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감기는 성장통인가요?
요즘 나의 뇌를 자극하는 새로운 입력값이라면
‘이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이하 이사통) ’뿐이다. 요즘이라고 해봤자 고작 어제 오늘 몇편 본 게 다지만 지금 나는 마감에 쫓기는 글감 시냥꾼! 지푸라기라도 잡는 마음이라 미세 자극도 귀하고 소중하다.
뭔가 흠뻑 빠져서 본게 도대체 언제였더라….
자유분방한 형에게 좋아하는 사람을 뺏긴 통역사 호진, 어린시절 트라우마를 안고 사는 무희, 그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말하고 서로를 배려한다. 호진은 모든 나라의 언어를 말하지만 정작 자기의 언어로 소통하기가 가장 어려운 통역사, 무희는 고통받았던 어린시절을 건너 지금은 원했던 모습의 성인이 되었지만 여전히 어린 마음의 상처를 극복 중인 인기있는 배우이다. 그들은 매번 어긋나고 오해하는 와중에 서로의 상처까지도 들켜버렸는데 각자의 언어를 이해하려고 노력한 끝에 결국 사랑에 빠지는 해피엔딩이라 따뜻하고 답답하고 달콤해서 좋았다.
탕비실의 커피와 간식을 잔뜩 쟁여가는 사람, 끊임없이 혼지말을 하는 사람,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텀블러만 20개를 쓰는 사람, 공용 냉장고에 케이크를 잔뜩 보관하는 사람, 공용 얼음틀에 콜라, 커피를 얼리는 사람 등 유명한 탕비실 빌런들만 모아 일주일 내 빌런이 아닌 한명을 찾아내는 리얼리티 쇼가 있다. 탕비실 빌런이라는 익숙하지만 독특한 설정이 너무 현실적이어서 흥미로웠던 올해 첫 완독 소설.(아주 짧아서 한시간 내 완독가능)
의외의 사람이 술래였는데 술래가 아닌 진짜 빌런들은 배려한다고 했던 행동들인데 의도와는 상관없이 다른 사람에게 오해를 사고 다른사람을 불편하게 해버린 것이다. 하지만 끝까지 방심하면 안되는 것이 나중에는 술래와 술래가 아닌 사람이 모호해져서 혹시 나도 그런 적이 있나하고 생각하게 된다.
작가는 이 글로 다른 사람을 싫어하는 마음이 어느정도 해소되었다고 했다. 나도 브런치에 싫어하는 사람에 대해 잔뜩 쓴적이 있는데 다른 어떤 사람의 일기장에는 내 얘기가 잔뜩 써있을 수도 있겠지. 그래서 한편으로는 소름끼쳤던 주인공의 행동과 한명 정도는 나를 술래로 뽑아주길 바라는 마음이 남의 일 같지가 않았다.
항상 누군가의 시선에 갇혀 행동하는데 그런 현실이 여러대의 카메라가 따라다니는 리얼리티쇼와 다르지 않다. 심지어 카메라가 없다고 해도 내 시선으로도 나를 가두는데 남의 시선에서 아예 자유로운 때가 있긴 할까. 나의 일상이 트루먼쇼처럼 진짜 관찰 예능이라면 확실히 재미는 없어서 채널은 돌아가겠지만 그 와중에 또 어떤 사람들은 나를 보고 판단할텐데 나는 과연 그들이 불편하지 않게 말이나 할수 있을까, 매력 발산은 커녕 아마 모두에게 호감을 사려다 오히려 빌런이 되어버리는 비호감 캐릭터가 될 게 뻔하다.
이제보니 이사통 호진의 철벽도 도라미의 저주도 탕비실의 빌런들도 그리고 타인의 배려를 무시하고 되려 큰소리치는 많은 사람들도 사실은 모두가 본인을 사랑해달라는 바등거림이었나보다.
대한에 대한 답장을 쓸 시간
찬바람이 옷속까지 파고드는 2월입니다.
잘지내고 계신가요?
입춘 오기 전 며칠이 신이 세상에 없는 시기라는 이야기가 흥미로웠습니다. 신의 존재를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바빴다는 것은 변명이고 신을 찾을 필요가 없는 보통의 나날들이었겠지요. 특별할 것 없는 하루하루가 얼마나 소중한지 인생의 반 정도를 보내고 나서야 깨달았습니다.
그렇다고 앞으로 나날들에 감사하기만 하며 살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소한 다음 대한, 큰 추위가 얼음을 녹이며 봄에게 걸어가듯이 겨울의 감기를 조금 더 앓다가 천천히 나아가겠다고 말하는 당신에게, 숨길 수 없는 기침이지만 신이 없는 시기라 괜찮다고 말하는 당신에게 조금 더 아파도 된다고 천천히 나으라고 말하기 보다 아프지 말라고 빨리 나으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빨리 나아서 앞으로 나아가자는 재촉이 아닙니다. 당신이 아프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봄으로 나아가는 건 나중의 일이에요. 우리가 봄으로 가는 건 자연스럽고 언제든 나아갈 수 있으니 신이 있든 없든 간에 흐르는 그대로 두자고 말하고 싶습니다.
어제의 나보다 항상 성장해야 한다는 강박을 가졌던 때가 있었습니다. 지금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성장만 하고 싶었던 어리석고 작은 사람. 타인에게서 그런 나를 발견할 때 항상 누구보다도 먼저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저의 서울 생활은 배려하는 마음이 갈 길을 잃고 나의 말과 행동이 전혀 다르게 전달되고 나는 그 사이에서 늘 어쩔 줄 모르고 바등거렸던 경험이 반복되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래서 더 작아지고 위축되는 나를 대범하고 무심한 사람으로 포장하며 버텼습니다.
저는 점점 포장을 벗는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가면이 너무 익숙해서 제 본색이 점점 옅어지는 것 같은 불안이 있거든요. 가면이 없이도 좋은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좋은사람이 더 덕지덕지 묻도록 항상 좋은 사람 옆에만 있겠습니다. 가면이 없다고 결핍을 함부로 들키는 실수는 하지 않겠어요. 사람들은 의외로 자신의 결핍을 쉽게 노출해버리는데 저도 이미 들켜버린 게 있을테죠. 그때는 주위의 좋은 사람들을 믿고 의지하겠습니다.
좋은 사람들 덕분에 지금은 혼자라는 감각에 위축되던 시절은 생각도 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혼자라서 더 채워지는 생경한 감각이 있습니다.
떠난다고 사랑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작가님께 저도 정착한다고 사랑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씀드리면 너무 회의적인가요?
항상 그리운 곳은 역설적이게도 낯선 곳입니다.
그래서 종종 낯선 곳으로 여행을 떠납니다. 새로운 곳의 공기를 호흡하면 왠지 모르게 조금씩 자유로워지는 것 같아서 그렇게 야금야금 가면 없는 생존을 연장하고 있습니다.
다음에는 여행이야기를 하고 싶네요. 그럼 다음 편지까지 안녕히계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