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심 좀 내려놓으시죠?

ㅣ 가짜 모범생

by 느닷


성장기 내내 맹목적인 학업경쟁에 내몰린 우리나라 학생들의 현재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한 지는 좀 되었다. 문제는 변화가 너무 더디다는 것이다. 내 주변의 학부모들과 이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면 대체로 공감을 표현하지만 이야기의 끝은 늘 비슷하다.

‘그래도 어쩌겠어요..., 하고 싶은 것도 없다는데 대학은 보내야지.., 남들 다 시키는데 가만히 놔두면 우리 애만 바보 되는 것 같고..., 진짜 애들이 불쌍하다는 생각도 들지만 어쩔 수 없어요..., 애가 철없이 싫어한다고 해서 덜컥 학원을 안 보낼 수는 없어요...‘

어느 교육학자가 말하길 우리나라에서 대안학교에 자녀를 가장 많이 보내는 직업군은 교사라고 한다. 경쟁교육의 폐해를 학교 현장에서 가장 가까이 느끼는 사람들의 선택은 대안학교로 몰리고 있다. 변화가 필요하다는 절박한 신호가 보이지 않는가?


우리는 신문에서 수시로 학교폭력과 교육비리, 학생우울증으로 인한 자살 등의 사건이 오르내리는 시절을 살고있다. 이를 어찌 좀 해 보고자 ‘행복학교’라는 대안이 나왔지만 ‘행복학교’에 학생을 보내는 1학년 학부모들이 내게 많이 하는 질문 중 하나는 바로 불신과 불안이다.

“선생님.... 행복학교는 공부는 안 시키고 놀기만 한다던데 그러다 중학교 학업에 적응을 못하면 어떻게 하나요? 학원이라도 알차게 보내야 하지 않을까요? “

아이들의 개성과 창의력을 존중하고 스스로 선택하는 민주시민으로서의 삶을 응원하기 위해 애쓰는 교사와 일부 학부모들의 노력이 하찮아지는 순간들이다.


한국의 엄마들은 왜 하나같이 ‘교육 학대’라는 극단적인 용어가 생겨나도록 자녀의 학업성취에 목숨을 걸게 되었을까? 다들 무지해서? 베이비붐 세대 이후 여성들의 학력은 남성들과 동등한 수준으로 올라왔다. 무지하기는커녕 자아실현의 욕구가 충만한 고학력 사회인으로 자랐다. 하지만 내 경험상 여성들의 자아실현에 대한 한국사회의 잣대는 개화기 조선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여성의 육아와 사회생활의 병행이 용이하지 않은 대한민국의 현실 속에서 많은 엄마들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성공을 자녀의 성공으로 대신하는 삶에 발을 내딛게 된다. 이러한 이유로 과열로 치닫는 교육에 대한 열망은 비정상적인 경쟁구도를 낳았고 우리는 그러한 사실을 알고는 있지만 변화를 요구하는 아이들 앞에서 늘 궁색한 변명만 늘어놓고 있는 형국이다.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 여성으로서 엄마들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 하는 것은 아니다. 심지어 격한 위로를 건네고 싶다. 하지만 부모가 가진 욕망의 크기만큼 망가져 가는 아이들의 영혼도 똑바로 봐야 하지 않겠는가?


도대체 언제까지 ‘어쩔 수 없다’는 변명으로 아이들의 목줄을 움켜쥐고 있을 거냐고 쇠 긁는 소리로 부모들을 향해 소리치는 책을 만났다. ‘불량 가족 레시피’로 유명한 손현주 작가의 ‘가짜 모범생’.

”내가 명문대에 가지 않으면 엄마 역시 설 자리가 없어진다고 했어. 그 덕에 난 새벽 두 시까지 한 시간도 더 걸리는 곳에 가서 수학 과외를 받아. 아빠가 매일 밤 날 데리러 오지만 솔직히 난 잘할 자신이 없어. 엄마는 비싼 선생 쓰면 내 실력이 붙을 거라고 믿어. 조금만 더 하라고 소리 지를 땐 미칠 것 같아. 근데 웃긴 건 뭔지 아니? 엄마의 울음소리 때문에 미칠 수도 없어. 이러다 내가 먼저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

.... 중략...

“엄마가 날 알아? 내가 뭘 좋아하고 원하는 게 뭔지 모르잖아. 뭐든지 엄마 맘대로 날 만들려고 해. 나는 그런 태도 때문에 돌아버릴 것 같아!”
“그럼 내가 널 만들었지 누가 만들어?”
엄마는 내게 무표정한 얼굴로 되물었다. 엄마는 지금도 오로지 공부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 스스로 무엇을 잘못했는지 모르고 있었다.

- 가짜 모범생 / 손현주 / 특별한서재 / 2021년 출판 -


내가 먼저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던 지우는 결국 자살을 했다. 선휘의 쌍둥이 형 역시 엄마의 꿈을 이뤄주지 못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만다. 이런 상황에서도 뭐가 잘못되고 있는 것인지 알아채지 못하는 선휘의 엄마는 선휘까지도 사지로 몰아친다. 독자는 자아를 지켜내고자 발버둥 치는 선휘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분노로 가슴이 옥죄어 온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이 학생이라면 어른들이 뭐라고 하든 휘말리지 말고 반드시 자신의 꿈을 지켜내고 스스로 선택하는 진짜 삶을 살아내라고 말해주고 싶다. 아니 혹시 당신이 학부모라면 냉정히 묻고 싶다. 우리 아이들이 미치고 나서도, 죽고 나서도 계속 ‘어쩔 수 없다’고 변명만 할 것인가?


들여다봐야 할 인물이 하나 더 있다. 이야기 속에서 한결같이 수동적인 선휘 아버지의 모습이 왠지 너무 익숙해서 놀랍지 않다는 사실이 놀랍다. 아들의 인권이 무참히 밟히는 모습 앞에서 침묵하고, 아들이 자살을 했는데도 피곤을 이유로 갈등을 외면하는 아버지. 열심히 일하느라 피곤한 아버지. 가정에서 설 자리를 잃은 우리네 아버지들. 무엇이 남성을 돈만 벌어다 주면 되는 방관자로 만들었을까? 혹시 남성들이 방관자의 역할을 스스로 선택한 것은 아닐까?


이유가 무엇이든 나 이외의 누구도 나의 선택을 대신할 수는 없는 것이다. 부모님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견뎌야 한다고 하는 학생, 이게 다 아이를 위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하는 부모, 학부모들이 원하는 대로 할 수밖에 없다며 문제를 외면하는 선생님. 모두의 선택 앞에 이 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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