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영의 어떤비밀이라는 책을 좋아한다. 구의 증명을 읽고 토할거처럼 메스꺼웠는데 그만큼 지독한 사랑이어서 한편으로 질투했던 알수 없는 나의 마음을 들여다보게 해준 작가이다. 이 사람은 도대체 어떤 삶을 살고 어떤 사랑을 하는지 궁금했다. 산문집을 읽으면 그녀의 일상에 한뼘 가까워질 수 있지 않을까.
역시 그녀는 글을 쓰지 않으면 안되는 사람.
작가가 쓴 24절기에 따른 24통의 편지에 일일이 답장을 써보자는 게 올해 글쓰기 계획이었다. 새해 계획이 늘 그렇듯이 계획을 세웠다는 걸 그새 잊어버리고
첫 달부터 마감을 놓쳐버렸다. 책읽기 계획도 이미 어그러진 이후였다. 업무가 바빴다는 건 글쓰기가 밀릴때마다 꺼내는 나의 변명이고 한달 동안 글도 못쓰고 책도 못 읽은 건 당연히 내가 게을렀던 탓이다.
그녀의 편지에 답장을 하려면 적어도 한달에 두편을 써야 하는데 1월의 마지막 주말이 되어서야 겨우 정신을 차리자마자 다시 2월이 되어버려서 어리둥절할 뿐이다. 답장을 쓰지못한 마음이 조급해져서 무작정 메모장을 열긴 열었는데 간간히 메모해 둔 문장을 봐도 당최 내가 뭘 쓰려고 했던건지 까마득하기만 하고 지금 나는 빈화면에 무성의한 단어들만 늘어놓고 있다.
마침내 생각난 ‘어떤비밀 답장 프로젝트’ 마감은 지키지 못했지만 그래도 시작 해보려고 한다.
새해가 돌아왔는데 잘 지내시나요?
나의 추위마저 빌리겠다는 당신의 다정한 마음을 읽고 나의 추위만이 가장 크고 무거운 짐이었던 지난해를 반성합니다. 감사한 마음을 그새 잊어버리고 추운날을 불평하고 까맣게 녹아버린 눈에 눈쌀을 찌푸리고 버스가 늦게 와서 싫고 일이 많고 과자는 왜 살이 찌고 어떤사람은 왜 태도가 저 모양이며 나는 왜 피곤하지…. 웅크리고 앉아 끝도 없이 불평만 해대는 사람이 아직도 저기 마음 한구석에 남아있습니다.
해가 바뀌었다고 벌떡 일어나서 웃는 얼굴로 돌아다니기엔 아직도 날씨가 추워서 우물쭈물하는 요즘입니다.저쪽 구석에 남아있는 25년의 나는 잘 재워두고 새해가 처음인 나의 일부들로만 일단 출발해보겠습니다.
추운 내가 춥지않다고 말하는 당신에게 추위를 빌려주기엔 너무 염치가 없습니다. 다만 좋은사람을 닮아 좋은사람과 비슷한 온도를 가지고 싶은 마음과 보통의 오늘을 감사하는 마음을 나누어 주어서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부디 저도 어느 추운 날 추운 사람에게 당신의 추위를 선뜻 빌리겠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의 온기를 가지고 그 온기로 사랑을 전하는 다정하고 따뜻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봅니다.
얼굴도 모르는 작가에게 내가 나로 살아온 시간이 감사하다는 인사를 듣는다. 나로 살아온 시간은 감사인사를 받기에 너무 하찮고 부끄럽기만 한데 그녀의 따뜻한 말 한마디 덕분에 나의 창피한 과거가 아름다워진다.
마냥 긍정적이기만 한 미래가 있을 것 같은 기분.
비록 특별할 것 없는 새해지만 언제나 오늘의 나는
처음이고 26년의 나도 처음이라고 생각하기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