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의 정의를 생각하며, 아이들을 미래를 생각하며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다고 할 수 있습니다. 누구나 저마다의 재능(능력)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직설적으로 말해서 부모라는 밭이 운동의 유전자가 없다면 그 씨앗인 아이가 운동을 잘할 가능성은 없는 것처럼, 유전적으로 학습과 관련된 유전자도 정해져 있다고 보는 것이 합당합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기자 생활을 5년 간 하고, 학원을 10년 이상 운영했습니다. 학원에 공부 잘하는 아이가 다니면 학원은 별다른 노력 없이도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결과를 학원 원장들은 그 아이가 잘해서 임을 알면서도 현수막을 걸고 자신들의 과업처럼 홍보합니다. 이런 경우야 말로 다 차린 밥상에 숟가락 하나 올린 것일 뿐입니다. 그 아이는 어떤 학원을 다녀도 좋은 결과를 가질 아이입니다. 이런 아이들은 타고납니다. 대부분의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은 선천적인 경우가 많습니다.
어떤 이는 선천적인 것이 중요한가, 후천적인 것이 중요한 가에 50대 50의 배점을 줍니다. 그리곤 50%나 되는 후천적 교육의 중요성을 언급합니다. 다 말장난입니다. 설령 99% 후천적인 요소가 중요하다고 하더라도 1%의 타고난 능력 때문에 무너지기도 하는 것이 인생입니다. 사실 과학적으로 몇 대 몇 식의 정확한 연구 데이터는 없습니다. 하지만 유전자가, 타고난 능력이 누군가의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은 확실합니다.
타고난 능력, 후천적 교육 어떤 것이 중요한가?
그렇다면 우리 아이들은 후천적인 노력을 통해 사회가 요구하는 능력을 키워 나가야 할까요? 아니면 타고난 능력을 가꾸어 나가야 할까요? 사실 이에 대한 답은 알 수 없습니다. 둘 다 중요한 부분이기도 하고, 둘 다를 동시에 가꾸어 나가야 하는 것이 정답일 것입니다. 문제는 대부분이 가지고 있지 않은 능력인 공부하는 능력을 키우기 위해, 그래서 좋은 점수를 받기 위해 너무나 많은 희생을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중학교에서부터, 아니 빠르면 초등학교 저학년에서부터 아이들은 학원 뺑뺑이를 돕니다. 이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혹시나 우리 아이가 세계화에 뒤쳐지지는 않을까 영어 학원에 등록합니다. 체력이 걱정되어 태권도도 하나 보내고, 수학은 대학 갈 때 중요하니 미리미리 학원을 보냅니다. 감성도 중요하니 피아노도 하나 보내고요. 아직 우리 아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모르니 이것저것 시켜 본다는 데 의의를 둔다면, 능력만 닿는다면 나쁘진 않습니다.(간혹 나쁠 수도 있습니다. 의도가 아무리 좋더라도 과정이 잘 못 되었다면 문제가 발생합니다. 다른 글에서 이어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지내다 중학교 올라가면서 갑자기 모든 중심이 국영수로 쏠리기 시작합니다. 진보 정권이 되어 경쟁을 자제하든, 보수 정권이 되어 경쟁을 밀어붙이든 상관없이 성적으로 줄 세우는 체제 속에 그대로 녹아들어 갑니다.
중요한 것은 그 체제 속에서 우리 아이들이 행복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사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자신의 재능이 무엇인지 잘 모릅니다. 운동은 소질이 없어 보이고, 음악을 좋아하는 것 같긴 한데 잘하는지는 모르겠고, 공부는 일찌감치 포기했습니다. 이런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런 대부분의 아이들은 어떤 미래를 선택해야 하나요? 부모가 경험하지 않은 분야는 잘 몰라 조언해 줄 수 없고, 아이도 뭘 좋아하는지, 잘하는지도 모른다면 결국 포기했던 공부를 계속할 수밖에 없습니다. 학교에 앉아 있지만 선생님이 무슨 말을 하는지 들리지 않습니다. 그저 빨리 학교를 마치고 게임이 하고 싶을 뿐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바로 학원으로 끌려가야 합니다. 학원을 갔더니 또 이해 안 되는 수업을 듣습니다. 미치기 일보직전입니다. 하지만 자신을 위하는 부모님을 생각하면서 꿋꿋하게 참아냅니다.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견디는 겁니다. 착한 아이들일 경우에 이렇고 소수의 아이들은 삐뚤게 나갈 수도 있습니다. 현실이 답답하니까요.
현행 입시 체계에서 공부라는 것은 얼마나 잘 이해하고 암기하느냐의 영역입니다. 암기 능력은 타고나는 영역 중에 하나입니다. 후천적인 교육으로 자녀가 음악에 대한 감수성과 지식을 풍부하게 만들어 줄 수는 있습니다. 규칙적인 운동으로 체력을 튼튼하게 만들어 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딱 그 정도까지만입니다. 암기의 영역 또한 마찬가지여서 후천적 노력으로 극복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렇다 보니 요즘에는 암기 잘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학원이나 교육이 또 유행합니다. 하지만 그런 방식으로 학습력을 조금 올린다고 해서 원래 암기력과 학습력이 좋은 친구들을 이길 순 없습니다. 1등부터 꼴등까지 줄 세우는 현행의 교육 체계에서는 타고난 공부 능력을 극복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원래 공부 머리는 좋았는데 환경 때문에 실력 발휘를 하지 못했다가 노력으로 극복한 몇몇 희귀한 사례들을 예시로 누구나 얼마든지 노력만 하면 공부를 잘할 수 있을 것처럼 기만합니다. 나아가 머리가 좋지 못했는데 특수한 교육을 받고 좋은 결과를 받았다며 현실성 없는 희망가를 부릅니다. 공부 머리가 타고났다는 말은 너무 냉정하게 들리니 누구나 후천적인 노력으로 극복 가능한 것처럼 드라마를 만들어 냅니다.
공부는 일등을 하지 않아도 그 성적대의 대학을 진학할 수 있고, 또 대학 진학 이후 공부에 관심을 가질 수도 있기에 고교 시절 원하는 직업이나 목표가 없거나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면 공부를 계속해 나가는 것이 장래 취업에 있어 제일 유리한 선택이긴 합니다. 그래서 국영수 공부라는 것을 현실적으로 쉽게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선천적 공부 유전자를 말하는 이유는 그것이 노력의 영역이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공부는 시키는 것이 아니라 하는 것입니다. 부모는 공부에 관심도 없고 잘하지도 못했으면서 아이에게 공부 잘하기를 바라는 것은 욕심입니다. 집에서 책 한 권 읽지 않는 부모들이 아이는 책을 끼고 살길 바라는 것은 자녀를 속이는 일입니다. 책을 읽게 시키는 이유가 단순히 삶에 대한 지혜를 얻길 바라는 마음이 아니라, 입시에서 국어 영역의 점수를 잘 받기 위함이라면 이는 자녀의 학대에 해당합니다.
교육을 무언가를 아이의 안으로 집어넣는 것으로만 생각하는 부모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교육의 영어인 education은 라틴어 educare에서 유래한 것으로, ‘e’의 ‘밖으로’와 ‘ducare’의 ‘끌어낸다’가 합쳐진 합성어입니다. 즉, 우리 아이로부터 무언가를 이끌어내려면 아이 안에 무언가가 담겨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 무언가가 바로 우리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타고난 능력일 겁니다. 이 선천적 능력을 끌어내기 위해 후천적 환경과 교육 같은 노력들이 발휘되어야 할 것입니다. 원래 없던 능력은 어느 정도 강화는 할 수 있어도 끌어낼 수 없다는 말과도 같습니다. 운동 능력이 없는 아이에게 아무리 달리기 훈련을 시켜도 최고는커녕, 빠르게 달릴 수 없습니다. 하지만 공부는 중간만 가도 살아가는 데 문제가 없으니 부모들이 아이에게 국영수 공부를 강요하는 것은 이해가 됩니다. 다만, 만약 그런 거라면 공부를 중간 가게 만들기 위해 온갖 희생을 강요할 것이 아니라 그 에너지를 아이의 선천적 능력을 찾고 이끌어내는 데 쏟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다양한 아이들을 만납니다.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에게는 과목별 방법론과 지엽적인 문제 해결법만 가르쳐줘도 충분합니다. 오히려 이런 아이들은 경쟁에 대한 올바른 지침과 스트레스 해소법 등의 정서를 돌보아 주어야만 합니다. 사회의 지도자층이 될 가능성이 높으므로 올바른 가치관을 심어주는 것도 중요하겠죠. 공부 역량은 있는데 목표가 없어 왜 공부해야 하는지 방황하는 학생들도 있습니다. 이런 학생들은 조금만 더 노력해 주면 좋은 성적이 나올 것 같아 아쉽기도 합니다. 제일 안타까운 학생들 부류입니다. 하지만 억지로 공부를 시킬 수는 없습니다. 스스로 깨달을 수 있도록 기다려줘야 합니다. 어떤 학생들은 공부 역량은 형편없지만 분명한 자신만의 색깔을 가지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아마 공부가 아닌 자신의 분야를 잘 개척해 나가리라 믿습니다. 공부는 좀 못하지만 창의력이 좋거나 눈치가 재빠른 아이들도 있습니다. 이런 아이들은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보다 미래에 잘 살 가능성이 훨씬 높습니다.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을 직원으로 거느릴 가능성도 있습니다. 한편 도저히 국영수 공부를 가르쳐선 안 되겠단 생각이 드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그런데도 부모들은 허울뿐인 대학이란 틀에 허우적 대고 아이들은 힘들어합니다. 공부 외에 관심 있는 직업들을 찾아보는 활동을 하는 게 좋을 겁니다.
미래에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은 우리의 과거와는 다를 겁니다. 우리나라는 자원이 부족한 국가라 국민을 자원으로 활용하기 위한 교육 정책들을 펼쳐 왔습니다. 오죽하면 교육인적자원부라고 합니다. 인적자원! human resources! 인간을 국가를 위한, 수익 창출을 위한 도구로밖에 생각하지 않는 사상입니다. 출결 100%의 성실하고, 공부를 열심히 하면서도 잘하는 똑똑한 아이들을 기계 찍어 내듯이 배출해 내는 것은 산업화 시대의 가치였습니다. 이제는 한 명의 아이의 아이디어가 국가 전체를 먹여 살릴 수도 있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그리 거창하게 얘기하지 않더라도 언제 잘릴지 모르는 대기업 노동자보다는 자신만의 아이디어로 회사를 경영해 나가는 편이 훨씬 동경받는 세상이 도래하고 있습니다. 과거 속에서 자신의 영역만 경험한 부모는 더 이상 아이에게 미래를 제시할 자격은 없습니다.
교육의 敎자는 단순히 지식을 주입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부모가 아이에게 모범을 보이며 철학이나 도덕 등의 바른 가치관을 제시해 준다는 의미입니다. 育자는 낳아 성장시킨다는 의미입니다. 즉, 아이가 스스로 건강하고 바르게 자란다는 의미입니다. 우리 아이들은 부모가 낳은 그 순간부터 부모에 종속된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 자라나는 별개의 존재입니다. 아이가 스스로 살아갈 역량만 심어준다면 스스로 잘 자랄 것입니다. 공부 유전자만이 우선 되는 시대는 이미 끝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