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가는 길

내가 원한 건 아니었어요.

by 도도

한 달에 두세 번은 짐을 바리바리 싸야 한다. 캠핑을 가거나 지루한 운전을 감수할 정도의 먼 곳으로 여행을 다니기 때문이다. 아빠는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체력 딸린 엄마는 주말에 꼼짝 하기 싫었다. 더욱이 아이가 어리다 보면 짐을 싸도 싸도 또 챙겨야 할 것들이 산더미라 엄마에겐 '여행=짐 싸는 노동'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추가 달린 무거운 몸을 일으켜 세우는 것은 이제 돌 지난 지 얼마 안 된 딸이다. 주말에 온전히 아이와 함께 하고 싶었지만 집에 있으면 피곤하다는 핑계로 시체놀이를 했고. 아이는 그 머리맡에서 항상 말없이 곰실곰실 놀아줬다. '엄마, 나 심심해 놀아줘' 그 흔한 말 한마디 없이 곁에 앉아 꼼지락꼼지락 혼자 놀기 달인이 되어가는 것이 안타까워 가능하면 밖으로 몸을 내보내 움직이는 환경을 만들었다. 딸과 조금이라도 더 다양한 경험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아이를 위한 육아라 생각했다. 13살이 될 때까지 산, 들, 바다로 줄기차게 돌아다녔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사춘기 호르몬 결정체가 된 16살 딸은 말한다.


"살면서 아빠가 나를 사랑한다고 느껴본 적 없어요"

"그게 무슨 말이야? 아빠가 피곤해도 우리 딸 데리고 얼마나 여행을 많이 다녔는데 다 너 생각해서 그랬어"

"내가 원한 건 여행이 아니었어요. 그냥 나랑 놀아주면 됐는데,,,"

그리고도 한 동안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아빠가 나를 사랑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라고 훅 훅 잽을 날렸다.


분명 TV나 핸드폰 그리고 방바닥에서 멀어진 즐거운 시간들 같았는데. 그동안 했던 노력들이 부정당한 기분에 속상했고 10년 넘게 헛발질을 한 어리석음이 애석한 마음도 잠시 '누구를 위한 여행이었나?'라는 생각이 찾아왔다. 여행 자체가 목적이 아니었는데 어느새 주객이 전도된 건 아닐까. [사람이 여행을 하는 것은 목적지에 도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여행하기 위해서다]라고 괴테는 말했거늘.


부모의 의무감으로 가는 것 자체가 목적이 돼 버린 건 아닌지. 장거리 운전으로 막상 여행지 가면 떡실신되는 아빠 보다 집 앞 공원에서 숨바꼭질, 비눗방울놀이, 자전거 타기를 같이 하는 아빠가 아이는 더 필요했던 것 같다.






이럴 때 생각나는 노래가 있다. 90년대 잘 나갔던 그룹 '노이즈'의 [너에게 원한 건]


너에게 원한 건( 너에게 원한 건~) 어려운 고백은 아냐

날 사랑하는 만큼 표현해 주는 것

내가 느낄 수 있도록



https://youtu.be/4QtW0os17ok

노이즈 _너에게 원한 건





사진출처: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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