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 가장 소중했던 시간을 알 수 있어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선택을 하면 분명 후회할 거라고 했다. 이제 와서 그만 두면 고생한 보람이 없다며. 하지만 누구에게나 맞는 말은 아니었다.
물론 직장이란 것을 그만두기까지 그들이 한 생각들을 정작 본인이 안 했을 리가 있을까. 수십 번 수백 번을 대뇌 었다.
여기서 그만두면 대한민국에서 나는 그냥 애둘 있는 아줌마. 누군가 써주기에는 이미 너무 무거운 나이를 갖고 있지. 거의 다 왔다는 말은 사회적으로 안정적인 위치를 말하는 거였다. 그래 거기까지 가면 그다음은 뭐가 있을까. 뭐가 남을까. 끊임없는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했다.
거기까지 간다면 지금 엄마가 필요한 아이들의 이 시간도 다시는 잡을 수 없는 시간으로 지나 버리겠지. 언제 끝날지 모를 코로나 동안 아이들은 계속 집에 방치되어 있어야 됐다. 놓쳐버리면 다시는 살아보지 못할 그 시간을 잡고 싶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통장에 꽂히는 월급도 의지를 꺽지 못했다. 재취업은 아예 염두에 두지 않았다. 사회생활은 이제 끝이다.라고 슬프지만 생각했다. 다시 일하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중년의 아줌마에게는 고융주가 되면 몰라도 직원으로 고용되기는 아주 많이 어렵다는 걸 너무나 잘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만두고서도 줄곧 많은 질문들을 했었다. 마음이 아니면 생각이 바뀌었는지. 자기 결정을 합리화하기 위해 그냥 잘했다고 무의식적으로 두둔 하는건 아닌지 나도 모르게 문득문득 검증했었다.
그리고 지금 살아왔던 시간들을 돌이켜볼 때면 그때가 가장 행복한 시간으로 떠오른다. 그렇게 알게 되었다. 그때 한 결정이 너무나 잘했었다는 것을 말이다. 돈을 벌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그 수많은 시간들은 안타갑지만 그리움으로 남지 못했다.
한 여자의 사회적인 경력으로 본다면 분명 아쉽거나 안타까운 게 맞을 것이다. 하지만 엄마의 시간으로 본다면 참 좋은 시간들이었다.
대한민국에서 엄마로 아줌마로 사는 것은 집에서도 밖에서도 결코 녹록지 않다.
직장을 때려치우고 아이들 옆에 무조건 엄마가 있어주는 게 최선이라고 말하는 것이 절대 아니다.
코로나가 찾아오지 않았다면 나 또한 직장에서 완주 했을 것이다.
하지만 부득이 아주 부득이 엄마가 절실히 필요한 때가 온다면 그 시간을 용기내어 잡아보는 것도 참으로 빛나는 시간이라고 말하고 싶을 뿐이다.
사진출처: Pintere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