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렌지카운티로 떠난 시절인연

이민 간 심리상담선생님

by 도도

탕웨이 주연의 '시절인연'이라는 영화를 재밌게 봤었다.

나에게도 많은 사람들을 지나 기억에 남는 시절인연이 있다.


출처:네이버이미지




고장 났다 생각한 딸의 마음을 고쳐보고 싶어 심리상담을 시작했다.

아이도 상담받는 것에 동의해야 할 수 있다 했고. 어렵게 동의를 구해 첫 상담을 갔다.

그곳에 찰랑거리는 검은색 단발머리, 훤칠한 키, 마른 몸을 소유한 40대 중반으로 보이는 예쁜 선생님이 있었다. (이후 J라 부른다.) 아이는 이쁘고 잘생긴 사람을 매우 칭찬하는 외모지상주의를 지향한다. 덕분에 호감을 사기 충분했고 중간에 때려치우면 어쩌나 하는 불안한 엄마 마음도 이내 안도되었다.


첫인상이 좋았는지 생각보다 적극적으로 상담에 응했다. 심리검사가 있다고 하니 받아보고 싶다고 했다. 이후 시간을 들여 작성한 서류들을 제출했고, 처음 우려했던 것과 달리 주 1회 상담은 빠지지 않고 다녔다. 학교는 안 갔지만 말이다. 상담 후 10분 정도 엄마와 시간도 주워졌다. 검사를 할 때 방어적으로 하면 정확한 분석이 어려운 경우가 있다고 한다. 딸이 그런 케이스에 해당된다 했고. 그러기에 결과를 전적으로 신뢰하기는 어려움이 있다고 귀띔해주었다.


상담 3개월 차 J가 말한다. "마음을 여전히 닫고 있어 어려운 점이 있네요" 포기할까 봐 두려웠다.

6개월 차 되자 이렇게 오래 걸리는 경우는 드물다고 한다. 겁이난 눈동자가 흔들리고 있을 때 내 손을 잡으며 "어머님 힘 합쳐서 잘 헤쳐가 봐요"라고 해주었다. 그러고도 한참을 지나서야 아이는 마음을 열기 시작했고 힘들 때면 종종 J를 찾아갔다. 딸이 알바를 할 때면 거기가 어딘지, 괜찮은 곳인지 함께 걱정하고 같이 알아봐 주었다. 집을 나갔을 때도 J를 찾아가 왕돈가스를 얻어먹고는 상담 휴게실에서 꿀잠을 잤었다. 미쳐 보이는 아이가 제정신으로 돌아오진 않았다. 그러나 분명한 건 믿을만한 어른이 아이에게 한 명 더 생긴 거였다.


1년이 가까워졌을 때 J에게 물었다. "언제까지 상담을 받아야 할까요?"

"아이가 그만 받겠다고 할 때까지요"라고 하였다. (자발적으로 온다는 것은 분명 필요 또는 도움 되는 점이 있다.는 말씀) 1년이 지나가는 시점에 아이가 말했다. "이제 더 이상 받지 않아도 될 것 같아요." 2022.10월 즘이었다. 상담받은 지 오래되어가는데 변화가 없으니 주변에서는 실력이 없는 거 아니냐며 바꿔보라고 말했었다. 그런 실력은 어떤 기준으로 뛰어나다고 해야 하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아이를 진심으로 걱정해 주고 있다는 것이 보였고 아이도 그걸 느꼈기에 매주 상담시간을 체크하며 그렇게 꾸준히 다녔으리라고 믿는다.





작년 12월이 되었을 때 크리스마스에는 J에게 인사를 가야지 생각했다. 그런데 크리스마스 1주일 남기고 J에게 연락이 왔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잘 계셨죠? 그렇잖아도 다가오는 크리스마스에는 얼굴 뵈러 가려고 했어요. 아이가 아직 불안정해서 연락드리고 싶어도 못했어요. 지금은 어느 정도 마음 잡아가고 있는 것 같아 찾아뵈려고 했는데."

"아닙니다. 어머님, 아이가 잘 있는지. 어떤지 궁금해서 연락드렸어요. 그리고 제가 다음 주는 미국으로 떠나요. 24일 날 출국해요" 상담하는 동안에도 이민을 준비 중이었던 J였다. 그래도 갑작스러웠다.

"다음 주요? 그동안 준비 열심히 하셨는데 축하드려요. 센터로 아이와 함께 뵈러 가겠습니다." 통화 끊고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난다. 그러다 꺼이꺼이 울고 있다. 당황스러웠다. 10년 지기 20년 지기 동무가 멀리 떠나는 것도 아닌데 서글픔인지 서운함인지 모를 마음을 한동안 잡고 울었다. 지금도 문뜩 J가 생각난다.


종일 상담하느라 애쓴 그녀의 입술을 위해 내가 좋아하는 립밤과 핸드크림을 들고 아이와 함께 갔다.

"아구 우리 사랑이 잘 있었어? 선생님이 너무 궁금하고 보고 싶었어."

"네,,"고개를 떨구고 있다.

"요즘 어때? 괜찮아?"

"저 요즘 열심히 하려고 노력 중이에요" 고개를 번쩍 들고 화색이 돈다. 그렇다. 많이 노력 중이다.

"그래 다행이다. 선생님이 가기 전에 사랑이가 잘 지내는지 꼭 알고 싶었는데. 마음이 놓인다."

"오렌지카운티로 가는데 나중에 사랑이가 커서 미국 오게 되면 연락 줘. 우리 LA에서 만나 맛있는 햄버거 먹자"

"제가 꼭 찾아갈게요."

새로운 곳에서도 건강하게 잘 지내시라 인사를 했다. 마중 나온 J가 엄마에게 말한다.

"사랑이가 잘 지내면 좋은데. 혹시라도 그렇지 않으면 연락 주세요." 눈물이 핑 돈다. 행여나 정신 못 차리면 미국으로 보내셔도 된다는 말을 그전부터 해왔던 J였다. 마지막 인사길에도 걱정하게 해서 미안했다.





떠나간 J는 모를 거다. 혹한기처럼 추웠던 그날들 동안 누구에게도 마음 터놓고 말할 수 없었던 일들을 상담이라는 이름아래 맘껏 말할 수 있는 유일한 친구였다. 그토록 추웠던 시간들을 공유한 J가 멀리 떠난다는 소식이 너무나도 애석해서 눈물이 났던 거다.


1년 남짓한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때 그 시기에 아이와 나의 손을 꼭 잡아 주었던 J. 참으로 감사했다.

그 시절 '시절인연'이다.


여러분도 그리운 '시절인연'이 있으실까요?



사진출처: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