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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시탐탐 Mar 24. 2024

골탕 먹이다.

: 크게 곤란한 상황을 일으키거나 손해를 입히다


3개월 만에 기다리고 기다리던 대본이 나왔다. 오랫동안 기다렸던 만큼 설레는 마음으로 대본을 봤는데 기대가 컸던 탓인지 그만큼 실망도 컸다. 대본을 전면 재수정을 해야 할 만큼 심각한 상황이었다. 혹시 나만 이렇게 생각하는 게 아닐까? 싶어 회의를 하고 또 했지만 모두 똑같은 의견이었다.

놀란 마음도 잠시, 왜 이런 대본이 나오게 되었을까? 작가의 마음을 쫓고 쫓다 보니 이해가 안 가는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더 조심스럽게, 더 정성 들여서 대안이 담긴 리뷰를 써서 전달드렸다. 그리고 돌아온 답은...


'지금 나 골탕 먹이려고 이러는 거죠?'

 



골탕 먹이다- 크게 곤란한 상황을 일으키거나 손해를 입히다.

뜻을 모르는 것도 아닌데 너무 어이가 없어서일까? 그 뜻을 다시 한번 찾아봤다.


그러고 보니 작년에도 '골탕 먹인다'라는 말을 들은 기억이 난다. 한창 더운 여름, 산처럼 쌓여있는 서류들을 보고 있는데 세트장 세팅을 하던 소품팀이 못하겠다고 가버렸단다. 더 미뤄지면 촬영에 차질이 생기기에 소품팀장을 만나기 위해 달려갔다. 그런데 소품팀장이 너무도 뜻밖의 말을 했다.

미술감독이 자신을 골탕 먹이고 있는 거 같다며, 그래서 자신도 골탕을 먹이고 있는 거란다.


힘들게 촬영하면서- 미술감독이 골탕을 먹이기 위해서 일부로 이런 상황을 만들었다는 게 말이 되나!

세트장에 문제가 생기면서 세트 시공 일정이 미뤄지게 됐고,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 모두 모여서 대책회의를 했고, 촬영날짜를 더 이상은 미룰 수가 없기에 각 팀이 마지노선을 이야기하며 일정을 맞추고 있었는데... 그러다 보니 소품팀에 다소 무리한 일정을 요구했던 거 같다고... 마치 7아이를 타이르천천히 오해를 풀고, 설득하고 나서야 소품팀은 세트장으로 돌아왔고 다시 세팅을 시작했다.


이 일로 인해서 촬영은 미뤄졌다. 경험이 많아 '프로'라고 생각했던 소품팀이 이런 어이없는 오해를 하고, 못하겠다고 나가버리기까지 하다니... 이 소품팀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 


그러고 보니 이 소품팀보다 더한 감독도 있었다. 아무리 준비를 많이 해도 촬영을 하다 보면 늘 예측하지 못하는 일들이 계속 벌어진다. 그리고 그 문제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100%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도 생기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자의 위치에서, 한 편의 드라마를 잘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다. 그건 경력이 많은 사람들도, 이제 막 들어온 신입이라도 책임의 무게가 다를 뿐 마찬가지다.

 

그리고 드라마 감독은 그 책임의 무게가 남다르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감독은 만족스럽지 못한 상황이 벌어지자 연출팀뿐 아니라 자신이 컨텍한 스태프들을 따로 불렀단다. 그리고는 예산을 오버해서 제작사 대표가 손해를 보게 만들겠다며 일주일간 스태프들에게 촬영장에 나오지 말라고 했단다. 그러나 이 이야기를 들은 스태프들은 그건 아닌 거 같다며 촬영장에 나왔고, 급기야 감독은 촬영 중에 그 이야기를 주연배우에게까지 했단다. 다행히도 경험이 많은 주연배우는 감독에게 그러면 안 된다고 이야기했고, 감독의 야심 찬 골탕먹이기 작전은 무산됐단다. 



작가를 정말 골탕 먹이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면.... 대본이 나왔을 때 읽고, 고민하고, 회의하고, 대안을 찾고, 리뷰를 쓰기보다는 그냥 좋아요! 너무 좋아요~! 만 했을 거다.

열심히 쓴 대본에 대해 안 좋은 이야기를 하면 속상한 마음은 알겠지만.. 그럼에도 고생을 함께 나누는 파트너에게 '지금 나 골탕 먹이는 거냐?'라고 묻는 건 달려오는 트럭으로 밀어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들게 만들었다.


드라마 일이라는 게 함께, 한마음으로 해도 힘든 일인데...

이 와중에 누군가를 골탕 먹일 거까지 생각하면서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을까?  


달디단 밤양갱은 맛있지만, 맛있다고 계속 먹으면 이가 썩기도 한다.

골탕 먹고 있는 거 같다며 골탕을 먹이려고 했던 소품팀은 결국 일정을 맞추지 못하는 팀으로,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고 제작사 대표를 골탕 먹이려고 했던 감독은 예산을 오버하는 감독으로 남게 됐다.


점점 더 손해 보기 싫은 마음만 커지는 세상이라지만-

누군가에게 골탕을 먹이려는 마음으로 일을 한다면, 결국 다 자신에게 돌아온다.

결국 상대를 깊게 찌를수록 내 손도 그만큼 깊게 베인다.

그러니 골탕 먹었다는, 골탕 먹이겠다는 생각보다는 직면한 위기를 헤쳐나갈 방법을 함께 고민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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