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쓰홍 <귀신들의 땅>을 읽고
가끔 이 한국 땅이 나를 기어이 죽이려 드는가 싶을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눈을 감고 침대에 누워 내가 귀신이 된 상상을 한다. 난 엄청난 원한을 가진 처녀 귀신이 될 것 같다. 귀신들이 으레 그러하듯 바짓가랑이를 잡아당기거나 높은 곳에서 물건을 떨어뜨려 해묵은 감정을 풀게 되겠지. 그런데 나는 누구의 바짓가랑이를 붙들어야 하는가? 땅의 무언가를 붙잡아봤자 손에 모래만 남을 뿐이다. 그냥 내가 이곳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생기는 문제들이 있다.
천쓰홍의 <귀신들의 땅>은 고향 용징에서 쫓겨난 톈홍이 귀향하는 이야기다. 마찬가지로 톈홍을 용징에서 쫓아낸 사람은 아무도 없다. 톈홍은 동성애자였고, 용징은 국민당이 독재 중인 80년대 대만의 시골 마을이었을 뿐이었다. 그는 베를린으로 날아가 연인을 만나고 그곳에 정착하게 된다. 그러나 모종의 이유로 연인을 살해하고, 갈 곳이 없어진 그는 용징으로 돌아온다. 이 책은 톈홍이 귀향하여 형제자매들을 만나는 단 이틀, 그리고 동시에 톈홍의 평생을 그린다.
톈홍의 가족은 매우 복잡하다. 아버지와 어머니, 위로 누나가 다섯 명, 형이 한 명 있다. 총 9명의 대가족인 셈이다. 게다가 누나들은 대부분 결혼을 했으니 형부도 여러 명이다. 독자는 이 가족 구성원을 한 명도 빼놓지 않고 다 알아야 한다. 책의 전반부에서는 톈홍을 포함한 남매의 이야기가 일곱 갈래로 갈라지다가, 책의 후반부의 무대가 되는 용징에서 한 점으로 만나기 때문이다. 처음엔 불친절하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옆에 메모장을 두고 가계도를 그리면서 읽는 맛이 있다.
용징은 톈홍 뿐만 아니라 누나들에게도 친절한 땅은 아니었다. 톈홍의 어머니는 항상 문묘에 들어가 기도를 했다. 다섯 명의 딸 끝에는 꼭 아들이 나오게 해 주십사. 그리고 시어머니가 빨리 죽기를. 누나들 중 한 명은 창 밖에서 자신을 바라보며 자위하던 사람 때문에 창문에 꼭 커튼을 치는 습관이 들었다. 나에게도 내 땅이 심어준 습관들이 몇 개 있다. 이것들이 새로운 곳에서 다시 태어날 나를 상상할 수 없게 한다. 양타오 과수원의 시고 습한 냄새가 베를린으로 떠난 톈홍을 따라간다.
톈홍이 베를린에서 애인을 죽이고 돌아온 용징에서는 이미 모든 것이 종결되어 있다. 자주 가던 수영장은 말라버리고, 국숫집의 맛은 변했고, 첫사랑은 늙어버렸다. 이 책은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용징 한복판으로 나를 던져 놓는다. 동시에 내가 살아가고 있는 이 땅을 의식하게 만든다. 나의 땅이 나를 죽일지라도, 나는 이 땅이 만들어낸 나라는 사실을 느끼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