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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도 Apr 20. 2023

현관문 앞 일주일

96주의 일주일 中

최승자 시인의 <삼십 세>라는 시의 첫 구절은

"이렇게 살 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 수도 없을 때 서른 살은 온다"로 시작한다.

삼십 세가 아닌 사십 세가 훨씬 넘은 나이지만 매일 집 앞 현관문에서 시린 내 마음은 이 시의 한 구절과 같았다.    



  


오늘은 월요일이다. 

퇴근 후 현관문 앞에 도착했다. 

그런데 이상하다. 그토록 반가운 집 앞에서 언제부턴가 웃는 연습을 하기 시작했다. 

여느 때 같으면 퇴근으로 새털처럼 가벼워진 발걸음을 재촉해 1분 1초가 아깝지 않도록 휘리릭 안으로 들어갔었을 텐데.  “너 왜 그래?”라고 마음이 물었다. 그런데 잘 모르겠다.     


이제 화요일이다. 

종일 엑셀을 붙잡고 통계를 내고 분석하고 보고했다. 뱅글뱅글 돈다. 퇴근길 상사의 전화. “미안한데 내 차 앞에 주차한 아저씨 내가 전화하기 좀 그래서. 그 아저씨에게 차 빼 달라고 전화 좀 해줘” 이게 무슨 심술궂은 부탁인가? 했다. 그런데 이미 “네~”라고 정해진 답을 하고 있었다. 다시 또 회색 현관문 앞에 도착했다.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았다. 상사의 그런 부탁은 그동안의 직장생활 중 눈물이 나올 만큼 서러운 그리 큰일이 아니었다. 도대체 이유를 모르겠다.    


일주일에 징검다리 수요일이다. 

퇴근길 버스 안 라디오가 흘러나온다. 차분한 목소리의 DJ는 '어떤 사람이나 어떤 일에 진심이었다면 슬프거나 화가 날 수 있어요' '내 마음이 진심이어서 그래요'라고 말을 했다. 그 순간 지난 월요일 답하지 못했던 “너 왜 그래?”의 질문에 답이 가능해졌다. 난 일에 진심이었다. 물론 대출 가득 찬 집도 현실이지만 말이다. 

 

피곤한 목요일이다.

적어도 8시에는 회사 가는 버스를 타야 한다. 그런데 눈을 뜨니 8시다. 머릿속이 흰 눈밭이다. 가족들 아침식사는 저 멀리 날아갔다. 모두 생으로 굶게 생겼다. 직장 생활하면서 이런 적이 없었다. 잡히는 옷을 뒤집어쓰고 뛴다. 번개 같은 하루가 지나고 다시 또 묵직한 현관문 앞이다. 화요일, 왜 눈물이 왈칵 쏟아지려 했는지 알았다. 나는 진심이었지만 회사는, 조직은 진심이 아님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번개 같은 금요일이다.

오늘은 월요일 같은 금요일. 정신없던 하루였다. 금요일 마주한 현관문 앞은 일주일 중 가장 무겁다. 한 주 동안 미뤄놨던 집안일들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금요일이 주는 아이들의 신나는 기분을 맘껏 공감하지 못하고 “빨리, 빨리”를 외치며 동분서주할 영혼 없는 내 모습을 마주해야 되기 때문이다. 현관문을 열기 전 생각했다. “나에게 가치는 무엇일까?”

끝없는 질문을 하며 그렇게 96주를 보냈다. 

사진출처:PIXABAY




 번 아웃이라 생각했다. 어떻게든 일터에서 떠난 내 마음을 잡고 싶었다. 일은 하던 데로 충실히 했다. 그냥 그것뿐이었다. 시간이 지나면 마음도 위로가 되고 무뎌지고 바뀔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1년 이 가고 2년 이 가도 생각과 마음은 내 뜻대로 되지 않았고 오히려 태평양 바다처럼 깊어만 갔다.    



  


마지막 출근길 발걸음이 참 가벼웠다. 

그동안 수많은 생각을 하였지만 가벼운 발걸음이 나에게 잘못된 결정을 하지 않았음을 말해주었다. 그리고 난 집으로 새롭게 출근했다. 그때는 몰랐다. 

밀린 숙제가 기다리고 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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