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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시탐탐 Aug 28. 2022

화장실 가기 전, 후 - 사람 마음은 다르다.

: 어렵게 찾아온 기회를 다시 떠나보내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화장실 가기 전, 후 사람 마음은 다르다.

화장실 가기 전 - "나 일 하고 싶어"


한 달 전, 첫 작품을 같이했던 오빠에게 연락이 왔다. 첫 작품 이후로 15년이 넘는 시간 동안 오빠와는 미팅 갔다가 우연히 마주치거나 배우 출연료를 물어보는 등의 연락정도만 었다. 그러니까 내가 먼저 연락 한번 안 했을 만큼 좋아했던 사람은 아니었다. 그런데 참 이상한 건 어릴 때 작품을 함께했다는 이유만으로 '정'이 남아있나 보다. 오빠가 오빠답지 않게 조심스럽게 회사 근처라며 만나자고 하니 하던 일을 정리하고 나갔다.


20대에 만난 우리는 40대가 돼서야 제대로 마주 보고 앉아 커피를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나이가 든 건지, 그동안 마음고생을 많이 한 탓인지 얼굴이 많이 상해 보였던 오빠는 얼마 전 모임에 갔다가 내가 '직장인'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단다. 그리고 오빠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제작사를 차려 주연배우 캐스팅까지 했으나 코로나로 인해 무산된 뒤 몇 년 동안 아무런 일을 못하고 있다며 '일을 하고 싶단다.'


그리고는 오빠가 가지고 있는 작품 뭉치들을 모두 꺼냈다. 아직도 '직장인'으로 적응하는 중인지라 이런 부탁이 난감했지만... 아무런 힘도 없는 나에게 연락을 하고, 자신이 가진 것들을 모두 꺼내 보여준 오빠의 마음이 애틋했다. 그래서 퇴근 후 잠을 줄여가며 오빠가 보내준 작품들을 읽었다. 그리고 그중 다행히도(?) 나쁘지 않은 작품이 있어 회사에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기존에 회사에서 진행하고 있던 아이템과 비슷했기에 별 기대를 하지 않았지만 얼마 후 회사와 오빠는 미팅을 하게 됐다.




화장실 다녀온 후- "내가 그 정도도 모를까 봐?"


오빠가 회사(=나의 직장상사)와 첫 미팅을 하기로 한 날, 나는 오빠보다 더 긴장했다. 부디 잘 되길 바라는 마음뿐이었다. 그래서인지 말주변이 부족한 오빠 옆에서 마치 내가 기획한 작품처럼 작품을 설명했고, 오빠도 수정 방향에 대해서도 열어놓고 생각하자고 의견을 좁히면서 제법 나쁘지 않게(?) 미팅이 끝났고, 이후 나는 본격적인 진행을 위해 오빠가 원하는 계약조건을 제안해 달라고 말했다.


오빠는 일을 시작하는 게 중요하고, 드라마 쪽 인맥을 만든다며 어떤 조건이든 수용하겠다!고 말했지만 나는 기존에 회사에서 진행했던 여러 케이스들을 알려주고, 다른 회사들은 어떻게 진행하는지도 알아보고, 충분히 고민하고! 원하는 조건에 대해서 연락을 달라고 했다. 그리고 일주일 후 오빠를 다시 만났다.


그런데 오빠는 처음 나를 찾아왔을 때와는 사뭇 다른 목소리 톤으로 여러 가지 조건들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그 조건들은 내가 회사와 상의할 필요도 없을 만큼 도저히 협의가 불가능한 조건들이었다. 아마도 여기저기 알아보니 받고자 하는 기준이 꽤나 높아졌나 보다. 나는 걱정스러운 마음에 오빠가 말한 조건들이 왜 안되는지에 대해서 설명을 하려 했지만 오빠는 "내가 그 정도도 모를까 봐? 미안한데 그럼 나랑은 못할 거 같아."라고 말하며 일어났다. 오랜만에 만난 오빠를 위해 선뜻 던진 시간과 마음이 헛헛해지는 순간이었다.





화장실 가기 전, 후 - 사람 마음은 다르다.


속상한 마음에 회사로 돌아오는 길에 오빠와 나눈 대화를 기획팀으로 일하고 있는 친한 언니에게 말했다. 그러자 언니도 자신의 경험담 하나를 이야기해줬다.  오랫동안 알고 지내던 작가가 자신을 좀 도와달라고 찾아왔었단다. 그런데 언니네 회사는 당장 작가를 계약해 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래도 작가가 잘되길 바라는 마음에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방송국 사람들을 만났다. 그리고 다행히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곳이 있었는데 언제나 그렇듯 아쉬운 점들을 조금 수정했으면 좋겠다!라고 이야기를 했단다. 그렇게 작가는 작품 수정에 들어갔고, 언니는 자기 돈으로 밥 사 주고, 커피 사주고- 퇴근 후에 자는 시간을 쪼개서 리뷰도 해줬단다.


그리고 그 고생에 보답이라도 받듯 수정한 작품은 좋은 반응을 받았고, 작가는 방송국과 본격적인 계약 이야기까지 오고 갔다. 그런데 그 이후 작가의 태도가 조금 이상함을 느꼈지만 별일 아니라고 생각했던 언니는 방송국 관계자로부터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작가가 언니에게 계약도 안 해주고 글을 쓰게 했다고 말하고 다닌다는 거다. 그러니까 잘되길 바라는 마음 하나만으로 돈과 시간을 다 쏟아부은 결과가- 돈 안 주고 일 시킨 양아치가 된 거다. 언니는 당장이라도 작가에게 뛰어가 소리치고 싶었지만... 그냥 작가를 놓아주기로 했단다. 그저 처음 마음 그대로! 마지막까지 작가가 잘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걸 어떻게 참아?"

"뭘 어떻게 참아. 그냥 참는 거지! 근데 그 이후로는 조심하게 되더라.

"언니가 뭘 조심해?"

"작가는 정말 그렇게 생각했을 수도 있잖아. 돈 안 주고 일한 건 맞으니까."

"허! 내 돈 써가며 그렇게까지 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다고! 그래서 그 작품은 잘 됐어?"

 

작가는 이후 방송사의 편성 직전이라며 계약해 줄 제작사를 찾았지만 쉽지 않았고, 언니를 믿고 이 작가와 작업을 선택했던 방송사는 언니가 빠진다고 하자 이 작가와는 작업을 하지 않겠다고 했단다. 그러니까 언니가 빠진 이후 그 작가는 다시 혼자가 되었고, 아직까지도 그 작품은 들어가지 못했다.




회사로 돌아와서 오빠와의 계약 건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데 왠지 부끄러웠다. 내 얼굴에 침 뱉은 기분이랄까? 그런데 내 이야기를 들은 나의 직장상사는 너무도 쿨하게 말했다.  

"그래? 어쩔 수 없지 뭐."

"그 오빠가 이럴 줄은 몰랐어요. 저한테 계속 아무것도 필요 없다고, 들어 가게만 해달라고 했는데..."


죄송하다 말하는 내게 나의 직장상사는 얼마 전에 회사에서 진행하려다가 엎어진 작품에 대해 이야기해줬다. 공모전에 내려고 했던 신인작가 작품이었는데 어쩌다 우리 회사에서 검토를 하게 됐단다. 작품은 좋지도 나쁘지도 않았다. 공들이는 것에 비해 대단한 수익을 볼 수 있는 작품도 아니었다. 다만, 작가의 가능성을 보고 함께 하려고 했던 것일 뿐. 그런데 작가가 계약을 하자고 하니 '여기저기서 같이하자고 한다'며 계약금액을 말도 안 되게 불렀단다.


"OO 작가 가요?"

"응. 그 오빠도 마찬가지야. 그러니까 잊어버려. 여기저기서 같이 하자고 하는 거면... 그냥 거기서 하세요! 하면 돼"

"네. 그런데 저는 그 오빠보다도 그 오빠랑 같이 하는 작가가 너무 아까워요."

"그건 나도 그래!"


언니가 랬듯이 내가 앞으로 오빠와 같이 일을  일은 없겠지만, 그래도 잘 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나의 직장상사가 그랬듯이 다른 곳에서 더 좋은 조건을 이야기한다면 '그럼 거기서 하세요' 하면 된다.

그런데 모두가 겪는 일이라고 생각하면 훨씬 수월할 텐데도 나는 왜 이리 속상한 걸까?


내가 직장인이 되었다는 이유 하나로 여기저기서 연락이 온다.

아직 아무런 힘은 없지만, 누군가에게 힘이 되어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도 한다.

조금이라도 힘을 키워서 함께 하고 싶은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 내 마음과는 다르게 지금과 같은 상황이 왔을 때 상처받지 않을 수 있을까?

마음에 바늘 하나가 꽂혀있는 기분이다.


영화일이든 드라마일이든... 10년 동안 안되던 작품이 갑자기 들어가기도 한다.

나는 그 이유가 시기와 타이밍도 중요하지만... 누구와 함께하느냐!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각자 받은 상처들이 크기 때문에 또 그럴 것이다!라는 두려움이 큰 것도 안다.

그동안 도와주려는 사람보다 등쳐먹는 사람이 많았다는 것도 안다.

늘 손해만 보는 기분이 억울하다는 것도 안다.


그런데 안 좋은 경험들로 인해

조금만 더 갖고 싶은 욕심으로 인해

어렵게 찾아온 기회를 다시 떠나보내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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