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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시탐탐 Dec 14. 2019

운동은 나랑 안 맞아!

: '나는 절대 못한다'라고 생각했던 일도 재밌어지는 순간이 온다.

운동은 나랑 안 맞아!

어릴 때부터 나는 안 아픈 곳이 없었다. 병원에선 딱히 이유를 알 수 없다고 했지만 학교를 다니기도 힘들었다. 기독교였던 엄마는 혹시나 딸이 신병을 앓는 게 아닐까 하여 무당을 찾아가기도 했다. 그리하여 당시의 나는 내가 20살을 넘기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20살이 되기도 전에 나보다 먼저 엄마가 내 곁을 떠났다. 위암 말기로 발견된 지 두 달 만이었다. 엄마를 따라가고 싶었지만 내 옆에는 겨우 16살이 된 남동생이 있었다. 당시 부모님은 이혼하셔서 엄마와 남동생 셋이 살고 있었다. 그땐 이 세상에 우리 둘 뿐이었다. 그래서 녀석이 20살이 될 때까지만 살기로 했다. 


20살을 넘기지 못할 줄 알았던 나는 38살이 되었다. 물론 지금도 병원에 가면 이미 죽은 사람 몸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렇다. 나는 여전히 안 아픈 곳이 없다. 

‘아픈 데는 없고?’ 머리가 새하얀 아빠의 인사는 늘 똑같다.  

‘안 아픈 데가 없지!’ 머리가 새까만 딸의 대답도 늘 똑같다. 

‘아프다고만 하지 말고 운동을 해!’ 

‘아빠가 담배를 끊었다고 해서, 내가 운동을 할 수 있는 건 아니라고!


욱하는 성질을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지른다. 그렇게 살갑지 않은 부녀는 만날 때마다 싸우고, 그 싸움은 남동생이 옆구리를 찔러야만 끝이 난다. 아빠의 잔소리 때문이 아니라도 살기 위해 운동이 필요하다는 걸 안다. 한 달이면 들어가는 병원비도 장난 아니다. 운동을 하려고 노력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혼자서는 어려워 친구와 함께하기도 했고, 비싼 헬스장을 끊어 보기도 했으며, 집에서 5분도 안 걸리는 곳을 등록하기도 했다. 하지만 결과는 매번 실패! 나는 죽을지언정 운동은 절대 못한다고 생각했다.




아빠가 담배를 끊었다고 해서, 내가 운동을 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내가 기억하고 있는 아빠의 냄새는 담배 냄새다. 아빠의 손에는 늘 담배가 들려있었고, 건강을 생각해서라도 제발 좀 끊으라고 말해도 숨 쉬는 것처럼 담배를 피우던 양반이었다. 그런 그가 어느 날 갑자기 담배를 끊겠다고 선언했다. 그 계기는 생각보다 너무 사소했다. 머리가 새하얀 아빠에게 젊은 청년들이 담배를 빌려달라고 한 모양이다. 평소라면 아무렇지도 않을 그 일이 그날은 그렇게 싫으셨단다. 

‘정말? 겨우 그런 이유로? 하루 4갑씩 피우던 담배를 끊겠다고?’

아빠가 정말! 겨우 그런 이유로! 하루 4갑씩 피우던 담배를 끊은 지 몇 년이 지났다.


올해 3월, 이번 프로젝트의 마지막 촬영 장소는 산이었다. 산 촬영은 촬영장비를 들고 올라가야 하기 때문에 그야말로 죽음이다. 사전답사 때 올라 와 보고 촬영 당일은 절대 올라가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마지막 촬영이니 다 같이 올라가자!’

‘하아, 꼭..... 그래야만 하는 겁니까?’ 

대표님이 가자고 하면 가야지, 별수 있나! 할 수 없이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10분쯤 지났을까? 하악 하악- 나보다 10살이나 많으신 대표님도, 촬영장비를 들고 올라가는 스태프들도! 모두 성큼성큼 올라가는데 나는 내 몸 하나도 버거웠다. 심장은 밖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았고, 모든 소음이 차단된 듯 귀까지 먹먹해졌다. 직책이 올라가고, 나이를 먹어가고, 아랫배가 묵직해졌지만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현실은 좀 더 냉혹했다.  




도대체 누가 요가를 쉬운 운동이라 그랬던가?!

족저근막염으로 5개월째 병원을 다니고 있던 터라 격한 운동은 할 수 없고, 가장 쉬워 보이는 요가를 선택했다. 요가는 시작한 지 15분 정도 지나면 온몸에 구멍이라도 뚫린 듯이 땀이 뚝뚝 쏟아지고, 삐그덕 삐그덕 몸에선 알 수 없는 소리가 난다. 선생님과 눈이라도 마주치면 내 비루한 몸뚱이가 몹시 초라하게 느껴진다.

‘6개월만 버티면, 운동을 그만둬도 몸이 운동했던 시간들을 기억할 겁니다!’

‘설마 그럴 리가요’

‘근육통이 오면, 운동을 제대로 하고 있다는 거니까 즐기세요’

‘샘.. 미치셨어요?’


요가를 그만둬야 하는 이유가 10가지도 넘지만, 3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꾸준히 하고 있다. 그리고 이번 주부터 집 근처 운동장을 달리기 시작했다. 하악 하악- 숨이 턱끝까지 차오른다. 심장은 터질 듯이 두근두근 댄다. 예전 같으면 기분이 나빴을 텐데 문득 이 두근거림이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아, 샘.. 드디어 저도 미쳤나 봐요’

그렇게 노력해도 안되던 운동을 누구의 권유도 없이 혼자 시작했다. 나에겐 지금이 운동을 할 때인가 보다. 




'나는 절대 못한다'라고 생각했던 일도 재밌어지는 순간이 온다. 

20살 나는 죽지 못해 살았다. 힘들 땐 남동생을 탓하기도 했다. '너 때문이라고'

38살 나는 죽고 싶다는 생각 따윈 하지 않는다. 지금은 남동생에게 '네 덕분에 살았다'라고 이야기한다.

여전히 여기저기 몸도 아프고, 아픈 일들 투성이지만 버티고 살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버티다 보니 살게 되었고, 살다 보니 더 잘 살고 싶어 졌다. 

'나는 절대 못한다'라고 생각했던 일도 재밌어지는 순간이 온다. 

어른이나 아이나! 늙으나 젊으나!! '때가 되면 다 하게 된다' 사람마다 시기가 다를 뿐이다. 

그러니 나와 다르다고 해서 혀를 차지 말고, 지켜봐 주길!

그러니 나는 안된다고 해서 포기하지 말고, 기다려주길!

그러니 수고했어, 오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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