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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시탐탐 Sep 24. 2021

믿는 도끼가 발등을 찍는다.

: 비록 우리의 힘은 약하지만, 소문의 힘은 생각보다 무섭다.


"이럴 때는 어떡해야 할까요? 크랭크인이 한 달도 안 남았는데... 주연배우가 그만둔대요."


아....... 정말 어떡해야 할까? 크랭크인이 한 달도 안 남았다면- 준비하는 스탭들에게는 그야말로 전쟁 직전의 상황이다. 촬영에 들어가기 위한 마지막 점검기간이라 스탭 한 명이 그만둬도, 출연 분량이 적은 배우가 그만둬도... 남은 사람들에게는 크고 작게 영향을 미친다.

 

그런데 한 작품을 오롯이 책임지고,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주연배우'가 계약서에 도장까지 찍어놓고, 계약금도 받아놓고... "꼭 하고 싶은 작품이다-"라는 말만 남기고 떠나버린다면?

후배는 일단 설득도 해보고, 말도 안 된다며 화도 내봤지만... "그럼 그 작품 먼저 찍고 오면 안 될까요?"라고 했단다. 그러니까 '주연배우'는 무슨 이야기를 해도 물러설 생각이 없는 거다.

 

그럼 결국 다른 '주연배우'를 찾아야 하나? OTT가 생기면서 들어가는 작품이 많다 보니 웬만한 배우들은 내년 라인업까지 끝났다는데... 이미 캐스팅 기사까지 난 작품에 '땜빵'인 걸 알면서 하려는 '주연배우'는 모래에서 바늘 찾기만큼 어렵다! 는 건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안다. 하지만 알면서도 바늘을 찾기 위한 몸부림을 친다. 그리고 이미 예상했던 결과에 다시 좌절하기를 반복한다.


이런 상황이면- 밤길에 뒤통수라도 때려주고 싶지만 '주연배우'가 그토록 하고 싶다던 작품을 끝내고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할까? 간혹 정말 운이 좋아 크랭크인을 2-3달 미룰 수도 있다. 그러나 웬만한 감독의 작품이 아닌 이상 '주연배우'가 확정돼야 스탭들이 출근을 시작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예산은 어느 작품이나 써도 써도 늘 모자란다. 그런데 기다리는 동안 추가되는 인건비, 진행비 등의 금전적인 손실은 누가 책임지나?


작품을 하면서 수많은 변수들을 만나지만... '주연배우'의 갑작스러운 변심은 또 다른 변수를 만나지 않는 이상 아무리 발버둥을 친다 해도 GO보다는 STOP 확률이 80%가 넘는다. 그야말로 대재앙이다. 곧 벼락같은 불똥을 맞을 60여명의 스탭  및 다른 배우들은 백수가 되어 다른 작품을 알아봐야 할지도 모르겠다.  




"이 배우가 정말 이럴 줄 몰랐어요."

"원래 믿는 도끼가 발등을 찍는다."


내가 운이 안 좋았던 건지도 모르지만 적지 않은 작품을 하는 동안- 대외적인 이미지와는 다르게 현장에서 좋은 배우들을 만난 적은... 손에 꼽는다. 그래서인지 영화일을 하는 친구들에게 좋아하는 배우가 있다면 그 배우와 함께 작품은 하지 말라는 뼈아픈 경험이 담긴 조언을 해주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아무리 좋아 보이는 배우라도 잘 믿지 않는 편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도 저 배우가 저럴 줄을 몰랐다.


생각해보면 후배 작품의 '주연배우'와 같은 상황은 나 역시 많이 겪었다. 원래 일이란 게 찾아 헤맬 때는 죽어라 없다가도- 고심 끝에 출근을 하기 시작하면 무슨 머피의 법칙처럼 하고 싶었던 작품 혹은 좋아하는 사람에게 연락이 온다. 이미 출근을 시작했지만... 망할 책임감이냐! 더 좋은 작품이냐! 함께 하고 싶은 사람이냐!

굳이 따져보지 않아도 나중에 온 기회가 더 좋다는 걸 알면서도 계속 고민하게 된다.  

 

대재앙의 한가운데 있는 후배 역시 마찬가지다. 이 작품을 선택할 때 두 가지의 선택이 있었다. 작품을 선택할 것이냐! 감독을 선택할 것이냐! 후배는 당장 들어가는 작품보다는 평소 소문이 좋았던 감독을 선택했다. 하지만 후배의 작품이 중단될 위기에 놓인 지금, 선택하지 않은 그 작품은 이미 촬영을 하고 있다.   


살다 보면 누구에게나, 수차례 저런 선택의 순간이 오고, 어떤 선택을 할지는 물론 각자의 몫이긴 하다.

정말 하고 싶은 작품을 선택했다는 '주연배우'는 그 작품으로 인생의 전환점을 게 될 수도 있다. 혹은 후배의 작품이 우여곡절 끝에 다시 캐스팅을 하고, 그야말로 대박이 날 수도 있다. 하지만 얄궂게도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고, 나쁜 놈들이 더 잘 사는 세상인지라 전자일 확률이 더 높을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책임의 무게가 큰 위치에 있는 사람일수록 '나하나만!' 생각하기보다는 더 많은 것들을 생각했으면 좋겠다. 막내일 때는 내 옆에 동료가 힘들면 되는 일일지도 모르지만, 영향력이 커질수록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힘들어질 수도 있다. 좋은 기회만 쫓다 보면 지금 당장은 좋을지도 모르지만 시간이 흐르면 주변 사람들의 신뢰를 잃을 수 있다.


후배는 지금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혔지만... 언젠가 이 작품의 '주연배우'는 지금의 선택이 발등을 찍을 수 있기를. 비록 우리의 힘은 약하지만 소문의 힘은 생각보다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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