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연애를 못하는 이유는.
: 내 탓이 아니라 네 탓이다!
꽃다운 15살, 한참 예민할 나이였지만 <남자와 연애>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집에 놀러 온 친구들이 우연히 윗집 오빠를 보고 흥분했다. 그렇다. 우리 윗집에는 제법 잘 생긴 오빠가 살았다. 이후 친구들은 더 자주 우리 집에 놀러 왔고, 친구들의 요청으로 종종 윗집 오빠와 어울려 놀았다. 뜨거운 여름, 오빠가 읽어보라며 책 한 권을 툭 건네줬다. 그리고 그 책 사이엔 편지가 들어있었다. 이른바 '연애편지'였다. 나는 어찌해야 할지 몰라 편지를 엄마에게 보여줬다.
“좋은 대학에 가면, 좋은 남자는 얼마든지 만날 수 있어”
엄마가 말하는 좋은 남자를 만나기 위해 먼저 좋은 대학에 가야 했다. 그리고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열심히 공부해야 했다. 윗집 오빠는 그렇게 멀어졌다. 그 뒤로 컴퓨터학원 오빠, 우연히 만난 초등학교 동창 등이 있었다. 하지만 나는 엄마의 말을 철석같이 믿었다. 그래서 남자를 만나지 않았다.
꽃다운 20살, 나는 드디어 <남자와 연애>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나 좋다는 남자'를 만나 연애를 했다. 하지만 3달을 넘기지 못하고 차였다. 심지어 차인 이유조차 듣지 못했다. 나는 도대체 어떤 남자를 만나야 괜찮은 건지 선릉역 언니에게 물었다.
“아무나 만나면 안 돼! 첫눈에 반한다. 첫인상이 중요하다. 이 모든 말의 핵심이 뭔지 알아? 얼굴이란다”
나는 산수는 못해도 국어는 좋아한다. 그래서 주제 파악은 잘한다. '얼굴은 자주 보면 정든다'는 말을 믿는 편이다. 하지만 내가 아무나 만났기 때문에 나의 첫 연애가 실패한 것이라는 선릉역 언니의 말을 믿고 싶었다. 그래서 관심이 가는 사람이 생길 때마다 언니에게 보여줬다.
“이 사람 어때?”
“쯧쯧. 도대체 널 어쩌면 좋니”
언니가 알려주는 괜찮은 남자의 기준은 내게 너무 어려웠다. 하지만 나는 언니의 말을 철석같이 믿었다. 그래서 남자를 만나지 않았다.
꽃다운 27살, 한참 연애할 시기다. 때마침 새롭게 시작한 영화일은 남자가 많은 직업이었다. 당시만 해도 10명의 스태프가 있다면 남자가 9명, 여자가 1명이었다. 어느 날 사수와 함께 차 안에서 이야기하고 있는데 수십 명의 남자 스태프들이 눈 앞에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남자가 저렇게 많은데.. 괜찮은 사람이 없어요”
“여자가 너 하난데... 우린 어떻겠니?”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지만 묘하게 공감이 갔다. 하지만 사수의 생각과는 다르게 여자가 나 하나라서 그런지 종종 남자 스태프들에게 불려 나갔다.
“네가 지금 연애할 때야?”
영화의 '영'도 모르고, 영화일을 시작한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인정받기 위해, 지금은 '일'에 올인해야 한다는 사수의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커리어도 쌓고, 연애도 하고싶었지만.... 나는 사수의 말을 철석같이 믿었다. 그래서 남자를 만나지 않았다.
나는 철석같이 믿었다.
그래서 남자를 만나지 않았다.
그러니까 내가 연애를 못하는 이유는
내 탓이 아니라 네 탓이다!
나는 엄마를, 선릉역 언니를 그리고 사수를 좋아했다. 그래서 그들이 하는 말은 철석같이 믿었다.
그런데 대학에 가지 못했다. 그래서 엄마가 말했던 좋은 남자를 만날 기회가 없었다.
선릉역 언니가 No.라고 했던 나 좋다던 남자들, 내가 좋아하던 남자들도 이제는 임자가 있다.
지금은 때가 아니다. 연애는 나중에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더니... 그 나중은 도대체 언제인 걸까?
그렇게 나의 꽃다운 나이가 지나갔다. 30살이 넘어서야 이유불문 연애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남자는 어디서 만나지? 영화일을 하는 사람을 만나면 내 일에 대해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되니 편하겠지만, 영화판이 좁다 보니 이래저래 소문이 나는 게 싫었다. 그럼 소개팅을 해야 하나?
소개팅은 어색하게 앉아 호구 조사하듯 서로에 대해 이야기를 해야 한다. 그런데 직업병인지... 나는 어색함을 느끼면 나도 모르게 진행을 한다. 소개팅을 하게 되면 백 프로 진행을 하고 있을 것 같아 싫었다.
'이유불문 연애는 하고 싶지만, 연애를 하기가 귀찮았다' 그렇다. 솔직히 혼자인 게 편했다. 지금의 나는 연애를 할 수 없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오랜만에 만난 사수가 말했다.
“너도 연애 좀 하고 그래라~”
내가 연애를 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서 구구절절 이야기 해주자 '내가 그런 말을 했었나?'라고 웃는다. 사수의 뒤통수를 후려칠 수도 없고, 이제야 그들을 철석같이 믿었던 게 후회가 된다. 믿는 도끼는 발등을 찍는다는 걸 다시 한번 확인했다.
더 좋은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 그 사람은 이상형이 아니니까?
더 좋은 사람, 내가 상상하는 혹은 사람들이 좋다고 말하는 이상형! 그런 '완벽한 사람'은 안타깝지만 현실 세계엔 없다. 혹여 있다 해도 이미 다른 사람이 채갔다. 그러니까 현실을 바꿀 수 없다면 내 생각을 바뀌어야 한다. 좋은 사람, 이상형보다 '나와 맞는 사람, 호감이 가는 사람'을 찾아야 한다. 쿡-하고 한방에 심장에 박히는 사람도 있겠지만, 만나다 보면 스며드는 사람도 있다. 만나보지 않으면 아무도 모른다
지금은 때가 아니라고?
10대에 할 수 있는 연애, 20대에 할 수 있는 연애, 30대에 할 수 있는 연애는 모두 다르다. 꽃다운 나이는 다시 오지 않는다. 그러니까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건,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건 지금이 그 때다. 무조건 지금 만나봐야 한다.
<어차피 그놈이 그놈이다>라는 절대 명제를 깨닫게 되더라도
<어른들 말 틀린 거 하나 없다>라는 절대 명제를 깨닫게 되더라도
<사람들 말 들어서 손해 볼 거 없다>라는 절대 명제를 깨닫게 되더라도
<어차피 한번 더 상처 받는 게 연애다>라는 절대 명제를 깨닫게 되더라도
그러니까 사람들이 말하는 '연애'에 관한 절대 명제들을 직접 경험해보기 전까지 부지런히 연애를 해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