이나 대사가 있다면 무엇이고,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경청과 공감이 어려운 이유는 무엇일까요?
회색 신사들이 훔쳐 가는 '시간'. 현대 사회에서 이 '시간 도둑'은 어떤 형태로 존재한다고 볼 수 있을까요?
기계와 인터넷은 우리를 편하고 빠른 세상에 살게 해 주고 있는 것이 맞는가?
소설 속 사람들은 시간을 절약하면 더 많은 것을 누릴 수 있다고 믿지만, 결과는 달랐습니다. 우리가 '효율성'이라는 이름으로 잃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왜 시간 절약에 대한 강박이 생겼을까?
회색 신사들의 유혹에 맞서 어떻게 자신의 시간을 지켜낼 수 있을까요? 구체적인 방법이나 태도는?
진짜 살아있는 시간을 보내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런데,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는 게 안 좋은 것인가?
기억하고 싶은 문장
p.83
세상에는 아주 중요하지만 너무나 일상적인 비밀이 있다. 모든 사람이 이 비밀에 관여하고, 모든 사람이 그것을 알고 있지만, 그것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사람들은 대개 이 비밀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조금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 비밀은 바로 시간이다.
시간을 재기 위해서 달력과 시계가 있지만, 그것은 그다지 의미가 없다. 사실 누구나 잘 알고 있듯이 한 시간은 한없이 계속되는 영겁과 같을 수도 있고, 한순간의 찰나와 같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 한 시간 동안 우리가 무슨 일을 겪는가에 달려 있다.
시간은 삶이며 , 삶은 우리 마음속에 깃들여 있는 것이니까.
p.213
"운명의 시간이 뭔데요?"
"음, 이 세상의 운행에는 이따금 특별한 순간이 있단다. 그 순간이 오면, 저 하늘 가장 먼 곳에 있는 별까지 이 세상 모든 사물과 존재들이 아주 독특한 방식으로 서로 영향을 미쳐서, 이제껏 일어나지 않았고, 앞으로도 일어날 수 없는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지. 애석하게도 인간들은 대개 그 순간을 이용할 줄 몰라. 그래서 운명의 시간은 아무도 깨닫지 못하고 지나가 버릴 때가 많단다. 허나 그 시간을 알아보는 사람이 있으면 아주 위대한 일이 이 세상에 벌어지지."
"그걸 알려면 그런 시계가 필요하겠네요."
"시계만 갖고는 아무 소용이 없어. 시계를 볼 줄도 알아야지."
p.222
"그런데 왜 (회색신사들의) 얼굴이 잿빛이에요?"
"죽은 것으로 목숨을 이어가기 때문이지. 너도 알다시피 그들은 인간의 일생을 먹고 살아간단다. 허나 진짜 주인으로부터 떨어져 나온 시간은 말 그대로 죽은 시간이 되는거야. 모든 사람은 저마다 자신의 시간을 갖고 있거든. 시간은 진짜 주인의 시간일 때만 살아있지."
p.232
"너희들은 시간을 느끼기 위해 가슴을 갖고 있단다. 가슴으로 느끼지 않은 시간은 모두 없어져 버리지. 눈먼 사람에게 무지개의 고운 빛깔이 보이지 않고, 귀먹은 사람에게 아름다운 새의 노랫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과 같지. 허나 슬프게도 이 세상에는 쿵쿵 뛰고 있는데도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눈멀고 귀먹은 가슴들이 수두룩하단다."
"그럼 제 가슴이 언젠가 뛰기를 멈추면 어떻게 돼요?"
"그럼, 네게 지정된 시간도 멈추게 되지, 아가. 네가 살아온 시간, 다시 말해서 지나온 너의 낮과 밤들, 달과 해들을 지나 되돌아 간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게다. 너는 너의 일생을 지나 되돌아가는게야."
p.311
차라리 음악을 듣지 않고, 색채들을 보지 않았으면 하고 바랐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막상 선택을 하라고 했다면, 이 세상 어떤것을 준다고 해도 음악과 색채에 대한 기억과 바꾸진 않았으리라. 그 기억 때문에 목숨을 잃는다 해도 마찬가지였다. 이제 모모는 깨닫게 되었다. 이 세상에는 다른 사람과 나눌 수 없으면, 그것을 소유함으로써 파멸에 이르는 그런 보물이 있다는 사실을.
이어서 읽으면 좋을 책 - 오래된 미래 /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 / 중앙북스 / 2015
우리가 그토록 고달프고 가고자 하는 미래, 이루고자 하는 미래의 모습은 이미 있었던 그 옛날의 모습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