ㅣ 계급장 떼고 나와 너로
입사 이래 처음으로 학교 선생님들과 방학을 틈타 1박 2일 워크숍을 떠났다. 학교에서 멀지 않은 곳이었지만 이분들과 하룻밤을 같이 보내기에는 좀... 부담스러운 관계가 아니겠나 싶은 마음을 더하기 빼기 하느라 결정이 쉽지 않았다. 친한 선생님은 자녀가 어리거나, 아이가 아파서 빠지고, 아직 잘 모르고 서먹한 선생님도 제법 가고, 지난번에 대화가 좀 껄끄러웠던 선생님도 간다 하고, 게다가 교장, 교감 선생님까지 함께 한다니 마음속 셈법이 머뭇거렸다. 하지만 내년이면 만기가 되어 다른 학교로 떠나야 하는데 어쩌면 그전에 다시없을 여행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참석을 결심했다.
그런데 이 워크숍이라는 것이 내 상상과는 전혀 다른 행사였다. 그곳에서 부장님은 내년도 운영계획 같은 것은 뻥긋도 안 했다. 행정 실장님도 예산걱정 따위는 잊었다. 나는 도서관업무 생각을 할 필요가 없었다. 당연히 수업종 소리에 맞춰 분주하게 학생들을 챙기는 이도 없었다.
엄하기만 하던 한 선생님이 뽑아 올린 노랫가락에는 반전매력이 넘쳤다. 까탈스러워 보이던 선생님의 어깨춤이 그렇게 귀여울 줄이야! 말이 잘 안 통하던 선생님의 미스터트롯 프로그램 참가자 박성온을 향한 팬심은 신선했다. 30초 스피치에서 유재석 못지않은 순발력을 발휘하는 선생님들을 보고 깜짝 놀랐다. 마른안주에 대한 견해가 같다거나, 취미로 삼고 싶은 스포츠에 대한 이룰 수 없는 염원이 일치하는 따위의 공통점을 발견하는 재미에 박장대소하는 웃음소리가 늦은 밤까지 이어졌다.
그곳에서는 아무도 누구의 엄마, 아빠, 선생님, 상사, 부하직원 따위가 아닌 그냥 한 사람으로 존재했다. 각자 직분에 얹힌 이름표를 내려놓고 마주 앉은 '나' 들은 그간 알아온 '그'와 비슷하지만 어딘가 새로웠다. 유머가 잘 통하는 유쾌한 직장동료들을 새롭게 발견했다.
다음날 우리는 숙소 가까이에 있는 '고성교육미래지원센터 ㅡ삼락'에서 샤프 만들기 목공체험을 했다. 윙윙 요란한 소리를 내며 돌아가는 기계 앞에 한 무리의 쌩초보들이 나란히 섰다. 목공 강사님의 열띤 설명 앞에 어정쩡하게 서있는 모양새와는 달리 얼굴보호대 안쪽의 눈빛은 샤프완성에 대한 높은 의지로 번뜩였다.
물레보다 훨씬 빠르게 돌아가는 목공기계에 매달린 길쭉한 사각기둥 나무토막의 투박한 모서리를 납작한 끌로 깎았다. 손톱 같은 나무 부스러기들이 사방으로 튀었다. 둥그런 원통형을 만들기 위해 게슴츠레 뜬 눈으로 나무토막을 노려보며 손끝에 힘을 준다. 소매 한가득 톱밥이 들러붙는다. 거친 사포로 모양을 다듬자 밀가루 같은 갈색 나무 가루가 우수수 흘러내린다. 마지막으로 부드러운 사포를 움켜쥐고 매끈한 몸체를 매만지자 봄날 햇살 가운데 떠다니는 먼지 마냥 고운 가루가 나를 에워싼다. 우리는 부유하는 나무향기를 들이마시며 함께 체험시간에 빠져들었다.
너무 많이 깎으면 샤프 몸통이 부러질지 모른다. 그렇다고 매끈하게 마감하지 않으면 볼품이 없을 수도 있다. 줄무늬는 간격이 적당해야 할 것 같아 좌우를 자꾸 살핀다. 발끝까지 목공에 집중하고 있는 아마추어들의 폼새는 어설프기 그지없다. 벌어진 입으로 나무먼지가 들어가고 있는지 마는지도 생각할 틈이 없다. 그렇게 각자의 궁리로 완성된 샤프는 색도, 모양도 제각각의 개성을 뽐냈다.
세상에서 제일 진지한 표정으로 나무토막을 깎는 동안 우리는 선명하게 즐거운 맛을 같이 즐겼다. 잠시 과거도 미래도 툭툭 떼어놓고 정확히 현재에서 '나'로 반짝이는 어른들을 나는 정지화면으로 목도했다. 이런 귀한 순간들을 찐하게 공유한 사람들과 함께 하는 직장생활은 아마 어렵지 않을 것 같다는 마음이 일렁였다.
아~ 여기 따라오길 참 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