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일요일

한강이라는 사람은 도대체.

by 그림토끼

일요일이라 아쉽기만 한 날. 끼니를 잘 챙겨먹고 밀린 드라마나 보면 좋은 그런 평범한 날이었다. 잠깐 나가서 조금 걷고 어제 봐뒀던 책을 빌리고 오늘 단종된다는 커피나 한잔 사먹으면 ‘좋은 하루였다’하고 편히 잠들면 되는 그런 날이었다.


어제 운좋게도 올해 출간 된 한강의 산문집을 가까운 도서관에서 발견했다. 신간에 베스트셀러라 도서관에 없거나 있다하더라도 당연히 몇달을 기다릴거라 생각했는데 ‘대출가능’ 사인을 보고 믿기지 않아서 두번 세번 확인했다. 하루만에 누가 채어가지 않았겠지. 약간은 불안한 마음으로 도서관에 갔다. 다행히 나의 책은 거기 있었고 평소에 읽고 싶었던 다른 책도 같이 빌려서 바로 카페로 갔다. 뜻밖의 1+1 독서.


오늘 마실 음료는 달아서 안마셔도 그만이었는데 오늘마지막으로 판다고 하고 또 레시피를 변형해서 먹는게 유행이라 꼭 먹어야 할 것 같았다. 일요일 오후에 카페에서 한강의 책을 읽으며 달달한 커피를 마시는 내모습이 꽤 만족스러워서 기분이 좋았다.


한강의 신간이 나온다고 했을 때 읽기까지 약간 마음의 준비가 필요했다. 한강 언어의 무게를 알아서 이번에 그녀가 해주는 마음은 어떤 이야기 일지 과연 그 마음을 내가 감당할 수 있을지 읽기도 전에 긴장을 해버린 탓이다. 책을 만난 첫인상은 ‘내가 미리 너무 겁먹었네. ’ 였다. 하지만 책이 얇다고 그녀가 쓰는 언어의 무게까지 가볍지는 않았다. 그녀의 언어는 짧거나 얇다고 빠르게 휘발되어서 사라질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녀가 아홉살에 쓴 사랑에 대한 단상에서 시작하는 이야기는 이미 너무 명쾌해서 성인인 내가 오히려 조금 멋쩍어 졌고 글쓰기에서는 약간의 위화감마저 들었다. 노벨문학상 강연문에서 일부 발췌했다는 그녀의 글에서 보이는 그녀가 삶이나 세상을 대하는 태도에 나는 이미 최면이라도 걸린 것처럼 매료되었고 정말 단 한글자도 놓치고 싶지 않아서 천천히 두번 세번 읽었다. 두번 세번 읽어도 돌아서면 잊을까봐 조바심이 났다. 읽을 부분이 점점 줄어드는 것이 아쉽고 아까워서 페이지를 넘기기가 싫을 정도였다.


인간의 압도적인 폭력, 생명을 파괴하는 일은 시공간을 건너 현재도 끊임없이 되돌아 오지만 여전히 인간의 친절, 사랑이 공존하는 기이한 곳에서 결국 우리를 또는 나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은 결국 사랑이라고.

그녀는 체온이 있는 문학만이 우리를 연결하고 시공간을 건너 이야기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녀는 질문을 하는 사람, 답을 찾는 사람, 고통의 시간을 건너 우리에게 와 닿은 사람. 그녀가 던지는 질문, 그녀가 찾은 답은 마치 주문처럼 모두를 홀린다. 그녀는 언어로 모두를 안을 수 있는 사람. 내가 다치고 부서져도 끝끝내 모두를 안아버릴 사람이다.


소년이 온다/ 작별하지 않는다.


이 이야기들을 내가 감히 잘 읽었다고 할 수 있나.

아무 댓가도 없이 책을 읽은 나는 그저 황송한 마음으로

이 이야기들이 세상에 나오기까지 그녀가 혼자 짊어져야했던 시간과 고통과 슬픔에 빚을 지고 어떻게 갚을 수 있을지 셈도 못하는 주제에.

눈치도 없이 흐르는 눈물과 고통을 공감했던 찰나의 시간이 있었다고.

할수 있는 말이라고는 고작 ‘나도 그 책 읽었어’ 밖에 없고 그것마저도 곧 과거형으로 말해버리는 나같은 사람도 그녀와 책을 읽은 모두와 금실로 연결되어 버려서 안심되는 마음이다.


고통과 사랑은 어떻게 함께 존재할 수 있나

한 인간이 얼마나 깊게 폭력을 거부 할 수 있는가

살아남은 자는 진실을 증거해야하지 않나

우리는 어떻게 앞으로 나아갈 것인가

인간으로 남는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그녀가 온몸의 감각을 불어넣어 흘린 전류는 돌고 돌아 결국 모두를 실처럼 연결하고 나는 기꺼이 거기에 묶여서 그녀가 던진 질문들을 잊지않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며 사랑이 심장에 있다고 썼던 어린이의 성숙한 손을 존경하고 인간 잔혹함을 일찍 목격해버린 소녀의 눈에 비친 것이 인간의 친절과 사랑이었다는 것에 안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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