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년생이 나는 IMF로 무너진 한국에서 태어났다.
부모님의 신입 시절, 천운으로 인해 사직은 면하셨지만
생존을 위해 맞벌이 강도는 높아졌었다.
가처분소득을 위해 가처분시간을 희생한 우리 집은
자연스럽게 나를 외가 할머니에게 맡기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본가와 사택이 5km도 되지 않았고
낮에는 할머니와 밤에는 부모님과 시간을 보냈다.
나름 혼자 돌아다닐 나이가 되면서는
친할머니를 모셔와서 살기 시작했다.
물론 나는 두 분을 부를 때 외할머니, 친할머니를 붙이지 않았다.
그냥 할머니라고 불렀다.
붙이면 좀 이상하지 않나? 생각했다.
그렇게 부분적으로 4명에게 케어를 받으면서 자랐다.
부모님은 (어쩌다보니) 2명이지만
보호자는 4명이 번갈아가면서 했던 셈이다.
이제 와 생각해보면
내 성격은 이 중 외할머니에 가장 가깝다.
7살 이전의 시기가 성격을 좌지우지한다는 어떤 심리학 수업을 곱씹어보면
소름이 돋지 않을 수 없다.
물론 부모님은 이 사실을 전혀 몰랐을 것이다.
(두 분 다 인문학 전공자가 아니시다.)
지금 태어나는 아이들도 이런 탁아 비스무리한 경험을 할까.
아마 하지 않을까. 더더욱 일하는 시간이 늘어났으니.
단순히 같이 사는 게 좋아서라는 말로 모셔올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성인이 되면서 알아버려서, 괜시리 할머니들께 미안해진다.
노년에 하고 싶은 것들도 있으셨을 텐데 (사실 잘 모르겠지만)
여행이라던가, 취미라던가 등등 말이다.
우리 부모님도 내가 결혼해서 출산을 하면 그렇게 되는 건가.
그렇다면 나는 아버지와 비슷한 성격의 자식을 키우면서 살 수도 있겠다.
그렇게 왔다갔다 하는 삼대 관계라 생각하면
성격이 한 대 걸러 나타나는 현상이 반복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