ㅣ 넌 뭘 하고 싶니?
“선생님! 말미잘 수영 같은 걸 왜 해야 해요?”
“달라야, 너만 왜 그러니? 모두 열심히 하잖아. 얼른 줄 서!”
달라는 답답했어. 집에 오자마자 아빠에게 말했지.
“나 수영 그만 배울래요!”
“왜 그러니? 달라야.“
“말미잘 수영 같은 건 너무 힘들어요. 재미도 없고, 난 헤엄칠 줄도 아는걸요!”
“그렇구나. 그럼 달라 마음대로 해 보렴.”
“우와, 정말요?”
“물론이지, 달라는 뭘 하고 싶니?”
달라는 곰곰이 생각해 봤어.
‘뭐가 재미있을까?“
남들과 똑 같은 공부를 거부하는 아기펭귄 달라를 아빠는 나무라지 않는다. 달라가 좋아하는 것을 찾을 수 있도록 질문 해 준다. 우연히 미끄럼타기에 재능을 발견한 달라는 친구들이 어려운 수영을 억지로 배우는 동안 미끄럼 타기를 즐겼다. 달라는 미끄럼타기를 즐기다가 대회에서 우승까지 한다. 달라는 그 다음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 다시 고민한다. 달라의 다음 선택이 실패하든 성공하든 결과에 상관없이 달라는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부럽기 그지없는 달라를 보고 있자니 두 명의 남자가 생각났다.
사서가 되기 전에 고용 노동부에서 취업상담사 일을 2년 정도 했었다. 졸업을 앞둔 대학생이나 졸업한 지 한참 지났는데도 아직 취업을 못 한 사람들이 상담을 받으러 찾아왔다. 그중 특히 안타까운 경우는 부모 손에 끌려오는 젊은이들이었다.
5회기 상담이 이어지도록 원하는 직업이 없다던 한 졸업생이 마지못해 희미하게 남아있던 의욕의 흔적을 긁어모아 트럭운전을 해 보고 싶다고 소심하게 폭탄 발언을 했다. 아마 연세대학교 수학과 졸업생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청년의 선택에 어머니는 격렬히 반대했다.
말 잘 듣고 얌전하던 아들이 시키는 대학, 시키는 전공, 시키는 졸업을 잘했는데 왜 시키는 대로 취업을 하지 못하는 것인지 이해하지 못하셨다. 모든 힘든 결정을 대신해 주고, 아들이 공부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가슴 졸이며 모든 뒷바라지를 다 해줬는데 이제 와서 계획에 없던 트럭운전을 하겠다는 아들에게 어머니는 분노했다. 할 수만 있다면 취업도 대신 해 줄 기세였다.
졸업 후 일 년을 꼬박 방에만 있었다던 이 청년은 생애 처음으로 스스로 무언가를 희망했다. 고속도로를 달리며 자유로운 바람을 느끼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꿈을 밀어붙일 힘도 확신도 없었다. 부모와 내담자 사이에 끼인 상담사 나부랭이가 주는 정보와 용기는 별 도움이 되지 못했다.
나는 그 청년이 부디 트럭운전을 하며 자기 삶을 경험해 보기를 바랐다. 의외로 적성에 맞는다면 보람과 성취를, 죽도록 고생만 한다면 후회의 땀을 흘리며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는 지혜를 얻기를! 하지만 어떤 선택도 하지 못한 청년의 취업상담 기간은 어영부영 종료되었고 그는 다시 작은 방으로 돌아갔다. 그 청년이 언제 그곳에서 다시 나올 수 있을지 모를 일이었다.
두 번째 남자는 여기 글빛누리도서관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만났다. 도서관에 앉아있는데 복도에 뭔가 좌르르 쏟아지는 소리가 났다. 곧이어 한 아이가 도서관 옆 실과실 안에 있는 로봇과학 방과 후 수업 담당선생님을 소리쳐 불렀다.
“선생님~! 선생님~! 가방이 찢어졌어요! 가방 찢어졌다고요~!"
친구와 장난치며 교실 문을 나서다가 로봇 과학 교구가 담긴 종이가방이 찢어졌다고 했다. 손톱만 한 교구들이 복도 바닥에서 파도치고 있었다. 같이 장난치던 친구들은 잠시 구경하다가 달아나 버렸고, 아이는 찢어진 가방 손잡이를 들고는 로봇 과학 방과 후 수업 담당 선생님을 하염없이 불렀다. 하지만 한창 수업 중이던 로봇 과학 선생님은 뛰어나올 수 없는 상황이었다.
“아이씨! 선생님! 이거 어떡하냐고요~?! 선생님~!”
아이는 끝내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교실 안을 노려보고 서 있었다.
나는 얼른 비닐봉지를 하나 챙겨 와 손에 쥐여 주었다.
"로봇 과학 선생님은 수업 중이라 바쁘시잖아. 네 물건이고 네가 장난치다가 쏟은 것이니 네가 주워 담자. 선생님이 도와줄게…. 자 이리 와서 같이 담자~"
"이렇게 작고, 이렇게 많은데 어떻게 담아요? 그리고 다음 방과 후 수업에 빨리 가야 해서 바쁘단 말이에요. 난 못해요!"
어이쿠! 순간 머리가 띵해진 나는 주섬주섬 교구를 주워 담던 손을 털고 일어났다. 모든 걸 대신 선택해 주고 모든 어려움을 대신 해결해 주던 청년의 어머니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음… 선생님도 지금 도서관에 기다리는 친구들이 많아서 못 도와주겠네, 로봇 선생님도 지금 수업 중이라 못 나오시고… 어쩌지~?"
복도를 지나가던 아이들이 지뢰밭을 건너가듯 깨금발로 오가며 이 상황을 구경했다.
안쓰러운 마음에 별 생각 없이 손을 움직이다가 하마터면 아이가 성공과 실패를 경험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내가 빼앗을 뻔했다! 나는 얼른 정신을 차리고 도서관으로 돌아왔다. 아이가 그 교구를 혼자 다 수습한다면 자신감을 얻어갈 것이고, 끝내 다 주워 담지 못한다면 자신의 물건을 간수하는 태도가 신중 해 질 터이다. 혹은 옆에 있는 누군가에게 도움을 간청해서 도움을 받는다면 감사라는 것을 배울 터이고, 다음 방과 후 수업에 지각을 하더라고 자신의 어려움을 구경만 하다 달아난 친구들을 두고 좋은 친구란 어떤 것인지에 대해 고민 해 볼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어떤 결말도 녀석에게 해로울 게 없으니 나는 귀를 틀어막고 도서관 의자에 엉덩이를 붙였다.
도서관에 있다 보면 무선조종을 당하는 아이들을 심심찮게 만난다. 어머니가 아침 등교를 함께 해 주시는 것을 시작으로 방과 후에는 전화통화를 하며 하교시간 까지 무선으로 조종하는 것이다. 어머니는 분 단위로 학생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시한다. 도서관에 15분만 있다가 다음 방과 후 수업에 들어가라, 오늘 받아쓰기는 몇 점 받았냐, 기다리는 동안 학습지 두 장 풀어라, 다 풀고 바로 전화해라, 아침에 적어준 책을 찾아서 읽어라, 바이올린 잊지 말고 잘 들고 와라. 아이는 다른 친구와 담소를 나눌 틈도, 마음에 드는 책을 구경해 볼 틈도 없다. 방과 후 수업이 끝나는 시간에 맞춰서 어머니가 간식을 들고 교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는 간식을 먹으며 가방을 바꿔들고 다음 스케줄 장소로 이동한다.
항상 피곤하고 바쁜 어머니의 완벽한 시간 속에 자신의 삶도 있는지 염려스럽다. 혹시 휴대전화 배터리가 없는 날이면 아이는 10분도 불안해서 동동거렸다. 어머니는 아이를 믿지 못하고, 아이도 자신을 믿지 못했다. 똑똑하고 공부도 잘 하는데 아무것도 스스로 못하는 아이. 어른은 아이의 어디까지, 무엇까지 대신해 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