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도서관 전화기는 공중전화기이다. 학교 방과 후 수업이 끝나면 곧장 학원으로 가야 하는 데 가기 싫은 아이들이 가끔 도서관에 전화기를 빌리러 온다.
"엄마~ 나 배가 아픈 것 같아요, 오늘 학원 빠지면 안 돼요?"
물론 꾀병이다. 수화기 너머 엄마는 속 터지는 마음에 하이톤으로 꾀병을 물리친다.
"엄마, 나 도서관에서 책 30분 다 읽었는데 친구네 집에 놀러 가면 안 돼요?"
아침에 엄마랑 약속한 스케줄과 다른 변수는 용납되지 않는다.
"아빠~ 엄마한테 저녁에 고기 먹자고 대신 말해주면 안 돼요?"
아빠는 자신보다 힘이 세 보이겠지만 사실 아빠도 메뉴 선택의 실세가 아니라는 걸 모르는 아이의 실책이다.
자신의 소망을 실현하지 못한 아이들은 수화기를 힘없이 내려놓는다. 세상 불행을 다 끌어안은 듯 울적한 얼굴의 이 녀석들을 위로할 방법이 딱히 없기에 나는 짬을 내어 그림책을 한권씩 읽어준다. '샘과 데이브가 땅을 팠어요'는 시무룩한 녀석들에게 즐겨 읽어주는 그림책 중에 하나다. 읽는 이의 입장에 따라 의견이 분분한 책이라 읽는 내내 더욱 재미있다.
샘과 데이브는 월요일에 삽을 들고 나와 다짜고짜 땅을 판다. 어마어마하게 멋진 것을 찾아낼 때까지 파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라는 데이브의 말에 샘은 다른 말 없이 땅속 깊숙한 곳까지 파 내려간다. 하지만 어마어마한 것을 찾지는 못한다. 둘은 잠시 쉬면서 문제가 무엇인지 의논한다. 계속 밑으로만 파는 게 문제인 것 같다며 땅을 파는 방향을 오른쪽으로 바꾼다. 사실 샘과 데이브를 따라나선 강아지는 아직 파내지 않은 부분 중 어마어마하게 큰 보석이 있는 위치를 시선으로 가리키고 있지만 샘과 데이브는 전혀 알아채지 못한다.
아래로 한 삽만 더 파면 커다란 보석이 나올 참인데 방향을 바꿔버리는 샘과 데이브를 독자는 강아지와 함께 바라만 봐야 한다. 그렇게 코앞의 보석을 간발의 차이로 놓치기를 여러 번. 준비해온 간식도 다 떨어지고 지쳐버린 둘은 잠시 쉬다가 깊은 잠에 빠져 버린다. 둘은 결국 빈손으로 돌아왔지만 동시에 이렇게 말한다. "정말 어마어마하게 멋졌어."
샘과 데이브는 어떤 사이일까? 오래된 친구일 수도, 며칠 전 만난 사이일 수도 있다. 책에서는 언급이 없다. 샘과 데이브는 빈손으로 돌아왔는데 무엇이 어마어마하게 멋졌다는 걸까? 땅을 파기 전에 함께 나서던 집과 땅을 파고 나서 돌아 들어 간 집은 같은 집일까? 그림이 미묘하게 다르다. 코앞에서 보석을 번번이 놓치는 둘을 보며 강아지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샘과 데이브를 지켜보는 독자는 둘에게 어떤 말을 해 주고 싶을까? 샘과 데이브가 혹시 강아지의 눈길이 시키는 대로 땅을 팠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요즘 나는 의견을 제시하는 데이브였나, 의견에 동조하는 샘이었나?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림책이다.
둘은 파도 파도 나오지 않는 어마어마한 것을 두고 누구도 원망하지 않았다. 지치고 힘든 와중에도 사이좋게 마지막 간식까지 나눠 먹는다. 강아지는 말을 못 하지만 독자의 마음을 시선에 가득 담아 눈동자를 보석에 고정한다. 그런데 정작 샘과 데이브는 멋진 시간을 보냈다고 말한다. 둘은 행복해 보였다. 작가는 샘과 데이브의 모습을 통해 우리에게 행복한 삶의 본질을 보여 준다. 그림책을 찬찬히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지금 내 곁에 있는 이와 지금 하고 싶은 일에 열중하는 것, 자신과 상대방을 깊이 신뢰하고 책임감 있게 현재에 참여하는 것, 삶의 모든 과정을 즐기는 것, 이러한 것들이 행복의 다른 이름이란 것을 느끼게 된다.
우리는 가끔 부모라는 이름으로 나도 모르게 샘과 데이브에게 보석은 오른쪽이 아니라 아래에 있다고 외치는 강아지가 되는 순간들이 있다. 내가 정답을 알고 있으니 시키는 대로 아래쪽 땅을 파면 보석을 가지게 될 거라고 강요하는 나를 알아채는 순간 되물어 보아야 한다. 내가 알고 있는 보석이 아이에게도 보석일까? 내가 예상하는 실패와 실수가 아이에게는 어마어마하게 멋진 경험이지 않을까? 멋진 경험을 한 '나'는 멋진 경험을 하기 전의 '나'와 분명 다른 '나' 일 테니까.
아이들은 샘과 데이브를 보며 답답한 부모의 마음을 이해하기도 하고, 마음껏 삽질하는 주인공의 모습에 대리만족을 느끼기도 한다. 양쪽의 입장을 다 경험하면서 아이의 화가 슬며시 누그러진다. 불협화음이 날땐 조심스런 조율이 필요하다. 중요한것은 학원이, 독서가, 저녁 메뉴가 아니라 서로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는 관계다. 내 입장만 강요하지 않는다면 최소한 관계를 망치지는 않을 수 있다. 관계가 좋다면 누구와도 조율은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