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군도 친구도 없다.

모둠수업이 싫어요.

by 도도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나태주 時 들꽃에서



지금은 폭주하는 기관차 같다. 그러나 소심하고 수줍은 성격을 타고난 아이다. 딸은 친구에게 같이 놀자고 먼저 말하기는 어려운 성향이다. 초등학교 입학하면서 부터 친구관계가 걱정됐던 엄마는 파자마파티를 의도적으로 집에서 종종 해주었다. 친구에게 자기표현을 적극적으로 하지 못하고 맞춰주는 모습에 안타깝고 답답한 적도 많았다. 그래도 단짝친구들이 만들어졌고 서로 자주 왕래하며 친하게 지냈었기에 큰 걱정을 하지 않았었다.


"엄마 오늘 금요일인데. 집에서 친구들과 파자마파티하면 안 돼요?" 이렇게 번개도 자주 친다. 금요일 이후부터 집안일을 나눠서 해야 하는 엄마는 부담스럽지만 늘 오케이라고 했다. 핸드폰 너머 엄마를 생각하고 또 생각한 뒤 용기 내어 말하는 딸의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다. 내가 하고 싶은 것만 생각하는 아이다운 아이가 아니었다. 그것은 늘 마음에 걸렸다.


초등학교 졸업식 날 친구들과 환하게 웃고 있는 졸업사진을 찍어주며 그래 이 정도면 친구관계 애쓴 보람이 있구나.라고 스스로에게 위안과 칭찬을 했었다.


그런데 중학교 배정 발표가 나던날 울먹이며 전화가 왔다. "다른 친구들, 친한 친구들 모두 A학교로 배정받았는데. 나는 B학교로 배정됐어요. 저 그 학교 너무 싫어요. 흑흑흑" 흐느끼는 아이를 달래고 또 달랬다. 마음이 쓰였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초등 6년 동안 인간관계를 배웠으니 중학생정도 돼서는 문제가 되지 않을 거라 안심했었다. 1학년 되자마자 코로나가 창궐하였다. 그냥 그렇게 1년을 집에서 마쳤다. 2학년이 되자 드문 드문 학교에 나갔고. 딱히 친한 친구가 없어 보여 신경 쓰이던 참이었다. 3학년이 되고 반이 바뀌면 새로운 친구가 생길 거라 희망을 가졌었다. 정작 3학년이 되었을 때는 등교를 거부하는 바람에 중학교 3년의 마지막 기회마저 쉽지 않았다. "학교 가는 게 왜 힘들어? 뭐가 그렇게 싫은 거야?" 엄마는 물었다. "그냥요" 늘 같은 답이다. 마음을 알 길 없어 애가 타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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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은 1층이다. 오가는 사람들이 창문으로 더 선명히 보인다. 늘 먼저 눈에 들어오는 화이트칼라. 누군가의 정성으로 다려진 빳빳하고 흰 교복셔츠를 입고 등교하는 아이들이다. 그 친구들과 부모들이 부럽다가 이내 슬퍼졌다. 남의 자식 학교 가는 게 이렇게 슬플 일인가. 언젠가부터 그 창문은 의식적으로 바라보지 않았다.


식탁에 마주 앉은 여느 날 "저는 모둠수업이 싫어요. 친한 친구도 없는데 자꾸 그룹을 지어 뭘 하라고 해" "엄마 나는 찐따가 아니거든요. 그런데 학교에만 가면 내가 찐따가 되는 기분이야" 불쑥 말을 쏟아낸다.

가슴이 철커덩 내려앉았다. 하지만 차분히 물었다. "혹시 너 왕따 당했었어"

"그런 거 아니에요. 그런데 친한 친구가 없어요"

"모둠수업 같은 거 하면 교실에서 옆자리, 앞자리 친구에게 같이 하자고 먼저 말하면 되잖아"

"엄마 저는 그게 되게 힘들어요. 잘 안 돼요" 전혀 생각지 못한 말이다.

"그리고 제가 학교를 가다 안 가다 해서 애들은 이미 그룹이 다 만들어져 있어요"

"그럼 우리 딸 학교 다닐 때 얼마나 힘들었을까"

"괜찮아요"라고 말한다.


오랜만에 학교에 가면 친구들이 먼저 안부를 물어오기도 하고, 안 가는 날은 반친구들을 통해 소식을 주워듣는 정도는 되었다. 그런데 그 이상 친구들에게 다가가지 못했다. 담임선생님께 수 없이 확인했지만 딸을 적대시하는 친구들은 없어 보였다. 스스로 다가가기 힘이 들어 그냥 문을 닫아버린 것 같았다.


학교에 가면 매일 찐따가 되는 기분이라는 말. 괜찮다는 대답. 아픈 말이다. "학교에 가면 어떻겠어?"라고 더 이상 말하지 않기로 했다. 매일 찐따가 되는 기분은 성숙한 어른에게도 마음 털리는 일이기 때문이다.




사진출처: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