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사카에 가면

크림브륄레 아이스크림

by 그림토끼

갑자기 휴가를 내는 이유는 의외로 단순하다. 월화수목금이 반복되는 쳇바퀴를 잠깐이라도 끊고 싶다. 낯선 베드에 누워서 쉬고 싶다. 낯선 사람만 있는 곳에 가고 싶다. 말이 안통하는 곳에서 많은 말을 하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는 곳에 있고 싶다. 모두가 모두에게 무관심한 그런 곳에 가야겠다. 이런 사소한 이유들로 종종 일본행 비행기를 예약한다. 일본으로 가는 이유도 단순하다. 가깝다. 친구가 있다. 맛있는 간식이 많다. 너무 익숙한 곳만 찾는 건 아닌지 잠깐 고민했지만 역시 나는 편안하고 익숙한 곳을 택했다. 늘 그렇듯이 이번에도 출발 전날 까지 짐도 싸지 않고 여유를 부리며 '이래도 되려나'라는 마음만 있었는데 가볍게 떠나는 마음이라도 다음 날 비행기를 놓치면 안된다는 생각으로 온마음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혼자 여행은 미션 도장깨기의 연속

- 새벽에 일어나기. 이번 비행기는 아침 아홉시 출발이었다. 알람을 세시반에 맞춰놓고 전날밤에 씻고 자서 아침에는 세수만 하고 야무지게 베이글 토스트로 아침도 챙겨서 버스 정류장으로 갔다. 첫번째 미션 클리어

- 오전 4시 46분 공항 리무진 타기. 보통 공항 갈 때 지하철을 타서 공항버스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인터넷으로 나오는 버스 시간을 신뢰하지 못하고 네시 반에 나갔다. 아직 어두운 새벽인데 거리에 아무도 없는 것도 무서웠지만 몇몇의 사람들이 있는것도 무서웠다. 모를 때는 보이지도 않던 공항버스 번호와 도착시간이 버스표지판에 나와있었다. 다행히 버스는 인터넷에 나왔던 시간표대로 맞게 도착했고 나는 무사히 두번째 미션 클리어.

- 공항에서 환전 찾기, 체크인, 셀프드롭. 출발 시간보다 세시간이나 일찍왔는데도 비행기를 놓친다면 그건 나의 잘못이 아닐테지. 요즘엔 거의 혼자 다 할 수 있다. 기계로 체크인하고 좌석도 지정하고 짐가방도 셀프드롭으로 어렵지 않게 성공. 공항 검색대가 그렇게 오래걸린다고 하던데 사람이 많긴 많았지만 비행기를 놓칠만큼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드디어 탑승 게이트. 두시간 정도 여유. 챙겨온 아침도 먹고 듀오링고도 하고 책도 읽고 졸기도 하면서 야무지게 시간을 보냈다. 비행기를 놓치지 않고 잘 탔으니 세번째 미션도 성공.

이제 일본에 도착. 하지만 나의 미션은 끝나지 않았지.

- 수화물 찾기. 이번 오사카행에서 나의 짐은 맨투맨 티셔츠 한개가 전부였다. 그렇지만 나의 수화물은 9kg. 친구가 한국 과자와 김자반을 부탁한 게 있어서 친구들 선물과 함께 꽉찬 짐가방을 가지고 왔다.

- 호텔에 잘 도착하기. 간사이 공항에서 시내로 가는 지하철을 잘 타야한다. 열차가 여러가지인데 내가 가는 역이름을 확인하고 최대한 평범해 보이는 열차에 탔다. 서울처럼 색깔로 구분이 안되서 그냥 감으로. 나처럼 짐이 큰 여행객이 많았고 그중에서도 한국인도 많았다. 트래블월렛 카드로 교통카드 쓸 수 있는 게 진짜 신기하다. 금방 도착했지만 늘 여기 살았던 것처럼 자연스러운 척을 할 수 있다.

시내 한중간에 위치한 호텔이었다. 명동같은 곳에 호텔을 얻었네. 딱봐도 술집이 많아서 조금 위험할까 싶지만 늦게 다니지 않으면 괜찮다. 교통도 편리하고 우메다도 가깝고 쇼핑을 많이 할 수 있다. 편의점도 많고 심지어 마지막에 바꾼 호텔인데 우메다 호텔보다 칠만원이나 싼데. 완전 럭키비키. (저번에 왔을 때 조용한 곳에 숙소를 얻었는데 더운날 쇼핑이 멀어서 많이 걸어서 좀 그랬더랬다. )

- 친구와 잘 만나서 놀기. 나의 사랑스러운 친구 유카리가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반가운 얼굴을 보니 일본에 왔다는 실감이 난다. 체크인 시간보다 빨리와서 짐만 맡겨놓고 나갔다. 내가 우동 먹고 싶다고 해서 근처에서 우동 먹고 카페를 갔는데 세상에 물가가 엄청 비싸졌다. 우동 한그릇에 만오천엔? 어떻게 된 일이지? 그리고 카페에 갔는데 녹차 전문점이었다. 녹차플로트와 디저트 셋트를 시켰는데 가격 확인은 못했지만 메뉴판에 있는 모든게 비싸서 너무 깜짝 놀랐다. 친구들은 내가 서울에서 왔다고 돈을 못내게 했다. 나도 돈 벌어서 이정도 살 수 있는데 …. 미안하고 고맙고 즐겁고^^ 카페에서 시간이 다 돼서 나가라고 했다. 비싼 카페인데 ……호텔에 와서 선물을 주고 받고 카오리가 부탁한 물건 배달까지 완료했다. 내 가방이 텅 비어버린 만큼 카오리가 들고갈 짐이 많아져서 걱정이었다. 여기저기 잘 나눠서 가득 들고 갔다. 큰가방을 들고 온김에 이번엔 뭔가 많이 사서 가져가야겠다.


모든 미션을 클리어 하고 드디어 혼자 낯선 침대에 누워있는 시간. 이럴려고 여기 왔지. 엄청난 양의 미션이었는데 돌아보니 별거 아닌것 처럼 느껴진다. 방에서 유튜브를 볼 수있다. 도톤보리까지 걸으면서 구경도 하고 타코야키도 사먹고 쇼핑리스트 시세를 알아봤다. 아마 있는 동안 매일 올 것 같은 호텔 앞 편의점에서 달달한 군것질과 음료를 샀다. 내가 좋아하는 것만으로 즐기는 소박한 파티. 사람이 진짜 많았지만 생각보다 기가 빨리지는 않았다. 여행이라 그런가. 크림브륄레 아이스크림 진짜 맛있다. 새삼스럽게 아주 행복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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