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색무취의 사람
‘옥탑방고양이’라는 대학로에 유명한 연극이 있다. 서울에 올라와서 지방에서 누리지 못했던 문화혜택들을 즐기느라 부지런히 연극과 공연을 보러다니던 시절,
나는 그 연극을 각각 다른 파트너와 함께 두번 봤었다. (30대 초반의 나는 꽤 즐거웠다)
작가를 꿈꾸는 여주는 이러쿵저러쿵해서 잘생긴 남주와 동거하게 되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내가 이입 했던 부분이 여주가 작가를 꿈꾸는 부분인지 남주와 동거하는 부분인지 불분명하다. 결국 작가로 성공하는지 어땠는지도 지금 내 작가의 꿈만큼이나 가물가물하다.
요즘의 나는 늘 게으르고 나의 게으름에 대해 반성과 자책을 반복하지만 다시 침대에 누워버린다. 이 모든 게 다 코로나 탓이라고, 다 같이 망했으니 괜찮다고 굳이 불필요한 변명과 위로를 하지만 그냥 웃어 버린다.
직장생활 십년 만에 나는 호불호의 경계가 점차 모호해졌고 어디서나 있는 듯 없는 듯 무색무취의 사람이 되어버렸다. 바야흐로 나는 적당한 사람이 되었다. 적당히 도덕적이고 적당히 성실하고 적당히 밝고, 적당히 우울하고 적당히 착하고 적당히 못됐고 적당히 외롭고, 적당히 사랑한다. 내 감정을 잃어버린 건지 표현하는 방법을 잊어버린 건지도 알 수 없다.
나는 월급이 많지도 적지도 않고, 일이 힘들지도 안 힘들지도 않고 바쁘지도 안 바쁘지도 않는 일상 속에서 근근이 버티고 있는데 그 생활이 딱히 만족스럽지도 불만족스럽지도 않다.
직장에서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를 잃었고 체력도 잃었으며 성격은 조금 예민해졌다. 출퇴근 외에 약속이란 약속은 다 귀찮아졌고 그저 빨리 조용한 나의 공간으로 도피하고 싶어진다. 어쩌다 별로 친하지 않은 사람과 출퇴근길이라도 겹치게 되면 할 말이 딱히 없는 침묵의 시간이 부담될 걸 미리 걱정해서 일부러 다른 방향으로 돌아간다.
친구를 만날 때도 여러 사람과 부대끼기 보다는 한 두명 정도만 간소하게 만난다. 좋아하는 사람과 밥 한 끼 하는 일보다 불편한 사람들과 밥을 먹어야 하는 자리가 많아졌고 소화가 안 되니 소식하게 되었다. 사회생활을 오래 했는데 사회성은 오히려 떨어졌다. 혼자 있는 시간만이라도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보내고 싶지만 정작 현실은 내일 아침에 일찍 일어날 걱정에 오늘 밤에 보고 싶은 영화 한 편을 포기하는 ‘성실한 노예’ 그 자체이다.
근래 병원에서 크지도 작지도 않은 수술을 하게 되었다. 입원을 했는데도 온통 ‘출근해야하는데.’ 라는 생각만 들었다. 나는 늘 ‘언제쯤 출퇴근 고리를 벗어날 수 있을까‘ 기회만 엿보고 있었는데 드디어 잠시나마 고리 밖으로 나갈 기회를 유용하게 쓰지도 못하고 일주일 만에 다시 쳇바퀴로 회귀했다. 이 지경이라면 나는 도대체 일을 하기 위해 건강해야 하는 건지 건강해서 일을 하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일주일만에 업무로 돌아왔을 때 느꼈던 안도감을 애써 부정했다.
일상의 아이러니는 또 있다. 평일에 피곤해서 미뤘던 일들을 주말에 할 거라고 단단히 벼르고 있었는데 결국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서 휴대폰만 보다가 시간을 다 써버렸다. 책이라도 읽으려고 펼치면 곧 잠이 들어버리고 뭘 해도 10분 이상 집중할 수가 없다.
그 뿐만 아니다. 쉬는 날에도 출근시간이면 자동으로 일어나고 외출을 했다가도 집에 가야지 생각이 들면 오후 6시다. 휴일에도 오후 6시를 기다리고 그 시간이 되면 기분도 그냥 좋다. 좀 출출해서 시계를 보면 어김없이 점심시간이다. 나의 뇌는 종이 울리면 침을 흘리는 파블로프의 개처럼 근무시간에 따라 움직인다.
직장생활에 최적화 되어버린 나의 일상과 뇌를 직장생활이 아닌 일로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글을 쓰기로 했다.
하지만 요즘 내가 하는 말이라고는 “피곤하다, 힘들다, 배고프다, 퇴근하고 싶다” 등과 같이 너무 일차원적이고 직관적인 말들뿐인데 굳이 그것들을 글로 옮길 필요가 있을까. 더욱이 입 밖으로 나오는 말만큼 단순해져 버린 나의 생각들도 글로 옮겨질 필요가 있을까.
잃어버린 나의 말들과 표현들을 찾듯이 내 감정을 찾고호불호를 분별하고 적당하지 않은 상태의 나를 발견하기 위해 글을 쓰려고 한다. 얼마안가 또 침대로 가버리려고 하는 나의 마음을 겨우 다독이고 붙잡아 간신히 마침표를 한번 찍는다. 수십개의 마침표를 적립하고 떳떳하게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에요’ 라고 말할 수 있는 날까지 천천히 조금씩 끄적거려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