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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림토끼 Apr 13. 2024

영어는 나의 취미

영어 잘하는 할머니가 되고싶어

회사에서 나를 모르는 사람들이 나에 대한 정보를 들을 때 ‘아 그 영어 잘하는 직원?’ 이라고 한다던데....

나는 늘 마음속으로 ‘그 정도는 아닌데...’ 로 방어한다. 그치만 그들은 듣지 않지. 이것은 자의식 과잉이다. 모르면 다 모르지. 누가 누굴 안다고.


누가 나에게 ‘어떻게 이렇게 영어를 잘해요?’ 라고 물으면 ‘아.. 잘하지는 않고 영어공부하는 걸 좋아합니다.’ 라고 답한다. 나의 영어실력은 과대포장 될 수 있지만 내가 영어를 좋아하는 건 사실이니까.


거의 십 년이 넘는 기간 동안 나는 늘 영어를 붙잡고 있었고 별다른 일이 없다면 앞으로도 그럴 계획이다.

영어는 오랫동안 나의 취미였다. 처음엔 잘하고 싶은 마음으로 시작했고 지금은 적어도 잊어버리지 않기 위한 발버둥으로, 때때로 영어와 거리두기를 했지만 늘 영어로 돌아왔다. 그렇다고 어렸을 때부터 좋아했다거나 잘했던 건 아니고 대학생일 때 그것도 졸업을 한학기 앞두고 떠났던 런던에서 부터 시작이었다.


런던에서 돌아왔을 때 두 살이었던 나의 첫째 조카는 지금 고등학생이고 그녀의 동생도 중학생이다.

두 살이었던 첫째 조카가 17살이 될 때까지 나도 사회인으로 성장했고 계속 영어공부를 했다. 책과 연필을 잡고 공부한다기보다 늘 학원에 다니고 스터디를 알아보고 미드, 영드를 보고 팝만 들었다.


<영어로 말할 때 달라지는 나>

 - 영어로 말할때만 나는 조금 외향인이 된다. 말이나 행동이 한국어로 말할 때보다 조금 과하다. 상대가 나의 부족한 언어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표정과 제스처가 다양해진다.

  - 말하기는 혼자할 수 없으니까 같은 목적을 가진 사람들을 계속 찾게되고 그래서 낯선 사람을 만난다.

   평소라면 낯선 사람과 대화를 피하는 편인데 영어로 말할 때만 내가 이런사람이었나 스스로 놀랄 정도로

   말을 잘하고 있다.   

 - 거의 주말에 스터디를 가는데 이왕 밖으로 나온 김에 주말을 즐겁게 보내야 한다는 의무감이 있다.

   그래서 나는 의도적으로 나의  기분을 최상으로 끌어올리고 스터디룸에 들어간다.

   즐거운 척을 하면 신기하게도 진짜 즐겁다.

 - 어휘나 말하기 능력이 모국어보다는 부족하기 때문에 직관적이고 직접적으로 말한다. 말하기가 단순해진다. 때때로 무례할 수 있기 때문에 조심해야한다.


<영어공부를 해서 얻은 장점>

 - 해외여행이 무섭지 않다. 여행을 망설이는 이유가 적어도 언어가 안통하기 때문은 아니다.

 - 내가 말이 많은 사람이고 말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걸 발견했다.

 - 어쩌다 조금 부지런한 사람이 되었다. 어째든 영어공부하는 시간을 만들고 공부를 하니까.

 - 영어공부 조금 할 뿐인데 마치 엄청난 자기개발러처럼 보인다.

 - 신입직원이었던 주제에 미국 조지아에서 한달살이도 했었다. 이것은 10년 전 이야기.


<영어공부를 하면 생기는 단점>

 - 언어를 잊어버릴까봐 불안하다.

 - 끊임없이 시간과 돈을 투자해야한다.

 - 실력이 늘지 않아서 늘 허덕인다.

 - 스터디 가서 아무말이나 지껄이고 오는게 부끄럽다.

 - 공부 방법에 대한 고민과 늘 공부를 해야 한다는 압박이 있다.

 - 한글을 쓸 때 번역체를 써놓고 뭔가 새로운 문체를 쓴거 같은 착각을 한다.


<영어공부 방법>

회화학원, 화상영어, 전화영어, 개인과외, 스터디 등 돈을 쓰는 방법, 돈을 안쓰는 방법 할 것없이 할 수 있는 건 다해본 것 같은데 지금은 매주 스터디에 가고 매일 팟캐스트를 틀어놓는다.


나에게 한없이 엄격했던 시절엔 철저하게 영어 콘텐츠만 소비했다. 업무시간이 끝나면 바로 학원으로 가서 영어만 쓰고 집에서는 영어 드라마를 보고 아침에 눈 뜨자 마자 bbc 뉴스를 켰다.  


코로나로 모두가 일상을 멈춰야 했을 때는 영어 공부 방법에 대한 고민이 더 많았는데 돈을 쓰니까 해결이 되었다. 영어권의 명문대 학생과 일대일로 화상 대화를 40분간 하는 프로그램이었다. 1년 정도 동안 70번 넘는 수업을 했다. 매번 다른 튜터와 이야기 했는데 몇몇은 재밋었고 몇몇은 자꾸 시계를 봤다. 또 몇몇은 진지하게 나의 영어 공부를 도와주고 싶어했다.


수업 후에는 튜터들의 피드백을 확인하고 혼자서 복습을 할 수도 있었고 혼자 공부 할 때 활용할 수 있는 웹사이트나 미드, 팟캐스트 등을 알려줬었다. 회당 계산하면 3~4만원이었는데 수업마다 복습을 하고 잘못된 습관을 고치는 과정을 반복했다면 확실히 그 돈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냥 그들과 이야기하는게 재밌었고 실력이 늘었는지는…. 알 수 없다. 복습을 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복습만 하면 실력이 늘 수 있다. 실력이 늘 수 있는 가능성이 언제나 있는 것이다. 언젠가 복습을 꼭 하려고 회원을 유지 중인 이유.


지금 다니는 영어 스터디는 화상영어에 비해 가성비와 구성이 좋다. 외국인과 일대일로 1시간, 한국인들과 그룹으로 1시간 총 두시간을 영어로만 대화한다. 아무도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다는 게 단점이지만 내 마음대로 하고 싶은 말을 많이 할 수있다. 영어갈증 해소. 내 뜻이 잘 전달되고 있는건가 라는 의구심은 늘 있는데 일단은 대화를 주고 받긴 하니까...끝나고 나면 정말 기운이 쏙 빠져서 집에 가면 간식을 와구 와구 먹고 낮잠을 떼려야 하는 몸상태가 되어버린다. 공부도 체력이다.


여기 장소가 술병이 많고 젊은 사람들이 많아서 처음에는 약간 배제당하는 느낌도 있었는데 6개월 정도 다녀보니 나보다 나이 많은 분들도 있고 술은 먹지 않았다. 첫 등록기간이 끝나갈 때 또 뭘 해야하나 잠깐 고민 했다가 재등록을 택했다. 한동안은 방황하지 않아도 되겠다.


영어 실력이 느는 건 진짜 잘 모르겠고 안하는 거보다 낫겠지라는 생각으로 이거라도 안하면 주말에 널브러져 있을 텐데 그래도 주섬주섬 일어나서 심지어 환한 대낮에 외출을 하는 기분이 새롭다. 회사 사람들이 아닌 사람들과 업무얘기가 아닌 이야기를 한다. 어쩌다 즐거워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영어는 어쩌다가 나를 설명하는 단어가 되었다. 내가 꾸준히 하고있는 게 영어공부라서 나의 정체성 중에 하나가 되었다. 그래서 늘 영어로 돌아오는 건가. 다른 언어도 아닌 영어.


영어공부에서 가장 중요한 건 뭐든 비슷하겠지만 꾸준함이고 지치지 않고 하기만 하면 어느정도 실력까지는 올라올 수 있는 것 같다. 시간과 돈에 여유가 있다면 실력을 키우는데 드는 시간이 줄어들 수도 있겠다. 그리고 지치지 않으려면 본인이 좋아해야한다는게 핵심이다.


때때로 영어공부를 쉬었을 때 말하는 걸 잊어버렸을까봐 불안했는데 스터디가서 말을 해보니까 생각보다 많이 잊지는 않아서 신기했다. 이런 패턴대로 라면 내가 늙었을 때 동네에서 제일 영어 잘하는 할머니가 되고 싶다는 꿈은 이루어 질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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