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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시탐탐 Dec 13. 2019

넌 재미로 일하니?

: 지금은 영화일을 하고 있습니다만?!

긴 프로젝트가 끝나고, 2년 만에 다시 '백수'가 됐지만 앞으로 살아갈 날들에 대한 '불안'보다는 그동안 수고한 나에게 '보상'을 주고 싶었다. 그렇게 아무 계획 없이 '아무것도 하지 않기'를 결심하고, 제주도에 도착했다. 

그런데 정작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나는 불안했다.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은 걸까?

그러다 우연히 '브런치'에 대해 알게 됐다. 브런치를 둘러보며 '글을 쓰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에 새삼 놀랐다. 막연하게 '나는 안돼!'라고 생각했던 일을 사람들은 해내고 있었다. 나도 할 수 있을까?’


몇 날 며칠을 둘러보다 '작가 신청' 버튼을 눌렀다. '안타깝게도 이번에는 모시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왜 나는 안돼?’ 불쑥 오기가 생겼다. 한 번만 더 해보자. 한 번만 더! 3번째 도전에 덜컥 글을 쓸 수 있는 자격이 주어졌다. 아싸!! 무작정 글을 쓴다는 설렘에 생각나는 대로 끄적이느라 핸드폰 메모장에서 손을 뗄 수가 없었던 것도 잠시 어딘지 모르게 자꾸만 불편했다. 갑자기 살이 쪄서 입던 옷이 꽉 끼는 걸 들키지 않으려고 숨을 가득 참고 있는 느낌. 왜 이러지? 


사실 나는 다른 사람의 시선을 '굉장히' 신경 쓰는 사람이다. 집에선 몇 날 며칠을 치우지도 않고 흐트러진 모습으로 지내지만, 사무실에선 매일 책상을 정리하고 다른 사람들보다 부지런히 움직인다. 그게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라기보다 이러면 불편하진 않을까? 저러면 이상하게 생각하진 않을까? 하는 생각들이 꼬리를 물고 물어 그저 ‘책’ 잡힐 일을 만들지 않으려는 거다.


막상 누군가에게 보여줄 수 있는 글을 쓸 수 있게 되니 괜히 '책' 잡힐 일만 만드는 건가? 좀 더 멋진 글을 써야 하는 건 아닌가? 나도 모르게 숨을 가득 참고 있다. 이 불편함은 이런저런 생각들을 만들고, 그 생각들이 꼬리를 물고 속삭인다. '시간이 지나면 분명 후회할 거야, 그러니까 하지 마' 내 손목을 붙들고 있다. 하지만 알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 그때라도 쓸걸 그랬어! 라며 더 후회할 거다. 

자, 그럼 나는 앞으로 이 곳에서 무슨 이야기를 쓰게 될까?




글을 쓸 때 하고 싶은 이야기를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장 잘 아는 이야기부터 써 보는 게 좋다고 들었다. 가장 잘 아는 이야기를 써야 끝까지 쓸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가장 잘 아는 이야기- '나'에 대해서 쓰는 건 생각보다 두려운 일이다. 내가 유명한 사람도 아니고, 생각하는 만큼 사람들은 나에게 관심이 없다는 것도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누군가 나를 알아보진 않을까?라는 걱정에 계속 숨고 싶기 때문이다.


이럴 때 방법은 하나다. 나는 일을 할 때 하기 싫은 일을 먼저 한다. 하기 싫은 일은 시간이 지나면 더 하기 싫어 지기 때문에 언제 해도 할 일이라면 싫은 일부터 먼저 해버리면 오히려 다른 일들은 쉽게 끝나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가장 숨기고 싶은 이야기부터 하기로 한다. 나는 지금 영화일을 하고 있다.


뒤돌아 생각하면 나의 25살은 뭘 해도 되는 해였다. 생계 때문에 짊어지고 있던 짐을 잠시 내려놓고 1년 정도 버틸 수 있는 여유자금이 생겼다. 그러자 불쑥 '나를 위해 딱 1년만 하고 싶은 걸 하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고 싶은 거? 당연히 그게 영화일은 아니었다. 책과 드라마는 좋아했지만 밖에 돌아다니는 편이 아닌지라 극장에는 잘 안 갔다. 단지 '이야기'가 좋았다.


그래서 그때부터 막연하게 작가가 되고 싶었지만 당시 드라마는 소재의 제한이 많았던 터라 영화를 선택.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잘 몰랐기 때문에 무작정 이력서를 넣고 영화 스태프로서의 첫발을 디뎠다. 그리고 딱 1년만!이라고 생각했던 일이 어느덧 14년이 되었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처음 영화일을 시작할 때만 해도 영화 제작환경은 열악했다. 3일을 못 자고, 사무실 바닥에서 박스를 깔고 쓰러져 자며, 쉬지 않고 일을 했지만 통장잔고는 오히려 마이너스였다. 하지만 근래에 접어들어 급속도로 변하고 있다. 지금은 12시간 이상 일을 할 수 없게 됐고, 웬만한 중소기업만큼 아니 그 이상의 월급을 받게 됐다. 그러다 보니 예전만큼 일이 힘들지 않고, 빚도 없다. 그런데 '더 이상 재미가 없어졌다!'




‘넌 재미로 일하니?’

다들 그렇게 살아!, 넌 네가 특별한 줄 알지?, 너는 지금 천만 직장인들을 모욕하는 거야!

(모욕이라니! 난 천만 직장인들을 존경한다) 무튼 가까운 사람부터 먼 사람들한테까지 귀에 박히도록 잔소리를 들었다. 그들의 말에 100% 공감한다. 나 역시 '나는 왜 이럴까?'라고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을 바꿔 마음을 다잡아도 재미가 없다. 재미가 없으니 열심히 하지 않게 된다. 


그래서 글을 쓴다고?

글을 쓴다고 하면 대부분 '좋아하는 걸 하는 게 아니라 잘하는 걸 하라고' 이야기한다. 난 직장생활을 하다가 불쑥 영화 일을 시작했다. 영화일을 하기 전에는 영화일에 대해 배운 적도, 관심도 없었다. 심지어 낯가림도 심해서 내가 제일 많이 들은 말은 '네가 할 수 있겠어?'였다. 그럼에도 눈앞에 닥친 미션들을 해결하다 보니 누군가에게는 욕도 먹고, 누군가에게는 독한 년이라는 소리도 듣고, 또 누군가에게는 일을 잘한다는 소리도 들었다.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이 있나? 

다시 불쑥 이렇게 글쓰기를 시작하려고 한다. 사실 예전만큼 깡도, 맷집도 없지만 그래도 열심히 하다 보면 글쓰기도 잘하는 일이 되어있진 않을까? 무식하기 때문에 지금의 나는 용감하다. 어찌 시작해야 할지 막막하고, 많은 것들이 두렵지만 그래도 설렌다. 좋아하는 일이 잘하는 일이 될 때까지 오늘부터 내가 가장 잘 아는 이야기, 나의 이야기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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