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의 눈 속으로

태풍에서 살아남는 법

by 도도

"아르바이트할래요. 학교는 저에게 의미가 없어요."

딸은 학교에서 배울 게 없다며 그 시간에 아르바이트를 하겠다고 했다.


매일 아침 등교를 거부하는 딸과 중학교는 의무 교육이라 자퇴도 안된다며 잠을 자더라도 앉아 있다가 오라는 엄마의 기싸움이 시작된다. 아침 등굣길 학교까지 태워다 주며 어렵게 말을 꺼낸다.

"1교시라도 좋으니 잠시 앉아있다가 선생님께 말씀드리고 오면 좋겠다" 그것도 싫다며 고개를 도리도리 내 젓는다. 차에서 내려 내키지 않는 걸음을 학교로 옮긴다. 선생님께서 연락이 왔다. "어머님, 사랑이 오늘 학교 오지 않았는데요?" 실컷 놀다 저녁때쯤 연락이 온다. "엄마, 나 친구랑 분식집에 있어요. 와주시면 안 돼요?" 데리러 가는 차 안에서 1818 쌍욕을 하다가 갑자기 '풉' 웃음이 터졌다. 결국 학교도 가지 않았으면서 데리러 와달라는 말은 밝고 명랑하기 그지없다. 그래 이 정도 말을 엄마에게 할 수 있으면 된 거다.


딸은 지하 10층에 있는데 엄마는 아직 1층에 있다. 지하로 내려가기 싫으니 네가 올라오라고 말하고 있었다. 학교라는 마지막 끈을 놓지 못해서이다. 자의 반 타의 반 엄마도 지하 10층으로 내려가 아이 손을 잡았다. 그 마음먹기까지 왜 이리 힘들었을까? 지하 10층으로 내려가니 웅크리고 있는 딸이 보인다. 학교 다니고 말 잘 들어 이쁜 딸이 아닌 밥만 잘 먹어도 이쁜 딸이 보인다. 학교 안 가고 잠만 자도 건강하게 있어줘서 고맙다. 말 안 들어도 자기의 생각과 마음을 주장할 수 있어 대견하다. 그제야 진짜 내 딸이 보였다. 지하로 잘 내려온 것 같다.


결석하는 날이 잦아졌고 마침내 가정학습을 신청했다. 지하 10층에 같이 있는 엄마 덕분? 인지 밖에서 헤매지 않고 집에서 편안하게 꿀잠을 청했다. "학교 안 가면 잠만 자는데 이 시간에 알바라도 하고 싶어요. 아르바이트하면 낮에 깨어 있을 수 있고 경험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아르바이트를 하게 해달라고 계속해서 말을 한다. 잠만 자지 말고 영화라도 보라며 낮에 깨어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말하던 엄마에게도 그 방법이 나쁘지 않은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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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시작한 알바는 주방알바. 집에서는 먼지와 친구 삼고 느림의 미학을 한껏 보여 주고 있다. 그런데 신속. 깔끔이 생명인 주방알바가 가능할까? 우려했다. 알바자리를 구했다고 하나 어딘지 알려주지 않는다. 조용히 뒤를 밟아 일하는 곳을 알아냈다. 다행히 주방이 잘 보이는 곳이다. 밖에서 지켜보니 어라? 손이 제법이다. 내가 알았던 딸이 아니다. 집에 와서는 주방아줌마가 일 잘한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며 너스레를 떨며 자랑한다. "엄마 테이블에 나갈 음식을 주방에서 세팅하는데 그중에 문어숙회가 있었거든요. 먹고 싶어서 혼났어요" 그놈의 식탐만 좀 참으면 공부 아니어도 굶진 않겠다. 희망이 보인다.


두 번째 전단지 알바. 비슷한 나이또래 3명이서 전단지를 돌리고 있다. 요즘 같은 세상에 전단지 알바라니 미쳤다 싶었다. 어차피 처음은 엉뚱한 곳에서 돈을 버니까. 그냥 뒀다. 멀리서 지켜본 결과 역시 손이 빠르다. 착착착-- 쉭쉭쉭 다른 아이들보다 배포속도가 엄청나다. 웃으면서 말도 곧잘 한다. 일한 지 2시간이 지나자 벤치에 앉아있는 할머니들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간다. 'PC방 전단지인데 왜 할머니들에게 갈까?' 싶다.


"안녕하세요~ 할머니~"

"에고 그래 아휴 이쁘다."

"할머니, 요 앞에 컴퓨터 할 수 있는 PC방이 생겼는데요. 손자분들에게 알려주세요. 화면이 커 엄청 좋아요"

"잉? 컴퓨터로 게임하는 그런 거여?"

"네, 컴퓨터가 좋아 눈도 안 아파요"

"애기가 고생이네. 어디 줘봐" 그러고 주변에 같이 계신 할머님들끼리 서로 나눠 가지신다.


"엄마, 전단지는 할머니들이 제일 잘 받아줘요" 끝나고 집에 와서 말한다.

"PC방 전단지를 할머니들께 나눠주면 어떡해?" 모른 척 화들짝 연기가 필요하다.

"같이 일한 친구들은 화단에 숨기거나 버리거나 그러는데, 나는 어떻게든 끝까지 다 나눠줘요. PC방과 할머니들이 관계없다는 편견을 버려야 한다니까요. 손주도 있고 가족분들 있잖아요"

그러고도 한참을 남은 전단지를 할머님들께 나눠드린 정당성을 침 튀기며 설명한다.


세 번째는 스파게티전문점 홀서빙이다. 프랜차이즈라 점장, 부점장, 주방, 홀 각 담당이 있다. 그 사이에서 인간관계를 두루 섭렵하며 그들의 복잡 오묘한 관계를 매일 엄마에게 말해준다.

"엄마, 아무래도 주방장아저씨가 부점장님을 안 좋아하는 것 같아." "내가 보기에는 홀서빙하는 아줌마가 주방장아저씨를 좋아하는 것 같다니까" 유니폼도 맘에 든다며 일하는 동안 입었던 옷을 잘 때도 입고 잔다.(우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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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에게 자녀의 사춘기 시절은 아이를 낳는 산고를 마음으로 겪는 고통스러운 시간이다. 그리고 그 시간이 산고 때보다 길다.(모두 다 그런 건 아니다. 그렇지 않은 댁은 진심 부럽다.)

딸은 그렇게 크고 작은 태풍을 쉴 새 없이 만들어 냈다. 태풍이 심할 때는 태풍의 눈으로 들어가 묵묵히 버텨야 한다. 그래야 지나 보낼 수 있다.




사진출처: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