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하지 않기로 했다.

말과 대화의 차이

by 도도

[명사] 사람의 생각이나 느낌 따위를 표현하고 전달하는 데 쓰는 음성 기호


대화

[명사] 마주 대하여 이야기를 주고받음. 또는 그 이야기.



집에 아무도 없는 것을 좋아했다. 아빠도 동생도 없었으면 좋겠다고 한다.

동생이 학교에 가고 없는 시간이 딸에게는 꿀 같은 시간이었다. 집안이 조용하다 싶으면 팔, 다리 흐느적거리며 방에서 나와 피아노 건반을 두드린다. 초등 때 잠깐 다녔던 피아노학원. 몇 날 며칠을 배우기 싫다며 떼를 써 어쩔 수 없이 그만뒀었다. 그런데 지금은 마음이 평온한 날 또는 평온해지고 싶은 날은 아무도 없는 집안을 확인한 후 유튜브 영상을 스승 삼아 피아노를 따라 쳐본다. 엄마옆에 살짝 왔다가. 피아노 치는 게 좋다며 즐기다. 거실에 깔아 놓은 토퍼에 대자로 널브러진다. 지중해 그 어느 휴가보다 훨씬 더 편안하고 여유로워 보였다.


그러다 대화 같은 딸의 길고 긴 말은 시작되었다.

"엄마, 있잖아요. 저는요." ~~~

"나, 가수를 할까 봐요." ~~~

"피아노가 재미있어요. 예전엔 그렇게 싫다고 난리 쳤었는데"~~~

마음이 동한날이면 한번 시작된 말은 2시간, 3시간이 지나도 멈추지 않았다. 일상의 생각에 대해 말을 하기 시작했다. 막힘없이 쏟아지는 말은 예고 없이 찾아왔고. 그럴 때면 모든 걸 멈추고 어느 때든 기꺼이 충분히 들어주었다. 엄마가 볼일이 있는 눈치가 조금이라도 보이면 금세 말문을 닫아버렸기에 봇물이 터지면 모든 걸 저 멀리 미루었다. 신나게 말을 하다가도 동생이 집으로 도착하는 순간 신데렐라처럼 다시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 어느 때 이렇게 단둘이 몇 시간 동안 함께 말을 주고받아 대화가 되었던 시간들이 서로에게 있었던가. 뒤돌아보니 엄마는 그동안 대화가 아닌 말을 했던 것 같다. 분주히 아침을 깨워 챙겨야 할 것들을 말하고 저녁이 되면 오늘 할 일을 다했는지 묻는 그저 말을 한 엄마였던 것이다. 그동안 아이는 대화를 하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체력이 고갈된 어느 때나 분주해 보이는 엄마 덕분에 대화보다는 말을 하고 듣는 것으로 만족? 했었던 건 아닐까.


봇물 터진 몇 시간 동안의 말. 그 말을 정성껏 들으니 마음의 소리가 들리는 대화가 되었다.







어릴 적 나의 엄마는 늘 바쁘셨다. 고된 삶 속에서 자식을 먹이고, 입히고, 씻기고 재우는 것. 그리고 열심히 사는 것이 자식을 위한 길이라 여기셨다. 소풍날이 되면 바빠서 못 오시는 날이 많았고 작은엄마가 대신 날 챙겨주셨다. 과묵하신 성격에 바쁘기까지 한 엄마와 대화를 나눈다는 것은 나에겐 꿈이었다. 늘 바쁘고 힘들어 보인 엄마가 짜증 났던 어린 시절. 어른이 되고서야 그것이 엄마의 사랑법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평생을 말이 아닌 삶으로 보여주신 사랑이었다.


어느새 엄마가 된 나는 삶을 게을리하지 않고 열심히 살아내면 딸도 언젠간 엄마의 사랑을 알게 될 거라 생각했다. 그것이 입으로 하는 교육보다 훨씬 중하다 여겼다. 나도 모르게 학습된 엄마의 모습이다. 그래도 나름 세심하게 챙기면서 매사에 열심히 사는 이 정도면 정말 좋은 엄마라고 웃프지만 자만했었다. 쉬고, 즐기는 것을 배우지 못한. 대화라는 걸 해보지 못한 엄마는 쉼과 대화가 주는 위로와 평안함을 알지 못했다.


얼마전 오은영선생님이 금쪽상담소라는 프로그램에서 어느 게스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요지는 그랬다)

"열심히 사셨던 엄마의 모습을 보고 배운 건 맞는데 쉼을 배우지는 못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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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열심히, 성실히 도 좋지만 쉼과 즐기는 삶도 보여줄 수 있는. 기꺼이 대화를 하는 엄마가 될 수 있는 기회다. 나에게도 너에게도 기회가 되어준 소중한 시간 속에 감사하다.



사진출처: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