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이미 가난을 지나왔거나 가난해본적이 없는 사람 아닐까.
가난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다. 가난하다는 것은 많은 식구가 한방에 비비고 살고 바퀴벌레가 득실거리고 옆집과 같이 쓰는 화장실이 심지어 외부에 있다는 것으로 이해하면 쉽다. 하지만 그게 전부가 일까.
어린시절을 가난하게 보냈다는 것은 내가 원하는 걸 가질 수 없다는 것을 일찍 배운다는 것이다.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우기는커녕 말도 꺼낼 수 없다는 것이다. 이미 짧아진 바지를 입고 학교에 가야하는 것이고 친구들과 뭘 먹을 때 난 빠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친구가 보고 자란 세계라고는 방학내도록 집에서 본 TV 만화가 전부다. 20대에는 넉넉한 가정에서 자란 친구들과 비슷한 생각을 가진 척 하기에 바빴는데 비슷한 척하는 것도 쉽지는 않아서 시간이 꽤 걸렸고 누구는 그냥 가진 그 경험과 생각을 얻기위해 나는 엄청난 에너지와 치열한 의지마저 필요했다.
부족했던 돈과 경험도 지금와서는 누가 더 빠르게 가지느냐 정도의 차이일 뿐 속도가 많이 중요하지 않은 지금 생각으로는 오히려 괜찮은 것 같다. 하지만 가난이 어린아이에게 미치는 가장 치명적인 단점은 주위의 부족한 관심으로 아이가 물리적 심리적으로 안전하고 건강한 관계망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이다. 좁은 세계에서 부족한 관심으로 불안하게 자란 아이는 성장 중에 또는 성장을 했더라도 불안과 상처를 감추고 있다.
가끔 유연하고 말랑해서 해맑은 사람을 보면 불안하지 않은 모습이 부럽고 유약하기까지 한 사람들을 보면 솔직히 사치라는 생각마저 든다. 가난한 아이는 스스로를 어른이라고 너무 일찍 믿어버려서 어린이가 느끼고 생각하는 많은 것들을 유치하고 시시하다고 치부해버렸다. 그런 사고방식은 아직도 나를 지배하고 있는데 소중할수 있는 감정까지도 유치할 뿐이라며 모른척해버리기 일쑤고 어떤 것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어렵다.
한해를 정리하는 따뜻하고 행복하기만 하면 좋을 연말에 나는 더는 가난하지 않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며 배우고 싶은 것도 배우고 냉장고엔 먹을 게 넘치고 침대가 따뜻하고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조그만 것이라도 베풀 수 있는 지금이 감사하고 행복한데 왜 문득 부족했던 과거를 떠올린 걸까.
이제와서 나의 부족한 경험과 생각을 어린시절 가난했던 탓으로 돌리고 싶지만 그것은 범죄자들이 범죄를 저지를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과거에서 찾는 식의 말하기라 지양하겠다. 그렇지만 요즘은 가난마저 희소해서 콘텐츠로 학습하는 시대에 경험자로써 언젠가 한번은 글로 써보고 싶었다.
박완서 선생님은 가난마저 훔치는 부자들의 탐욕에 대해 쓰신 적이 있다. 나는 그 누구의 가난도 아닌 나의
가난을 훔쳐다 꺼냈으니 탐욕도 아니고 과시도 아니다. 사실 탐욕을 부릴만큼 부자도 아닌 주제에 입에 풀칠 정도 한다고 유세 부리는 형상인데 진짜 가난할 때는 지긋지긋하고 부끄럽고 창피해서 말도 못했던 가난을 말할 수 있다는 게 실제로는 고작 한뼘 정도의 성장인데 털어놓고 보니 떵떵거리는 권력자라도 된 것 같은 기분이다. 아직 여기저기 묻어있은 가난한 버릇과 마음은 꼭꼭 숨겨둔 채 요만큼의 살풀이를 했다고 후련할 것까지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